[이해리의 무비노트] ‘침묵의 카르텔’ 깨야 세상을 움직인다

입력 2015-06-26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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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사진제공|삼거리픽처스

신경숙 표절 논란 둘러싼 ‘문학권력’ 시끌
지난해 영화계도 ‘슈퍼 갑’ 극장 비판 이슈
‘입단속·입조심’보다 할 말 하는 사람 필요

몇 년 전이다. 영화 취재를 처음 시작할 무렵 선배로부터 얻은 팁 하나가 있다. 보통 개봉을 앞두고 열리는 시사회 직후, 그 영화에 어떻게든 연관된 관계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영화 감상평 문의다. 그럴 땐 영화가 최악의 수준만 아니라면 ‘되도록’ 재미있다고 말해주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영화 한 편 만들어내기까지 우여곡절 겪었을 그들에게 굳이 솔직한 평을 건네 개봉 전부터 김을 뺄 필요가 있겠느냐는 조언이기도 했다. 물론 공감했다.

더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며 성장해온 한국영화이니만큼 역시 ‘되도록’ 긍정적인 방향과 시선으로 관련 기사를 써왔다고, 지금은 기자 일을 그만둔 한 선배는 말했다.

꼭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영화만큼 자유롭게 평가받는 장르가 없지만, 반대로 영화를 담아낸 기사만큼 ‘주관’이 많이 개입되는 경우도 드물다. 그 주관은 대부분 해당 영화가 지닌 장점에 초점이 맞춰지고 부각되곤 한다. ‘꿀잼’ ‘핵노잼’ 식의 SNS용 감상평이 아닌 다음에야, 한국영화에 관한 기사에는 대개 긍정적인 ‘플러스알파’가 작동한다고도 감히 말할 수 있다.

요즘 ‘침묵의 카르텔’이란 말이 화제다.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을 둘러싸고 이른바 문학권력으로 불리는 몇몇 출판사와 문인사회를 비판하는 상징적인 수식어로 통한다. 얼핏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이것저것 살피느라 말을 해야 할 사람들이 입을 닫았다는 뜻이다. ‘입단속’ 내지 ‘입조심’으로 읽을 수도 있다. 비단 문학계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지난해 말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제작자인 엄용훈 삼거리픽쳐스 대표가 침묵을 깬 사건은 그래서 더 주목받았다. 영화 만드는 입장으로 본다면 ‘슈퍼 갑’인 극장들을 향한 날선 비판을 꺼냈다. 대다수가 문제라고 여기지만 ‘실명’으로 이야기하기를 거부하는 이슈에 과감하게 나서 화제였다.

24일 영화 ‘소수의견’이 촬영을 끝내고 2년 만에 개봉했다. 여기에는 할 말을 하고, 그 말을 행동으로도 옮기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의 말은 ‘소수의견’이라고 치부된다. 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침묵보다, 비록 소수일지라고 할 말 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싶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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