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영화 ‘태백산맥’ 공륜 심의 통과

입력 2015-09-08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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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9월 8일

진보와 보수 등 이른바 진영논리가 온 사회를 휘감은 지 오래다. 분단상황이 지속되는 한 끝없을 것 같은 진영간 논쟁은 사회 전 부문을 막론하고 심각한 갈등양상을 빚곤 한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여서 섣부른 이념의 잣대가 작품 자체에 대한 온전한 평가를 가로막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4년 오늘, 조정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사진)이 공연윤리위원회(공륜)의 심의를 통과했다. 뭐가 그리 큰 뉴스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태백산맥’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 폭력적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소설은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하던 1948년 10월 전남 벌교를 배경으로, 여순사건을 소재 삼아, 한국전쟁 시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에 대해 앞서 4월 구국민족동맹 등 8개 단체는 “우익을 악의 대명사로 묘사하고 좌익과 빨치산, 인민군은 해방전사로 찬양했다”며 조 작가를 국가보안법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또 이들은 ‘자유민주수호애국연합’을 결성해 영화의 극장 상영 저지를 선언했다. 이어 “원작과 같은 영화를 상영할 경우 화약, 휘발유, 석유, 가스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영을 막겠다”는 내용의 협박성 편지를 공륜과 서울시내 일부 극장에 보냈다. 또 고려대 언론대학원이 ‘표현의 자유와 영화예술의 특성’ 토론회를 개최하고 시사회를 열자 경찰에는 “폭파하겠다”는 괴전화가 걸려 오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 공륜은 “우리 세대가 살아온 시대를 사실적으로 잘 그렸다.”(신봉승) “이데올로기에 대한 절제된 표현이 돋보인다”(이호철, 이상 1994년 9월10일자 동아일보)다며 영화를 심의 통과시켰다. 결국 영화는 9일 뒤인 9월17일 개봉했다. ‘증언’과 ‘낙동강은 흐르는가’ ‘아벤고 공수군단’ 등 전쟁영화를 연출한 임권택 감독은 좌우익의 대립이라는 시대적 혼란과 인간성 상실 그리고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는 그때까지 모두 350만부가 팔려나간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 속 각 캐릭터의 적임자를 둘러싸고 관심을 모았다. 결국 안성기, 김명곤, 김갑수, 오정해, 신현준 등이 김범우, 염상진, 염상구, 소화, 정하섭 등 역할을 맡아 출연했다. 영화는 춘사영화예술상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쥐었다. 또 이듬해 제4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됐다. 한편 원작소설에 대한 경찰 고발사건은 2005년 검찰이 조 작가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림으로써 막을 내렸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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