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키나와 여행]남쪽으로 튀어, 오키나와

입력 2015-09-11 15: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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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투어 제공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제목인 ‘남쪽으로 튀어’처럼 오키나와는 어딘지 남쪽을 향하고 싶을 때 가장 완벽한 종착점이다. 하늘빛 바다와 바다빛 하늘로 이루어진 공간. 류큐왕국이 전해주는 보물들로 가득 찬 섬. 오키나와로 향하는 것은 우리에게 항상 미련처럼 남아있는 섬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고백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오키나와는 멀지 않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여 밖에 걸리지 않는 오키나와는 어느덧 일본 내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오키나와가 가지고 있는 많은 끌림 중 하나는 단연 남쪽이라는 데에 있다. 남쪽이라는 지리적 뉘앙스는 확실히 동서와 북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심정적인 온도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 온도는 물론 따듯하며 추운 날에도 결코 차갑지는 않다. 류큐왕국이 가지고 있었던 찬란했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오키나와를 여행하는 많은 이점 중의 하나이다. 오키나와는 예전에 류큐왕국으로 불렸고 일본으로 귀속되기 전에 분명히 일본 본토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이어왔던 류큐의 땅이었다. 류큐와 오키나와 그 사이. 그 짤막한 이야기.

모자람 없이 넉넉함, 파라다이스 거리
숙소에서 나하시내의 중심부인 국제시장까지는 우선 걷기로 했다. 여행지 어디를 가나 도시를 시각적으로 익히기 위해서는 항상 내 자신이 직접 두 발로 걸으며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최고였다. 오른쪽에 도심을 관통하는 수로가 있고 왼편에는 낮은 건물들이 있다. 건물들의 외벽은 딱히 색채가 강하지 않다. 골목에 보이는 세탁소와 도장가게 그리고 텅 빈 주차장. 자전거는 급하지 않은 소리를 내며 코너를 돌았고 머리 위로는 모노레일이 지나갔다. 이후 도랑을 가로지르는 자그마한 다리를 건넌다. 내 눈과 발은 나하시내를 입체적으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처음 와 본 오키나와에 있기 때문이다.
조금 습하지만 맑은 바람을 맞을 수 있는 남쪽나라여서 그랬을까. 평소보다 발걸음이,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발랄해졌다. 오키나와를 아무래도 몇 번 더 올 것 같은 예감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나하 주변을 중점적으로 다니기로 했다. 나하는 '어장魚場'이라는 뜻의 오키나와 방언인 나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깨끗하고 조용한 거리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 하늘은 오후가 넘어가면서 다소 짙게 어두워져갔지만 그 어두운 하늘이 꼭 불안한 밤을 예기하지는 않았다.
숙소가 있는 토마린 항구에서 오키나와 최대 번화가인 국제시장으로 가는 사이에는 파라다이스 거리로 불리는 길이 있다. 잘 꾸며진 소소한 카페들과 식당들은 이 거리를 차분한 소품들처럼 꾸미고 있었다. 어딘지 연극 무대처럼 느껴지던 거리. 식당의 차양너머로 결코 왁자하다고는 볼 수 없는 정경들이 보이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거리는 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 방식을 보여준다. 충분, 모든 것이 모자람 없이 넉넉한 것. 그렇다. 모든 것이 충분하다면 그곳이 바로 파라다이스겠지.
파라다이스 거리를 돌아다니다 헌책방엘 들렀다. 낡은 책들과 이차선 골목 그리고 옛것의 냄새와 기억, 노스탤지어는 그 지점에서 정확히 만난다. 입구에 붙은 미군을 반대한다, 그러나 미국 시민은 환영한다는 포스터가 왠지 오키나와를 설명해주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라고 느껴졌다. 본토와는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군이라는 숙명을 감내해야만 하는 오키나와 사람들. 내부에는 길 에반스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초로의 사장은 그저 책 속에 파묻혀 올드 재즈를 들으며 지나가버린 추억을 곱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고본 다자이 오사무의 중고 책 세 권을 산 후 다시 국제거리로 향했다.

1마일의 기적, 국제거리
나하 시내 중심부의 국제거리는 가로로 길게 조성되어 있는 거리의 이름으로 총 길이가 1마일1.6km에 불과하지만 주위의 마키시 시장과 츠보야 도자기 거리, 미도리카오카 공원까지 연결돼 나하 시내 최대의 번화가로 손꼽힌다. 특별한 목적을 두고 오키나와를 여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이곳을 들르게 마련이다. 이곳은 2차 대전 이후 폐허에 가까웠던 오키나와에서 가장 빨리 복구 된 지역이기에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 국제거리를 ‘1마일의 기적’으로도 부른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모든 것이 없어진 벌판에서 패배적인 낭만을 빠른 속도로 지우고 이렇게 다시 오키나와를 이루어놓았다. 나하시내 자체가 대단한 관광지가 아니다보니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크게 빠르지 않았다. 우선 오키나와의 소바를 먹어보기로 했다. 사람들의 소문을 덜 탄, 일부러 한산한 곳으로 들어가 자판기에서 음식을 고른 후 동전을 넣은 후 티켓을 구매했다. 낯선 주문 방식이었지만 일본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담담하게 내어진 소바는 뭐랄까, 면식을 즐겨하는 나로서는 크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심심한 맛에 찰기 없이 툭툭 끊어지는 면발 그리고 미지근한 온도의 국물. 잔치국수 국물에 우동면을 넣고 물을 부은 후 십 여 분 식혀서 내온 맛. 그만 소바를 남기고 말았다.
국제거리에서 바로 연결되는 제 1 마키시 공설시장으로 갔다. 이곳은 미군 주둔이후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군수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도깨비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먹을거리와 생필품들을 판매하는 ‘오키나와의 부엌’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파장이 가까워진 듯 내부는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구석으로 들어가니 생선을 파는 집이 있었는데 간이의자를 두고 회도 포장해서 팔고 있었다. 소바를 남겼기에 간단하게 포장되어있던 회를 집어 들었다. 연어와 한치, 문어와 돔 등이 조금씩 가지런하게 포장되어 있는 회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던 한 서양인은 혼자 먹기엔 다소 많은 양을 시키고선 쩔쩔매고 있었고 아시아 생활을 충분히 경험한 듯 먹던 젓가락으로 나에게 회를 덜어주려고 했다. 맥주와 회 한 접시. 오키나와의 성찬. 나야말로 충분했다.
밤 시간 숙소로 돌아오는 파라다이스 거리에는 가로등 사이로 비가 흩날렸다. 우산이 없었지만 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아무런 필터링 없이 그대로 땅 위로 내리는 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던 사이에 비는 강도를 조금 높였고 사방은 비가 스며든 흙의 냄새와 함께 아직 날아가지 못한 여름 꽃의 향기를 조금 내어 주었다. 어디선가 계절을 지나간 백합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오키나와의 비는 맛있었다.

제 1 마키시 공설시장第一牧志公設市場
A 沖縄県那覇市松尾2丁目10-1
T 098-867-0111
영업시간 09:00~20:00
정기휴일 매월 넷째 주 일요일 (12月은 제외) 정월, 설날, 추석

TIP
국제시장은 일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차 없는 거리로 바뀐다.

류큐의 심장, 슈리성
아침 일찍 서둘렀다. 호텔의 커튼을 젖히니 파란 하늘이 먼저 들어왔다. 비온 뒤의 남쪽 하늘 그리고 멀리 북태평양을 두고 있는 오키나와. 밥 말리의 ‘Stir it up’이 저절로 흥얼거려졌다. 슈리성은 모노레일의 맨 마지막 역에 위치하고 있어 찾아가기가 쉬웠다. 도시 한 가운데를 천천히 지나며 강 위를 달리고 빌딩 사이를 지나는 모노레일은 오키나와가 가지고 있는 여유로운 그림 중 하나였다. 문화유산구역답게 역에 내려 걸어가는 동안 단 한 점의 쓰레기도 보지 못했다. 오키나와 사람들 전체가 슈리성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슈리성은 14세기 말에 축조된 오키나와 특유의 산호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성으로 과거 류큐왕국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나하 시내에서 가장 높은 구릉에 있기 때문에 오키나와 시내를 조망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멀리 바다도 보인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함이 아닌 정치와 의식을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성을 감싸고 있는 외벽에서는 그다지 큰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의 땅이었다. 류큐왕국은 독립국가로서 14세기 초에 시작돼 1879년 멸망할 때까지 이 땅의 주인이었다. 그래서 오키나와는 류큐의 바탕위에 세워진 일본식 이름으로 아직도 이곳 사람들은 일본 남단의 한 섬보다는 류큐의 후손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전쟁 당시, 본토 일본은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을 막아내는 과정에 있어서 오키나와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내몰았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본토 일본이 자행한 전쟁에 의도치 않게 참여하게 되어 무고한 목숨을 희생해야 했다. 전쟁 당시 사망한 오키나와 주민들 의 숫자는 4분의 1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그 저항감으로 공식석상에서 아직도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가수 아무로 나미에가 그러한 대표적 인사이다.
입구인 슈레이문를 통과하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소노향우타키이시몬이 보인다. 몇 번의 전쟁 와중에 슈리성 전체가 네 번이나 불타 소실되었지만 온전하게 살아남은 것은 이 석문뿐이라고 한다. 류큐의 국왕은 성 밖으로 행차를 나갈 때, 귀성의 안전을 이곳 석문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이곳까지는 무료로 개방되지만 진정한 슈리성은 이 너머에 있다. 표를 끊고 성내부로 들어가면 웅장한 건물이 압도적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슈리성을 대표하며 류큐 왕국 최대의 목조건물인 이곳은 신앙과 주거, 행정과 외교가 혼재되어 있는 본전으로 중화권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온통 강렬한 붉은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본전 내부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사람들은 모두 조용하게 나무틀로 짜인 복도를 걸으며 슈리성을 감상했다. 대부분 내부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었지만 바깥 풍경과 옥좌에서만큼은 허용되었다. 내부 안뜰에는 작은 정원도 있고 관리인들은 오키나와 전통 의상을 단정하게 입은 채 안내에 참여하였다. 세세한 곳에서 오키나와를 소개하고 류큐를 설명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과 자세가 부럽기도 했다. 그들은 분명 류큐왕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슈리성에서 애써 많은 것을 느낄 필요는 없다. 우리네의 궁궐과 고즈넉한 사찰과의 비교도 무리다. 그저 류큐의 뜰을 거닐듯 돌아보기. 그것이면 슈리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TIP
광장에서는 매주 4일 (수,금,토,일) 11시,14시,16시에 무료공연이 있지만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다.
가는 법 나하공항에서 모노레일 종점인 슈리역까지 27분, 슈리역에서 도보 15분, 30분 간격으로 버스도 있다.
http://oki-park.jp/shurijo/

킨죠우초 돌다다미길
주로 여성들만 사용했다는 슈리성 북쪽 문으로 나왔다. 소롯한 슈리성 성벽의 외곽을 따라 나오면 킨죠우초 돌다다미길金城町石畳道로 이어진다. 이 길은 우거진 나무 사이로 진입하는 고즈넉함과 다다미처럼 짜여진 돌바닥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매년 ‘일본 내 걷고 싶은 길 100선’에 든다고 한다. 약 500년 전에는 류큐시대 귀족들의 저택이 있었던 곳으로 당시에는 10km정도였던 길이 현재는 280m 남짓만이 남아 있다. 복잡하지 않은 풍경에 그런 비슷한 감정이 더해지면 우리는 그것을 보통 차분하다고 한다. 오키나와 특유의 현무암으로 포장된 그런 차분한 길은 운치에 서정을 더한다. 이름 모를 나무들이 마치 터널처럼 우거져 있는 돌담길 입구는 가을의 한 가운데에 들어서면 단풍으로 물들어 이 길을 황금과 적록의 터널로 다시 꾸밀 것이다. 잠시나마 담양의 죽녹원이 연상되는 길. 그곳의 바람을 이곳 어디에선가 찾았던 것 같다. 내리막길을 따라 전통가옥들이 유지되고 있었고 어떤 집에서는 어린 꼬마들이 놀고 있었다. 녀석들은 한참동안이나 보고 있던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노는 것에만 열중했다.
킨죠우초에 유일하게 있는 마다마 찻집으로 들어갔다. 나하시내와 오키나와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맥주와 흑설탕 푸딩을 시켰다. 오리온 맥주는 유독 술을 좋아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사랑하는 맥주로 한 해에 일억 병이 넘게 팔리지만 오키나와에서 90%가 소화돼 본토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맥주라고 한다. 맛이 깔끔하고 목 넘김이 시원한 맥주로 맥주의 정의에 알맞은 맥주이다. 흑설탕 푸딩은 나에게 앞으로 푸딩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준 음식으로 자리할 것이다. 푸딩이라는 것이, 특히 마다마 찻집의 흑설탕 푸딩이 이토록 달콤하며 부드럽고 매력적인 맛인 줄은 미처 몰랐다. 흑설탕 푸딩도 분명히 입 속에서 아이처럼 놀았다. 흑설탕 푸딩과 오리온 맥주 그리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돌다다미길 옆 마다마 찻집. 어쩌면 수리성 관람을 빨리 끝내고 이 시간을 더 즐겨도 좋지 않을까. 오후 다섯 시에 일찍 문을 닫기 때문이라면 더더욱.


돌다다미길의 경사는 의외로 급하고 비가 오면 꽤 미끄럽다. 운동화 착용은 필수.
내리막길이기에 다시 슈리성으로 되올라오는 루트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큰 길에서 다시 지하철역까지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우선 거리가 꽤 멀고 대중교통이 여의치 않다. 택시를 추천한다.
마다마 찻집 오픈시간 10:00~17:00

조선 도자의 숨결, 츠보야 도자기 거리
츠보야 거리는 오키나와가 자랑하는 도자기인 츠보야 야키やき가 태동한 발생지이다. 류큐왕국은 300여 년 전 규슈에 자리 잡고 있던 조선의 도공을 모셔와 오키나와에 도자기를 전수케 했고 이후 오키나와는 독자적으로 걸어왔던 도자기 문화에 예술을 입혔다. 사실상 중화권과 가까웠던 류큐왕국에서 조선의 도공을 초청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우리의 도자문화가 이미 도자기의 원류인 중국을 넘어 정점에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조선 도공이 뿌리를 내린 규슈지역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도자기의 전통 역시 한반도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츠보야 거리로 가기 위해 우선 국제거리에 있는 관광안내소로 들어갔다. 안내인은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으로 설명해 주었다. 몇 장의 안내서와 지도를 받았고 더불어 내일의 행선지에 대한 계획도 짰다. 츠보야 도자기 거리는 도자기 가게와 공방들이 옹기종기 모인 일종의 특화 거리로, 국제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조금은 한국의 인사동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호객을 한다든가 화려한 간판을 내세우는 등의 상업적인 느낌은 확실히 덜하다. 오후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몇몇의 공방과 상점들이 있지만 일부 상점들은 문을 일찍 닫은 모양이었다. 만일 시샤가 보고 싶다면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낸 것이 아닌 순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수 백 종류의 각각 다른 모양의 시샤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침 입구에 있는 도자기 박물관이 나의 아쉬운 걸음을 다시 잡아주었다. 박물관에는 한국어 서비스도 있어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무려 6,600여 년 전에 가마 없이 그릇을 구운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컬렉션이 다양하진 않았지만 도자기에 관한 번듯한 박물관까지 따로 마련해서 둔 것을 보면 얼마나 오키나와 사람들이 도자기를 조심스럽고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것은 곧 문화로 연결될 것이며 또 자긍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이것을 전통이라고 부른다.

가는 법 : 국제거리에서 마키시 시장을 지나 요기공원 가는 쪽. 도보 15분

츠보야 도자기 박물관
개관시간 : 10:00~18:00(입장은17:30까지)월요일 휴관
http://www.edu.city.naha.okinawa.jp/tsuboya/

섬 속의 섬, 토카시키섬
사람들은 섬을 그리워한다. 그것이 주는 이미지는, 또 마음속에 감춰진 그 감정은 섬을 그저 한낮 땅으로 느끼지 않고 하나의 이상향으로 바라본다. 느림과 낮음 그리고 고독과 때론 회피의 결정체. 그것은 바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다가서고 싶은 어떤 것과 맞닿아 있는지 모른다.

역시 하늘은 맑았다. 그 이야기는 바다 또한 그렇다는 얘기일 것이다. 배가 떠나는 토마린 항구로 가서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동중국해 끄트머리를 지나면 케라마 제도 내에 있는 토카시키 섬이 나온다. 일본 본토가 한참 추운 1월, 이곳에 일본에서 가장 일찍 벚꽃이 핀 후 바다를 따라 북상해 본토에 벚꽃을 전한다. 벚꽃은 토카시키가 제일 먼저 일본에 보내는 편지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종의 벚꽃 감성에 젖을 겨를도 없이 제일 먼저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로 징병된 조선의 평범한 사람들이 끌려와 당했던, 차마 입에 담고 글로 쓰지 못할 일을 떠올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시간이다.
선착장에 내려 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몇 분 구불구불한 길을 돌더니 이내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산 정상에 선 후 다시 해변을 따라 목적지인 아하렌 비치까지 달려갔다. 버스에서 잠시 보이던 바다는, 바다색은 내가 이제껏 알고 지내던 그것과는 완전하게 달랐다. <남쪽으로 튀어>에서 지로네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처음으로 보았던 바로 이곳의 바다였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순간 한 쪽으로 쏠려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예전 북인도 시킴지역을 여행할 때 히말라야 끄트머리의 설산 봉우리를 보고 터져 나왔던 버스 안 사람들의 그것과 같았다. 그 푸르름은 때론 냉정하게 또 한편으로는 따듯하게 섬을 안고 있었다.
비치의 정류장에 도착한 후, 내가 한 일은 물론 바다로 가는 것이었다. 바다 쪽으로 난 샛길을 지나 펼쳐지는 오키나와 아니 토카시키의 바다, 아하렌 비치. 찰박하게 해변으로 다가서는 물결의 수줍음 그리고 난바다에서부터 흩날리듯 불어와 마치 벚꽃 잎처럼 조용히 모래 위에 가라앉는 바람. 해변에 있던 주변의 사람들로부터는 어떠한 말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아무도 뛰지 않았고 누구도 소리치지 않았다. 토카시키의 해변. 오키나와로 향한 가장 큰 이유. 나는 결국, 이곳에 있었다.

제일 먼저 해변 전체를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공식 전망대인 구반다키 전망대와는 반대편에 있는 곳으로. 몇몇의 집이 있는 마을을 통과해 수업중인 학교를 지나 어렵지 않게 길을 따라 오르면 언덕 중간 즈음에서 해변의 전체 모습이 가득 들어온다. 이것은 분명 신이 아끼고 아끼는 보석의 물을 바다라는 커다란 항아리에 따로 담아둔 것 같았다. 예쁘다, 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곳. 너무 예뻐서, 그래서 다가설 수 없어서 이상한 감정으로 체념을 하게 되는 곳. 이제야 바다가 주는 커다란 허망함의 또 다른 한 면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바다는 그런 것이다. 나와 바다가 있는 것이 아닌 바다가 그냥 있는 것. 이곳에 내가 들어갈 틈은 없다.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편은 네 시. 다시 해변으로 내려가 백사장을 따라 걷고 전망대에 올랐다. 물론 해변을 걸을 때는 맨발이어야 했다. 반대편에서 보는 해변. 이번에는 어떤 안도의 한숨을 몇 번 쉬고 사진을 찍다가 내려왔다. 이제 보았으니 됐다, 라는 마음이 작용됐던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순전히 행복하기만이 쉽지 않은데 나는 분명히 행복했다. 후에, 오키나와의 다른 섬들과 그들이 허락할 바다를 몇 번 더 볼 것 같은 예감이 모래 자락에 스친다.

토마린항 - 토카시키섬
쾌속선 35분소요
페리 70분소요
* 계절에 따라 운행시간 변동

토카시키 상공회
A 沖縄県渡嘉敷村渡嘉敷346番地
T 098-987-2430
www.tokashiki.or.jp

땅 위의 선셋 원더힐, 아메리칸 빌리지
섬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메리칸 빌리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내가 절대적으로 사랑해마지 않는 두 가지, 원더힐과 선셋이 있다. 끝없이 넘어 가지만 결국 돌아와야 하는 숙명을 가진 원더힐과 선셋. 원더힐은 땅 위의 선셋이고 선셋은 하늘 위의 원더힐이다.

조금 서두른 탓에 겨우 버스를 탔다. 개인적으로 항상 선셋을 볼 때는 유별나게 조급해진다. 절대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 내 감정과 맥박은 언제나 최대치로 올라가나 보다. 오키나와는 대중교통이 그다지 발달한 탓이 아니라서 버스 요금은 꽤 비쌌다. 한 소녀가 조용히 버스에 타더니 옆 자리 사람에게 앉아도 되냐고 묻고는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갔다. 버스는 서쪽 길을 타고 북쪽으로 한 시간을 넘게 올라갔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원래 미군시설이 있던 곳이었으나 해안을 따라 있던 비행장이 일본으로 반환되고 1988년 비행장 터 북쪽에 인접한 해안이 매립지로 조성된 후, 도시형 리조트의 아메리칸 빌리지로 재정비 되었다. 이름에서도 물론이거니와 애초부터 미군 시설들이 있었던 탓에 어딘가 미국스러운 느낌이 나는 위락 단지이다. 식당과 상점 그리고 거리와 분위기 모두 미국의 어디쯤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히 웨스턴의 느낌이 나는 곳이다. 이곳은 실제로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시포트 빌리지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아메리칸 빌리지에는 오키나와에서 유명한 선셋비치가 있다. 오키나와에서라면 어디에서고 멋진 선셋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원더 힐이 있었기에 이곳에서 오늘의 마지막 태양을 보내기로 했다. 선셋비치에는 이미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관광객처럼은 보이지 않았으므로 이곳 사람들인 것 같았다. 연인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정확히 말하자면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오키나와 풍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가녀린 사미센 가락은 마치 바람의 줄기처럼 휘익하고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정말 순수하게 보이던 커다란 하늘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 서서히 스며들 별들. 그 사이에 석양이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침묵의 시간에 나도 함께하고 있음을 감사해 했다.
이제 땅에 남은 마지막 태양을 볼 시간. 그것은 도시의 별 사이에서 처연하게 빛나는 원더 힐이었다. 일본인들처럼 원더 힐을 사랑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빛나고 있던 그것은 오래전 영화인 ‘적 그리고 사랑이야기’의 마지막 씬처럼, 미얀마의 이야와디강을 건너오다가 본 만달레이의 그것처럼 그리고 뉴욕의 코니아일랜드처럼 오늘도 열심히 땅 위에서 앞으로 가지 못하는 자신의 쓸쓸한 추억을 곱씹고 있었다.

일본 정원과 중국 문화의 콜라보, 시키나엔識名園
오키나와엔 두 개의 유명한 정원이 있다. 하나는 전형적인 중국풍의 후쿠슈엔이고 하나는 시키나엔이다. 지리적으로 일본 본토보다는 대만, 중국과 가까웠기에 오키나와 전역에는 중국 남방의 문화가 건축과 음식, 생활양식에 짙게 배어있다. 오키나와 사투리를 들으면 확실히 중국 쪽의 억양이 있다. 시키나엔은 왕족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류큐왕국에 방문한 외국 사신을 접대한 장소로 오키나와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세 곳 중 한 곳이다. 전쟁으로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지만 복원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다시 구현했다. 웅장한 가쥬마루반얀트리 나무를 지나면 뜰이 나오고 가지런한 돌담과 정원을 지나 연못으로 이어진다. 시키나엔은 이 연못 주위를 걸으며 산책하는 회유식 정원回遊式庭園-걷는 위치에 따라 경관이 달라진다의 형태로, 정원 중앙엔 중국식 정자인 육모정과 석회암과 현무암으로 만든 아치형 돌다리가 있어 단순한 정원의 구성에 시각적인 보탬과 균형을 준다. 정통 일본식 정원의 세심하고 정밀한, 얼핏 보면 최순우1916∼1984 평생토록 한국의 미를 찾아내고 알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선생이 지적한대로 신경질적인 느낌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왕가의 별장으로 쓰였다는 우둔으로 들어가니 정원이 한 가득 눈에 들어온다. 우둔이라함은 붉은 기와지붕을 일컫는 것으로 이는 당시 상류층에게만 허용된 격식이라고 한다. 호젓함과 속세를 잠시 비켜서는 간결함. 신혼부부들도 류소오키나와 전통의상를 입고 포토 웨딩 촬영을 위해 자주 찾는 명소라고 하는 시키나엔. 오키나와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한 가장 최적의 장소는 아마 이곳이 아닐까. 아침 일찍 방문한다면 이 공간을 혼자서 독차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는 법
국게저리 맥도널드 앞 버스 정류장에서 5번 버스
모노레일 현청 앞 역 버스 정류장에서 2번 버스
모노레일 슈리역에서 택시로 5분
오픈시간
4월~9월 09:00~17:30 / 10월~3월 09:00~17:00
입장료 400엔. 수요일 휴무

시샤
제주도에 돌하르방이 있다면 오키나와에는 시샤가 있다. 시샤는 해태와 비슷한 상상 속의 동물로 오키나와의 거리를 걷다보면 집과 상점은 물론 공공장소와 도로변 어디에서도 시샤를 볼 수 있다. 물론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얼굴이기도 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시샤는 수컷,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시샤는 암컷을 상징하는데 수컷은 들어온 행운을 입으로 물고 암컷은 그 행운이 나가지 못하게 꽉 가두어 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통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 시샤는 익살맞고 귀여운 모습에서부터 무섭고 희화화된 것까지 무수히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시샤를 지붕에 올려두면 집안으로 들어오는 액운을 물리친다고 해 오키나와에서는 시샤를 부적이나 수호신쯤으로 여긴다.

오키나와 먹거리

소금 아이스크림
커다란 소금 매장과 같이 운영하고 있는 국제거리의 소금 아이스크림 가게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소금과 아이스크림의 조합으로 특이성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다. 충분히 소금간이 되어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지만 사람들은 호기심에 준비되어 있는 소금이 함유된 코코아나 녹차, 와사비나 후추 등을 더 토핑해서 먹곤 한다. 소금은 의외로 아이스크림의 단 맛을 좀 더 끌어올려 준다고 한다. 생각보다 짜니 조금은 주의할 것.

소바
오키나와 소바는 좀 특이하다. 단순한 면이지만 의외로 호불호가 있는 음식으로 이 점은 일본 본토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바는 원래 메밀을 뜻하며 일반적으로는 메밀국수인 소바기리そばきり를 일컫는다. 하지만 오키나와의 소바는 메밀가루가 아닌 100% 밀가루로 반죽을 한 면을 굵직하고 짧게 썰어 끓여내기 때문에 면을 씹는 식감이 뚝뚝 떨어지듯 약하다. 소박한 고명과 돼지뼈로 우려낸 맑은 국물이 특징이지만 한국인의 입맛에는 확실히 싱겁다.

고야찬푸르
쓴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고야찬푸르는 단언컨대 완벽한 음식이 될 것이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고야는 니가우리ニガウリ-쓴 멜론라고도 불리며 우리나라에는 ‘여주’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찬푸르는 여러 가지를 섞어서 볶은 요리를 뜻한다. 고야 특유의 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두부와 각종 채소 등을 같이 조리하며, 비타민 C가 매우 풍부해 오키나와에서는 대표적인 건강식으로 꼽힌다. 오키나와가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손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와모리 소주
길쭉한 타이산 남방미로 만든 증류주인 아와모리あわもり는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전통 소주이다. 술을 유독 즐기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축제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항상 아와모리와 함께 한다. 향이 강한 무색의 백주로 첫 맛은 다소 독하지만 중독성이 강하고 향이 깊으며 숙취는 상대적으로 없는 편이다. 아와모리 소주는 보통 백누룩균을 사용하는 일반 소주와 달리 흑누룩균만을 고집하며 일본 소주의 역사에서도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소주로 알려져 있다.

오키나와 라면
일본의 라면 전문가들은 오키나와 라면을 규슈 북단 후쿠오카의 하카타와 남단의 나가시마 그리고 삿포로 라면과 더불어 일본 4대 라면으로 꼽곤 한다. 라면 자체가 중국에서 건너와 일본에서 발전한 음식이기에 중국과 가까운 오키나와는 아무래도 라면을 일찍부터 접해왔다. 오키나와 음식이 대체적으로 짜므로 미소みそ-된장나 쇼유しょうゆ-간장라면보다는 차슈チャーシュー-돼지고기라면을 주문하는 것이 좋다.

제공 : 모두투어(www.modetour.com, 1544-5252), TRAVEL MAGAZINE GO ON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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