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백제역사유적지구를 가다-부여

입력 2015-10-30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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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투어 제공

백제, 그 두 글자는 지금의 부여땅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백제의 26대 왕인 성왕이 강력한 백제 중흥의 꿈을 안고 넓은 들판이 펼쳐진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를 결정한 뒤, 약 120여 년. 강렬했지만 아플 수밖에 없었던 백제의 기억을 찾아 부여로 떠난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은 한반도에서 끊임없이 칼을 겨누고 대립했다. 때론 한 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두 나라가 화친을 맺기도 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맞잡았던 손을 놓고 다시 적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3국간의 역학관계는 외부의 힘에 의해 종식되었다. 660년, 신라는 3국이 아닌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여 백제를 공격했고, 백제는 그 거대한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멸망에 이르렀다.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은 정림사지오층석탑에 백제 정벌에 대한 기록을 남겨 지금의 우리가 그 사실을 알도록 했고, 부소산성의 낙화암에는 삼천궁녀의 전설이 남아 피로 얼룩진 당시의 아픔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의 사비백제는 아름다웠다. 궁남지에서는 서동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엿볼 수 있고, 국립부여박물관에는 백제금동대향로와 같은 당대 최고의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백제문화단지는 당시의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정수를 담고 그 우수성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정원, 궁남지
부여 읍내에서 남쪽 방향으로 천천히 걷다보니 어느새 궁남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궁남지는 궁의 남쪽에 있는 못이라는 뜻으로 다양한 모습의 연꽃이 수를 놓고 버드나무가 감싸 안고 있는 우리 역사 최초의 인공 정원이다. 싱그러운 초록향이 물씬 풍겨오는 연못 위로 홀로 유유히 떠있는 작은 섬과 그 섬을 지키고 있는 정자 포룡정. 궁남지가 무왕이 중국 전설 속 신선의 세계 방장선산方杖仙山을 모방해 만든 연못이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모습이다.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향해 걷는 길에는 언제 생겼는지 재미있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연못을 바라보며 탈 수 있는 대형 그네와 시소, 가족과 함께 예쁜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는 조형물들이 이곳을 찾은 여행자의 마음을 왠지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수양 버드나무 사이로 보이는 포룡정과 그 정자로 우리를 이끄는 다리는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운치를 더한다. 얼른 달려가 다리 위에 올라서고 싶은 풍경이지만 입구에서 잠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난다. 바로 서동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 서동의 어머니는 궁궐에서 나와 혼자 사는 여인이었는데 궁남지의 용과 교통하여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이 바로 서동이었다. 이 사실은 서동의 아버지가 왕 또는 태자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서동의 궁궐 밖 생활은 궁핍하기만 했다. 마를 캐다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던 서동에게 어느 날 궁중의 한 노신이 찾아와 왕의 밀명을 전한다. 적국인 신라에 잠입하여 국정을 탐지하라는 것. 서동은 신라에서 충실히 임무를 수행했고 우연히 선화공주를 만나 둘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고 있던 서동은 서동요라는 노래를 만들어 퍼트린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가서 서동 도련님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는 노랫말은 선화공주를 궁궐에서 쫓겨나게 만들었고 이를 미리 알고 있던 서동이 선화공주를 백제로 데려와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는 내용. 비록 아름다운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이지만 궁남지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선화공주를 위해 무동이 지어준 로맨틱한 선물이었다.

A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T 041-830-2330

TIP. 백제오천결사대출정상
궁남지 가까이에 있는 백제오천결사대출정상은 나당 연합군 5만 명과 맞서 싸운 백제의 명장 계백과 그의 5천 용사들의 혼을 위로하는 충혼탑이다. 다섯 마리의 말을 타고 용감한 모습으로 비상하는 모습에서 백제인의 뜨거운 기상이 느껴진다.

명품 백제를 만나다, 국립 부여박물관
궁남지를 나와 10분쯤 도로를 따라 걸으니 국립 부여박물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비백제의 흔적은 부여땅 곳곳에 흩어져있다. 부여 지역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많은 유적들이 부여를 빛내고 있고, 지금도 새로운 유적들이 발굴·출토되고 있다. 때문에 부여에서는 모두 4곳의 유적지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부여를 찾으면서도 자연스레 생각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은 부여박물관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도 아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부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백제금동대향로’. 그 이름 하나만으로 언제든 부여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감동적인 백제 최고의 명품. 처음 그 이름을 알게 됐을 때부터 그 모습을 보러 갈 때까지의 묘한 설레임은 이번 부여 여행길에도 여전히 함께였다. 날개를 활짝 편 한 마리의 봉황, 힘차게 날아오르려는 용, 서역의 악기 완함을 연주하는 악사, 어떻게 이곳에 새겨졌는지 알 수 없는 코끼리와 악어, 당시의 백제인이 분명한 사람들. 향로 하나에 새겨진 수많은 신비로움은 평생 풀지 못할 수수께끼이자 미스테리로 남아 언제든 다시 보고 싶은 애정을 나에게 심어놓았다.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가 담고 있는 것은 말 그대로 ‘백제의 전부’가 아닐까. 진정한 명품은 이렇듯 많은 것들을 품고 수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지금도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영원히 살아 숨 쉴 수 있는 무언가의 가치일 것이다.

A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T 041-833-8562
관람시간
평일 : 오전 9시 ~ 오후 6시
토요일/일요일/공휴일 : 오전 9시 ~ 오후 7시
문화가 있는 날 :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오전 9시 ~ 오후 7시
야간개장 : 매주 토요일 (4월 ~ 10월, 오전 9시 ~ 오후 9시)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관람료 : 무료
대표 유물 : 대쪽모양 동기, 송국리식 토기, 백제 창왕명 석조사리감국보 288호,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 부여 사택지적비, 산수풍경무늬벽돌보물 343호,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293호

1400년의 역사, 정림사 오층석탑
궁남지에서 부여 읍내를 향해 얼마쯤 걷자 담장 너머로 우뚝 솟은 석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터만 남은 정림사에서 유일하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정림사 오층석탑이다. 백제 때의 유구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부여에서 지금까지 백제의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이 탑은 사비백제를 대표하는 유적이자 부여 땅에 남은 단 하나의 탑이다. 때문인지 오층석탑 앞에 서면 그 의젓함에 잠시 숙연함이 느껴지기 까지 한다. 그렇다고 강인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석탑임에도 마치 목탑인 것처럼 부드러움이 넘친다. 칼로 자른 듯한 날카로움 보다는 1400년의 세월이 천천히 하나씩 깎아내어 오기라도 한 것처럼 둥글게 이어지는 곡선미가 보는 이에게 이 탑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외로이 절터를 지키고 선 오층석탑은 통한의 역사를 자신의 몸에 새기고 있다. 그 기록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지금까지 세월의 모진 풍파를 다 견디고 이겨냈던 건 아닐까.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 660년 8월 당나라의 수장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하고 자신의 공적을 새겨 넣은 글귀는 한동안 이 탑을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만들기도 했다. 소정방이 쌓은 탑으로 잘못 알려져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이미 세워져있던 탑에 소정방이 새긴 것으로 역사는 정림사 오층석탑의 억울함을 바로 잡아 주었다.
정림사 강당 자리에는 또 하나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알려진 석불좌상이 선한 미소를 지으며 이곳을 찾은 이들을 반긴다. 높이가 562미터에 이를 정도로 큰 이 불상이 문 밖의 정림사 오층석탑을 말없이 지켜주고 있다.

TIP. 정림사지 박물관
정림사지 한편에 정림사지 박물관이 함께 위치하고 있다. 백제 사비시대에 이르러 절정을 이뤘던 불교문화의 중심이자, 일본 고대 사찰의 효시를 이룬 정림사를 이해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모형으로 만들어진 정림사 원형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다양한 백제의 불교문화를 감상할 수 있다.

A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T 041-832-2721

삼천궁녀의 한, 낙화암
부소산성에 닿았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낮은 해발 100미터 정도의 언덕은 백제의 마지막 보루이자 사비백제의 도성이었다. 산성 안으로 들어가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삼충사三忠祠. 백제 말의 충신 세분을 모신 사당으로 성충, 흥수, 계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성충은 나라를 위해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다 감옥에 갇혔지만 나라 걱정을 멈추지 않았던 충신이고 흥수 역시 성충과 함께 왕에게 고하다 유배를 당했다. 계백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은 백제 최고의 명장이자 충신. 잠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다시 언덕을 오른다. 영일루와 곡식창고 자리였던 군창 터를 지나 부소산성 정상의 사자루에 도착했다. 살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사자루 누각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눈 아래에서 굽이굽이 흐르는 백마강은 초연하게 흐르지만 왠지 쓸쓸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낙화암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 그렇겠지.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며 차디찬 강물에 몸을 던진 삼천의 여인, 그녀들의 한이 붉게 물들었을 백마강을 떠올리니 백제의 마지막이 떠오르는 것 같아 가슴 깊은 곳이 조금씩 조금씩 아파온다. 낙화암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그녀들이 바라본 백제는 어땠을까. 죽음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백제의 앞날이 얼마나 서러웠을까. 백마강을 유유히 떠다니는 배에 올라 낙화암을 바라보며 조용히 그려본다. 백제와 삼천궁녀가 나누어지고 갔을 그날의 한을.

A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산1
T 041-830-2512

TIP.
고란사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을 추정되지만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백마강을 내려다보고 있어 주변 풍경이 아름답고 낙화암의 전설과 기이한 바위, 고란초 등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곳 약수가 유명한데 한 잔을 마시면 3년이 젊어진다고. 약수를 먹고 갓난아기가 되었다는 할아버지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백마강 유람선
고란사에서 백마강 구드래나루 까지 황토돛배 유람선이 다닌다. 백마강 위를 천천히 흐르며 올려다보는 낙화암은 또 다른 멋과 운치를 전해준다. 운행 내내 구성지게 울리는 노래가 낙화암과 백마강의 서글픔을 대변하는 것 같다.

모두투어 제공


사비백제의 환생, 백제문화단지
백제를 상상하면 사실 어느 것 하나 또렷하게 떠오르는 모습이 없었다. TV의 사극에서 봤던 연기자들의 복장과 양직공도에 그려진 백제 사신의 모습, 그리고 박물관에서 만난 몇몇 모습들이 어쩌면 내가 알고 있던 백제의 이미지 전부나 다름없었다. 백제문화단지는 그런 나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이다. 약 17년의 대장정과 7천억 원이라는 예산 투자를 통해 조성된 백제문화단지는 백제 사회를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백제 왕궁인 사비궁과 대표적 사찰로 알려진 능사 그리고 다양한 계층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생활문화마을, 개국 초기 한성지금의서울에 지어진 궁성인 위례성과 백제시대의 고분까지, 이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만나보기 위해 백제문화단지를 찾았다.
가장 먼저 사비성의 대문인 정양문이 보이고 그 문을 지나서면 널따란 중앙광장을 지나 사비궁의 위엄이 펼쳐진다. 삼국시대 중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한 이 사비궁은 중궁전, 동궁전, 서궁전으로 나뉜다. 가는 곳마다 1,400년 전 백제의 기상이 가득한 사비궁 안에서 또 다른 백제를 만나는 기회가 찾아왔다. 왕궁의 가장 중심에 있는 정전 천정전 앞에서 펼쳐지는 백제기악 미마지탈춤. 이 탈춤은 612년 백제인 미마지가 일본에 전해준 탈놀이로 당시 일본에 지금과 같은 한류 열풍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연극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 영광스러운 이름이 백제의 후예들에 의해 새롭게 재창조 되고 있는 모습은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사비궁을 나와 능사로 들어섰다. 성왕의 아들 창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왕실 사찰로 높이 38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백제시대 목탑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다. 국보 288호 ‘창왕명석조사리감’의 발굴은 567년 사리를 봉안하고 이 탑을 세웠다는 내용을 우리에게 전해 지금의 이 탑을 재현할 수 있게 해주었다. 능사를 나와 사비성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제향루에 올랐다. 이미 봤던 사비궁과 능사 반대쪽으로 생활문화마을이 펼쳐졌다. 계층별로 가옥의 지붕부터 달라 내부의 모습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지런히 내려가 귀족 가옥부터 서민들의 가옥까지 하나하나 둘러본다. 비록 살아 움직이지는 않을지라도 그곳에는 여전히 백제라는 이름이 머물고 있었다. 1,400년이 지났지만 지금 그 자리는 여전히 백제로 살아가고 있다.

A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368-11
T 041-635-7740
운영시간 하절기(3월~10월) 09시~18시, 동절기(11월~다음해 2월) 09시~17시
휴관 매주 월요일

TIP. 백제역사문화관
국내 유일의 백제 역사 전문 박물관이다. 백제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보여주는 상설전시실, 백제문화단지의 조성 과정을 볼 수 있는 건립기념관, 백제 관련 영상을 상여하는 금동대향로극장, 백제 정보 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다.

제공 : 모두투어(www.modetour.com, 1544-5252), TRAVEL MAGAZINE GO ON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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