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세대가 뜬다①] 전문 및 “나? 문화덕후”…40대(Young 40’)의 힘

입력 2016-03-23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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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디자인|김청조 기자 minigram@donga.com

■ 1. C세대 ‘문화덕후’

1980년대 말 민주화의 격랑이 지나간 뒤 문화적 소비의 열린 공간 안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대가 탄생했다. 조직문화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의를 처음 ‘실천’한 세대, 강한 문화적 취향을 통해 자아를 표현한 세대,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탈권위주의적이고 자유로운 개성이 뚜렷했던 이들을 세상은 ‘X세대’라 불렀다. 그리고 20여년 뒤. 그들은 40대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청춘이 향유했던 문화적 취향을 버리지 않은 채 경제력을 보태 유력한 대중문화 소비층으로 자라났다. 스포츠동아는 이들을 ‘C세대’라 부른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사랑했고
‘슬램덩크’를 탐독 했던 X세대

세월 흘러도 변치않는 ‘문화 DNA’
가장 젊은 40대 ‘C세대’로 재탄생
아이돌 덕후·직캐머·피규어 돌풍…
그들이 즐기면 ‘메가 트렌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나 칠봉이와 친구일 법한 94학번 신문철(41) SM콘텐츠인베스트먼트 팀장은 자발적 비혼(非婚)이다.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사회적 관습과 통념에 얽매이기 싫”고, ‘문화적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도 “혼자인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신씨는 1년에 4번쯤, 가까운 일본부터 멀리 유럽까지 여행을 떠나고, 한달에 2∼3차례 극장을 찾는다. 외국 가수의 내한공연은 대부분 챙겨보는 음악 마니아다. 월 1회 이상 콘서트와 뮤지컬을 관람하지만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많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만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PC게임도 하고 플레이스테이션도 즐긴다. 책장에 꽂힌 만화책은 무려 1200권에 이른다. 1편 관람에 3000원쯤 하는 IPTV 한달 영화 요금은 3∼4만원. 한국엔 오지 않는 아일랜드 록밴드 U2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갔던 일은 즐거운 기억이다.

신씨는 10대 시절부터 이렇게 즐겼다. 지금은 없어진 서울 종로2가의 종로서적과 코아아트홀을 “하릴없이 오가며” ‘슬램덩크’를 읽고, ‘퐁네프의 연인들’을 관람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즈음에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도 즐겼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접할 수 있었던 시절이죠. 그때부터 문화적으로 새로운 것, 좋은 것을 찾고 즐기는 게 중요한 가치가 됐습니다.”

요즘엔 꽃꽂이를 배운다. 직장 근처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 다니기 시작한 지 3개월째. “꽃이 좋아서 시작한 취미”다. 20대 시절 하던 일들을, 경제력으로 더욱 세련되게 향유하는 신씨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이쯤 되면 40대는 이미 ‘아저씨’로 통칭되는 ‘어른’의 구태의연함과는 거리가 멀다. ‘덕후’(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 ‘오다쿠’의 우리말 발음에서 따온 말)는 그렇게 탄생한다.


● 아이돌 덕후, 소비자에서 트렌드세터까지

93학번 김상만(가명·42·회사원)씨는 걸그룹에게서 생활의 활력을 얻는 ‘걸그룹 덕후’다. 회사 업무가 끝나면 술자리 대신 걸그룹의 무대를 찾는다. 쑥스러움은 순간이다. “회사 일의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행복감이 훨씬 더 크다. 출퇴근길 걸그룹의 노래를 듣는 일은 일상이다.

김씨는 요즘 여자친구, 트와이스, 에이프릴을 주목하지만, 걸스데이에 대한 애정이 여전하다. 걸스데이의 모든 음반을 갖고 있다. 디지털 음원까지도 모두 다운로드 받았다. 여고생들이 똑같은 엑소 음반을 10장씩 사는 일에도 깊이 공감한다. 그 역시, 같은 음반이지만 표지만 달리한 걸스데이의 5가지 버전을 모두 샀다. 이벤트에 응모해 걸스데이의 오사카 팬미팅을 다녀온 것은 ‘로또’였다.

김씨는 학창시절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 댄스그룹에 열광했고, S.E.S와 베이비복스를 흠모했다. 취업 준비 등으로 잠시 ‘휴식기’가 있었지만, X세대의 피는 속일 수 없었다. 미혼인 그는 결혼하더라도 지금의 생활패턴은 유지할 생각이다. 행사 ‘현장’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다른 ‘덕후’들을 이미 목격한 터였다.

김씨는 ‘현장’에서 ‘대포’를 든 ‘직캐머’들과 늘 마주친다. ‘대포’는 고가의 망원렌즈가 부착된 고급 카메라이며, 직캐머는 직캠(걸그룹 무대를 관객이 찍은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이다. 대부분 30∼40대들이다. 2014년 11월 하니를 ‘직캠 여신’으로 만들고, 소속팀 EXID를 ‘역주행 신화’로 이끈 ‘주역’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촬영한 영상물을 해당 가수의 팬카페나 유튜브에 올려 공유하고,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이들의 활동으로 ‘직캠 여신’이 탄생하고, 기획사들은 소속 걸그룹을 띄우기 위해 직캐머들의 ‘표적’이 되기 위해 애쓴다.

40대 직캐머들은 개인사업자도 있지만, 주말을 이용하는 직장인도 많다. 이들은 여러 걸그룹 팬카페에 가입해 스케줄을 확인하고, ‘출동’ 준비를 한다. 직캐머 커뮤니티도 있어 정보를 공유한다. 그렇게 C세대는 아이돌 문화의 소비자를 넘어 콘텐츠 생산자 심지어 트렌드 세터가 된다.


● “X세대, 역사상 가장 젊은 40대”

나만의 소비를 즐겼던 X세대는 왕성한 소비력과 저마다 개성으로 다양한 문화를 즐기면서 하위문화를 주류문화로 끌어올리고, 또 메가 트렌드를 확장·개발한 첫 세대로 꼽힌다.

X세대의 부모세대는 만화를 보는 자녀에게 대부분 ‘한심하다, 공부나 하라’ 했고, 프라 모델을 만들던 대학생 자녀에겐 ‘다 큰 어른이 무슨 장난감이냐’고 잔소리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문제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요즘 ‘어른’들은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피규어에 열광한다.

X세대가 C세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만의 ‘문화적 유전자’ 덕분이다. 한 생물체가 이종교배를 계속 진화해가듯, 이들도 새로운 문화를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문화적 소양을 키우고, 시야도 넓히며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을 얻고 있다. 신문철씨는 “문화를 즐기면서 내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2013년 ‘좀 놀아 본 오빠들의 귀환’으로 X세대의 활약을 예측했던 트렌드 연구자이자 경영전략 컨설턴트인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최근 발간한 ‘라이프 트렌드 2016’을 통해 “영 포티(Young 40‘s)로 다시 등장한 X세대는 역사상 가장 젊은 40대로, 중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꿔 놓고 있다. 진보·보수의 진영 논리를 떠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태도, 가정과 기업의 중심이자 다른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킹핀’으로서 향후 이들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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