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복서→모델→배우… 역경 딛고 안보현 꽃이 피었습니다

입력 2016-04-12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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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첫인상 어때요?”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배우 안보현(27)에게 역질문을 받았다. 토끼눈을 뜬 그는 꽤나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질문하는 것에만 익숙하던 기자는 잠시 고민하다 “‘태양의 후예’ 영향인지 마초적인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정말요? 그런 말 처음 들어요”라는 수줍은(?) 반응이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키 187cm에 ‘태평양 어깨’를 지닌 이 청년은 대화가 깊어질수록 양파처럼 다른 면을 드러냈다. 스스로를 “무뚝뚝한 남자”라고 말하면서도 손으로는 허니버터브레드를 썰더니 곱게 포크에 찍어 건네는 매너까지 보였다.

안보현이 인터뷰에서 밝힌 과거 또한 이러한 반전 못지않게 변화무쌍했다. 10대에는 복서로 갓 스물에는 모델로 활동하다 20대 끝자락에 배우가 됐다. 첫 주연 영화 ‘히야’를 비롯해 인기리에 방송 중인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최고의 연인’으로 활동 중인 안보현. 그는 뒤늦게 첫 걸음을 뗀 만큼 빠르고 열정적으로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사는 청년이었다.


Q. ‘히야’가 연기자로서 첫 작품인가요.

A. 첫 작품은 드라마 ‘골든 크로스’였어요. 대사는 있지만 이름은 없는 경호원 단역이었죠. 이후에 ‘마이 시크릿 호텔’에서는 남궁민 선배의 비밀요원을 맡았고요. 그때부터 연기가 정말 재밌고 더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이후에 오디션을 본격적으로 봤고 그러다 영화 ‘히야’에까지 인연이 닿았어요.


Q. 형제로 호흡을 맞춘 호야와는 어땠나요.

A. 호야는 정말 유명한 아이돌인데다 ‘응답하라 1997’을 찍고 난 후였잖아요. 저는 연기 초년생이었고요.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부담감이 너무 컸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호야와 같은 부산 출신에 서울에서 거주하는 집도 가깝더라고요. ‘히야’ 촬영 준비하면서 매일 봤어요. 호야와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운동하면서 가까워졌죠. 그런 시간을 보내니까 연기할 때 호흡도 정말 좋더라고요. 걱정할 필요 없이 생각보다 잘 맞아떨어져서 좋았어요.


Q. ‘히야’에는 어떻게 캐스팅 됐나요.

A. 모델학과 연기 전공 교수님이 ‘히야’ 감독님을 소개해주셨어요. 교수님은 제 이미지가 ‘히야’ 속 진상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처음에는 감독인지도 모르고 만났어요. 두 번째 만났을 때 감독님이 “캐릭터가 너와 비슷한 것 같다. 해볼 수 있겠느냐”면서 ‘히야’ 대본을 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6~8번 정도 오디션을 봤죠.


Q. 진상 캐릭터와 어떤 부분이 닮았나요.

A. 사투리를 쓰기도 하고 진상이처럼 저 또한 표현이 서툰 편이에요. 남동생은 아니지만 일곱 살 터울인 여동생도 있고요. 가정적인 환경도 비슷해요. 저는 15살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냈거든요. 진상이와 공감대가 형성되니까 감정 이입할 때 쉬웠어요. 진상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기보다는 안보현을 ‘진상화’하려고 했죠.


Q. 15살 때부터요?

A. 어릴 때 복싱을 했거든요. 체육중학교-체육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숙소 생활을 했어요. 부모님과 산 것보다 혼자 산 시간이 더 길죠.


Q. 복싱선수가 된 과정이 궁금하네요.

A. 중학교에 복싱부가 있었어요. 멋있어서 해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어요. 배구부가 있었다면 배구를 했겠죠? 복싱부로 활동할 때도 배구부와 농구부에서 제안이 오긴 했어요. 그래도 일단 저는 복싱을 시작했으니까 ‘복싱으로 끝을 보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전국체전 1위와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삼잖아요. 저도 어릴 때부터 그게 최종 꿈이었고요.


Q. ‘복싱으로 끝을 보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왜 모델학과에 진학했을까요.

A. 복싱 선수 생활할 때 입상도 하고 성적도 좋아서 체육고등학교에 갔어요. 그런데 선후배 체제가 엄격한데다 당시 부상을 많이 입은 상태였죠. 손가락 갈비뼈 눈썹 등 군데군데가 찢어지기도 했고요. 문득 나이 들어서도 운동한다는 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너무 힘드니까 운동을 접고 직업군인을 하려고 했어요. 몸으로 하는 건 자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군대는 20세 이상이 되면 누구나 갈 수 있잖아요. 주위에서 ‘군대는 나중에도 갈 수 있으니 먼저 다른 것을 해봐라’고 하더라고요. 사촌누나는 모델학과를 경험할 수 있는 대학교 체험 캠프를 제안해줬죠. 캠프를 통해 처음으로 모델학과를 접하고 ‘모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수님들도 ‘너 입학하면 잘 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체육학과도 붙었지만 부모님을 설득해 모델학과에 갔죠.



Q. 운동선수에서 모델로 진로를 180도 바꾼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A. 우선 저에게는 ‘키’라는 장점이 바탕이 있으니까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해보니 되더라고요. 모델로 활동하는 친구들을 보면 최종 목표가 모델인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 또한 강동원 차승원 등의 선배를 보면서 ‘나도 모델을 발판 삼아 배우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죠. 모델학과 재학 중에도 워킹 수업보다는 연기 수업을 더 즐겼어요.


Q. 연기에 애정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A. 복싱부에 있을 때 단체로 영화 ‘챔피언’을 관람한 적 있어요. 그때가 계기였던 것 같아요. 복싱선수를 연기하는 유오성 선배를 보고 많이 놀랐어요. 저는 그 분이 배우가 아니라 복싱 선수인 줄 알았거든요. 배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 받을 정도였어요. 말도 안 되게 리얼하고 정말 멋있었어요.

그 작품을 보고 저도 복싱 역할의 배우를 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배우는 양아치 역할을 하면 양아치가 되고 복서 역할을 맡으면 복서가 되는 거잖아요. 배우에 대한 매력을 느꼈죠. 이후에 고등학교 때 영화 ‘주먹이 운다’를 보면서 그 마음을 더 키웠어요.


Q. 그렇게 배우가 되고 싶었다면 연극영화학과에 갈 수도 있었을 텐데요.

A.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에게 ‘최선의 길’이 모델학과라고 생각했어요. 키가 컸으니까 모델 일을 발판 삼고자 했죠. 저도 그분들(앞서 언급한 강동원 차승원 등)처럼 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Q. 목표한 것에 비해서는 연기 기회가 너무 늦게 온 것 같아요.

A. 20대 후반에 데뷔했으니 너무 많이 늦게 왔죠. 모델은 키가 커서 시작할 수 있었지만 연기는 스스로 준비한 후에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없었죠. 연기 계통에 지인도 없으니 오디션은 생각도 못했고 ‘우선 연기학원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학원을 다니기 위해서 목돈을 마련했죠.


Q. 소속사에 들어가서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A. 대형 기획사의 ‘체제’에 갇히기는 싫었고 겁도 났어요. 제 실력이 다 들통날 것 같았거든요. 저 같은 사람이 천명 만명 일텐데 그래도 제가 그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게 있어야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질 것 같았어요.

그리고 금전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했어요. 회사에 속하게 되면 모델 일도 아르바이트도 못하잖아요. 당시 저는 생활고에 시달려서 막노동, 대리기사, 택배 등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생각보다 학원 수업비가 비싸니까 학원 수업은 못 받았어요. 아는 분이 연습실을 빌려주셨고 그분을 통해서 6개월 정도 개인 수업을 받았죠.


Q. 지금은 연기를 하고 있어요. 현재 ‘준비된 상태’인 건가요.

A. 본부장님 덕분이에요. 연습실을 빌려준 지인이 지금 회사의 본부장님을 소개해주셨어요. 정말 운 좋게 만났죠. 그 인연이 2012년부터 지금가지 이어졌고요. 제가 준비하고 배울 수 있게끔 잘 이끌어주신 고마운 분이에요.


Q. 복싱 선수에서 모델 그리고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어떤가요.

A. 운이 좋은 편인 것 같아요. 원래 저는 안 되더라도 혼자 이루고자 하는 성격인데 감사하게도 좋은 분들 만나서 여기까지 왔네요. 요즘 정말 감개무량해요. ‘힘들지 않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재밌어요. 이 일은 재미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시작이고 지금이 제일 중요할 때죠. 출연작 ‘태양의 후예’가 방송되고 있는데 이 작품 하나로 제 인생이 한번에 바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더 잘하고 싶고 욕심도 많아요.



Q. 서른을 앞둔 지금, 연애와 결혼 그리고 부모님 등 생각이 더 깊어지겠죠.

A.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손을 벌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중학교 때부터는 용돈도 안 받았고요. 부모님은 제가 뭘 하든 알아서 잘 할 거라고 믿어주셨어요. ‘히야’를 보시더니 저에 대한 확신이 드셨나봐요. 어머니의 자랑거리가 된 것 같아서 뿌듯해요.

연애라…. 물론 하고 싶지만 지금은 할 수가 없네요(웃음). 회사에서도 ‘연애하라’고 권장하지만 중요한 시기라 당장은 연애 생각이 없어요. 일에 집중해야죠. 나중에 결혼하면 돈에 쫓기지 않는 행복한 아빠가 되고 싶어요. 부유하지 않더라도 가정적이고 아이에게 재미있는 아빠. 제가 그렇게 살지 못했거든요. 아버지는 딱 경상도 남자 스타일이셔서 가족에게 표현도 잘 못하는 분이셨어요. 저는 제 아이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터뷰가 끝나고 카페를 나서는 순간 일생일대의, 다시는 못 만날 여자를 마주친다면요.

A. 잡아야죠. 하하하. 잡는데요. 상대방에게 이해를 시키려고 하겠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을 싫어한다거나 시기질투를 느낀다면 못 만날 것 같아요.


Q. 어떤 여성상을 좋아하나요.

A. 예전에는 신사임당 같은 스타일을 고집했어요. 지금은 활기찬 성격이 좋더라고요. 김소연 선배 같은 스타일? ‘우리 결혼했어요’를 봤는데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듯한 모습이 좋았어요. 대화도 잘 통했으면 좋겠어요. 아, 센 여자는 싫어요.


Q. 동종업계 종사자는 어때요? 배우라든가.

A. 만나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물론 장단점이 있겠죠. 아무래도 서로 이해해주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부부가 아닌 연인일 경우 한 사람은 바쁘고 다른 한 사람은 일이 없을 때 바쁜 상대에게 시기질투를 느끼지 않을까요. 그래도 지금은 장점이 많이 보이네요.


Q. 다가오는 30대는 어떻게 보내고 싶어요?

A. 30대가 되어도 20대처럼 살 거예요. 눈 깜짝할 사이에 서른이 됐으면 좋겠어요. 서른이 되어서도 스무살 때 할 수 있는 배역을 하고 싶어요. 아직 초년생이라서 그런지 신선하고 재밌는 게 더 많아요.


Q. 해보고 싶다거나 욕심나는 장르 혹은 캐릭터가 있나요.

A. 악역이요. 영화 ‘올드보이’ 속 유지태 선배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선한 외모인데도 절제된 악한 연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제 얼굴을 보면 양쪽의 느낌이 되게 달라요. 왼쪽에는 선이 있고 오른쪽에는 악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이게 단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활용하려고 하고 있어요.


Q.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A. 모델 활동할 때부터 ‘누군가의 닮은꼴’이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모두 ‘핫한’ 분들이라서 감사하긴 했지만 제가 ‘닮은꼴’로만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안보현이라는 배우로, 완전히 제 색깔을 만들고 싶어요. ‘모델 겸 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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