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diary] 사진에 미친 의사와 ‘고흐 그림을 닮은 사진’

입력 2016-06-2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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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에서 온 사진|윤상민|영창출판사

그는 ‘촌놈’이었다. 어린시절 그림이라곤 이발소에 걸려있는 ‘명화’와 달력 그림이 전부였다. 하루는 달력에서 평생 잊지 못할 그림을 보았다. 용처럼 살아 움직이며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나무였다. 소년은 곰곰이 생각했다. ‘저걸 어떻게 그렸을까.’ ‘저 그림을 그린 사람은 누굴까.’ 생각에 꼬리를 물다 문득 그림 아래 작가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빈센트 반 고흐’라고 적혀 있었다. 그 후로 꿈이 생겼다. 화가였다. 고흐처럼 멋있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러나 화가의 꿈을 접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흐의 그림을 본 따 그렸지만 하늘과 땅 차이. 이내 화가엔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이비인후과 의사가 됐다. 사진을 좋아하던 의사는 어느 날 실수로 ‘이상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고흐의 화법을 빼닮았다. 어린 시절 가슴 속 깊이 잠자고 있던 고흐의 그림이 생각나 역추적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 ‘이상한 사진’, 아니 ‘고흐의 그림을 닮은 사진’을 찍는 법을 터득했다. 그의 이름은 윤상민이다. 가톨릭의대 교수로 재직하다 서울 인근의 한 도시에서 개원해 히포크라테스의 길을 걷고 있다. 그가 찍은 사진은 (그의 말에 의하면) 국내엔 없는 유일한 촬영기법이다. 동일한 장소의 동일한 사물이라도 촬영기법을 달리하면 생동감과 입체감이 달라져 전혀 새로운 사진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해외에도 검색해 봤지만 비슷하기만 할 뿐 ‘근본’이 달랐다. 말하자면 최초의 ‘고흐의 그림을 닮은 사진’이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사진인 듯, 그림인 듯, 추상화인 듯, 사진조작인 듯하다. 헛갈린다. 그래서 그는 그 사진은 ‘미래에서 온 사진’이라 부른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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