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스포츠도박의 검은 늪’ 결국 파멸한 전직 K리거

입력 2016-07-11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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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을 들인 ‘검은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새 인생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범죄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김모(32)는 프로축구선수였다. 2007년 K리그 수도권 유력 구단에 입단한 뒤 지역 명문팀을 거쳐 2011년 마지막 팀에 안착했다. 꾸준히 출전기회를 잡으며 빛을 보는 듯했던 그의 축구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간 것은 그해 4월 6일 리그컵 조별리그 경기에서였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직전에 몸담은 클럽이었다.

승부조작 브로커로부터 1억2000만원을 받은 후배 선수 박모(30)가 건넨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불법행위를 약속한 김모는 이날 경기에 선발출장해 풀타임을 소화했고, 팀은 ‘예정대로’ 크게 졌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 소속팀에서 친분을 쌓은 선배 선수 김모(40)에게 승부조작이 이뤄질 것이라는 정보를 흘려 선배가 1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기는 데 일조했다.

프로축구 승부조작 수사에 나선 창원지방검찰청은 그해 6월 9일 “승부조작에 가담했거나 불법 베팅한 혐의로 현직 프로축구선수 5명을 구속 기소하고, 선수가 포함된 관련자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김모에게 검찰은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4000만원을 구형했다. 이후 김모는 그라운드 복귀를 잠시 꿈꿨다. 그러나 축구계에 더 이상 설 자리는 없었다. 영구제명 징계는 풀리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5년여의 세월이 흘러 11일 다시 등장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도박개장·도박장 개설 등)로 총책 박모(35), 조직폭력배 김모(35) 등 11명을 구속(38명 검거)했는데, 여기에 김모도 있었다. 일당은 2012년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회원 1만3000여명을 상대로 판돈 1조3000억원을 받아 약 2900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해외에 기반을 둔 유명 스포츠도박업체 ‘피나클’, ‘스보벳’, ‘텐벳’, ‘아이비씨벳’ 등 4곳과 계약한 뒤 필리핀에 중계사이트 18개를 개설해 국내 회원을 대상으로 도박사이트를 운영했다. 해외 도박사이트 알산 온라인카페 운영자이기도 한 박모는 국내서 해외 도박사이트에 접속하기 어려운 점을 이용해 중계사이트를 개설한 뒤 자금관리·대포통장모집·해외운영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운영했다. 박모는 2014년 8월 필리핀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호주교포 명의로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국내 특급스타가 활약 중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에 3년간 50억원을 후원하는 방식을 통해 합법 사이트로 위장한 혐의도 받고 있다.

김모는 체포 당시 자신은 일당이 범죄수익으로 투자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은 그가 자금조달 및 세탁, 회원 알선 등의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로 일당은 수익금 중 일부(722억원)로 국내외 카지노와 아이스크림 전문점 등 15개 회사에 투자한 사업가 행세를 했고, 명품시계와 고급 외제 승용차, 1억원 상당의 귀금속도 사들였다.

서울경찰청 강선봉 경감은 “아직 수사 중이지만 공범인 김모의 불법행위가 포착된 사실은 맞다. 현재 범죄수익 152억원을 환수했고, 나머지도 추적 중이다. 잡히지 않은 공범 12명은 인터폴 등 국제공조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주통합파’ 등 전국 8개 조직폭력배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돼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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