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헤드샷 퇴장’이 몰수패로 이어진다면?

입력 2016-07-15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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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박희수.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 9회말 마무리투수가 던진 직구가 타자의 머리로 향한다. 해당 팀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지만, 규정에 따라 더 이상 공을 던질 수 없다. 퇴장이다. 공 1개로 인해 우승팀이 바뀌게 될 확률은 급격히 상승한다.


# 연장전. 엔트리에 있는 야수는 이미 모두 소진했다.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를 투수도 없다. 마운드에 선 최후의 선수가 던진 직구가 타자의 헬멧을 스친다. 규정에 따라 투수는 퇴장. 그라운드에 남은 야수는 8명, 9명을 충족시키지 못해 경기를 치를 수 없다. 해당 팀은 공 1개로 ‘몰수패’를 당한다.

‘헤드샷 퇴장’ 규정이 불러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이다. 공 1개가 가져올 후폭풍은 엄청나다. ‘설마 일어나겠나’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매우 작은 확률이라도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

투수가 던진 강속구는 타자들에겐 때론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 몸에 맞는 볼 하나가 ‘선수생명’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 삼성 배영섭이 LG 외국인선수 레다메스 리즈의 150㎞대 강속구에 머리를 강타당한 뒤, 한동안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전열에서 이탈했다. 당시 삼성 류중일 감독은 감독자회의에서 ‘헤드샷 퇴장’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2003~2004년 2년 동안 해당 규정이 시행된 적이 있었는데, 느린 변화구가 머리를 맞아도 퇴장시키는 등 불합리성이 부각돼 폐지됐다. 결국 고의 여부와 상관없이 직구에 한해 퇴장시키기로 결정했다. 현재 이 규정은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공식 야구규칙에 없는 ‘로컬룰이다. KBO도 ‘리그규정’에 명시하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만 해도 논란이 있었다. 특히 투수 출신 감독, 그리고 지도자 경력이 많은 이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투수들이 ‘몸쪽 승부’에 위축되는 등 야구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논거였다. 고의성 여부를 판단해야할 심판의 역할을 ‘자동 퇴장’이라는 규정에 떠넘겼다는 비난도 있었다.

벌써 시행 3년째, 2014년 8회(준플레이오프 1회 포함), 2015년 8회, 올해는 13일 광주 SK-KIA전 SK 박희수까지 총 3회 나왔다. 3-3 동점이던 9회말 2사 후 나와 끝내기 패배의 단초가 된 박희수의 사례는 가장 극적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선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여전히 투수 출신 지도자들은 민감해 하지만, 젊은 감독들을 중심으로 ‘선수 보호가 우선’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거액의 FA 계약 등 선수 개개인의 몸을 고려하는 풍토가 정착된 결과다.

그러나 그라운드에 9명의 선수를 세울 수 없어 몰수패를 당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 논란이 불거질 여지가 있다. 심판진이 합의판정과 마찬가지로 점차 책임을 회피한다는 인상도 지워지지 않는다. KBO 관계자는 “제도 시행 후 지켜보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문제점이 누적되면 재논의가 이뤄질 수는 있지만 당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광주 |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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