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형·동생이면 승부조작도 가능?’ 선수들의 도덕불감증

입력 2016-07-2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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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DB

넥센 문우람(24· 현 국군체육부대)과 NC 이태양(23)이 21일 국민체육진흥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이 중심에는 불법스포츠도박베팅방 운영자와 연결해준 브로커 A씨가 있었다.

창원지방검찰청 발표에 따르면, 브로커 A씨는 ‘스포츠에이전시를 준비한다’며 야구선수들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았다. 문우람을 통해 알음알음 선수들을 소개 받으면서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이태양 역시 문우람과 저녁식사 자리에 불려갔다가 브로커 A씨를 알게 됐다.

야구계 관계자는 “보통 이런 사람들이 술 사주고 밥 사주면서 선수들과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된다”며 “선수들이 자신을 믿는다 싶으면 별 일 아닌 것처럼 승부조작을 제안하고 그걸 미끼로 엮는다. 선수는 자신이 하는 일이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물론 2016년 승부조작은 2012년 때와는 성질이 달랐다. 검찰 수사 결과 승부조작을 제의한 이는 브로커가 아닌 선수였다. 문우람이 브로커 A씨에게 승부조작을 제안하고 이태양까지 끌어들여 작당모의를 했다. 그러나 불법도박베팅방 운영업자와 연결고리 역할을 한 브로커 A씨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이날 발표한 공식사과문에서 ‘검은 유혹의 온상인 스폰서 문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브로커들이 마치 ‘스폰서’처럼 선수들에게 대가성이 없는 접대를 하다가 결국은 범죄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브로커가 선수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추어시절부터 친분을 쌓은 인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2012년 박현준과 김성현(이상 전 LG)을 승부조작의 늪으로 유인한 브로커 B씨는 대학시절 알던 형이었다. 당시 수법은 이랬다. ‘형을 좀 도와 달라. 1회 첫 타자에게 볼넷만 하나 내주면 된다.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니 문제될 요소나 들킬 위험도 없다’는 식으로 선수를 유인하고, 수고비 명목으로 돈을 건넸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 계좌를 통해 돈을 지급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후 브로커들은 계속해서 승부조작 제의를 하고 만약 거절하거나 실패하면 실체를 드러내면서 선수를 협박하는 방법으로 범행을 이어갔다.

더 큰 문제는 선수들의 도덕불감증이다. 이들이 2012년 KBO리그를 떠들썩하게 했던 승부조작 사건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아는 형, 아는 동생이니까’ 승부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안일함을 보였다. C구단 고참선수는 “후배들에게 만약 그런 제안이 오면 어떤 상황이든 그 자리를 무조건 박차고 나오라고 강조하는데 또 이런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며 씁쓸해 했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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