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①] 아이고, 산 옆구리 찔러 바다로 끌고 가네∼

입력 2016-07-2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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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포끝에서 창굴로 이어지는 해안가는 갯바위로 이뤄져 있다. 물이 빠지길 기다렸다가 갯바위 아래쪽으로 걸으면 접근이 쉽다. 고흥(전남)|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세밀한 생활사와 풍속사 혹은 세상의 어긋난 도리에 대한 풍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윤색과 와전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이야기를 낳은 공간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의 입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다. 콘텐츠로서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본래의 설화를 들여다보는 까닭이다. 넘쳐나는 대신 그만큼 사라져가는 진정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로서 설화의 가치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전남 고흥군은 땅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반도의 토양 위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가 풍성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류몽인이 이 곳에서 ‘어우야담’을 쓸 수 있었던 한 배경이기도 하다.

웹툰과 애니메이션,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또 다른 원형일 수도 있을 고흥의 설화를, 스포츠동아가 격주 연재한다.


■ 신명장사와 창 - 봉래면 예내리 창포마을


신명장사, 창끝에 산을 매달고 가다
여신령 훼방에 포기하고 떠난 자리
깊은 상처, 저녁놀 붉은 빛에 물드네


고흥 나로우주센터 정문에서 잘 닦인 신작로를 따라 구불구불 산길을 넘다보면 창포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내려가면 창포마을이다. 마을 어귀 회관을 지나 해안을 바라보고 내리막으로 뻗은 길에선 방파제가 병풍처럼 서 있다. 방파제 안으로 만이 형성되어 포구를 이루고 있지만 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해안에는 최근에 신축된 것으로 보이는 호텔식 펜션도 있다. 포구의 길을 따라 늘어선 집들은 대부분 민박집이다. 이슬비 내리던 어느 초여름 날 찾아간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창포마을 풍경이다.

방파제로 향하는 해안가 마지막 민박집 앞으로 진돗개 두 마리가 줄에 묶여 짖어댄다. 창포마을이 끝나는 이 곳은 ‘창포끝’이다. 창포끝 방파제가 향하는 앞바다 너머는 동일면 봉영리 봉남마을이다.


● 창굴, 커다란 창에 옆구리를 찔린 흔적

창포끝에서 길쭉하게 바다로 뻗은 해안은 온통 갯바위의 차지다. 갯바위 해안을 따라 500m쯤 들어가다 보면 폭 1.5m, 높이 5m쯤 되는 얇고 길쭉한 구멍이 나 있는 곳이 보인다. 좁고 긴 구멍 너머로 건너편 바다가 보이고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바윗돌이 파도를 맞는다.

창굴(槍窟)이다. ‘창(槍)이 만든 동굴’이란 의미일 것이다. 거대한 창으로 섬의 돌출부를 푹 찔렀다 뺀 것과 같이 생긴 이 창굴에 얽힌 설화가 마을에 전해내려 온다.

옛날 신명장사라는 장수가 이곳 창포마을로 와서 주변 지형을 둘러보았다. 창포끝을 끌어다 바다 맞은편 동일면 봉영리 봉남마을 앞까지 이으면 아주 좋은 항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신명장사는 그 생각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고, 창포끝을 거대한 창으로 찔러 구멍을 내어 봉남마을 앞까지 끌고 가려고 했다.

순간 갑자기 여신령이 나타났다. “아이고, 산을 끌고 가네! 아이고!” 하며 소리를 지르고 훼방을 놓자 신명장사는 포기하고 그곳을 떠나버렸다. 창포끝은 끌려가다가 마는 바람에 현재와 같이 바다로 길게 삐쭉 튀어나간 돌출모양이 되었다. 신명장사가 창으로 찔렀던 구멍이 바로 창굴인 것이다.

창굴은 예리한 창으로 바위섬을 깊숙이 찔러 생겨난 흔적이다. 창굴을 통해 반대편 해안으로 갈 수 있다. 고흥(전남)|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연도교로 이어진 내나로도와 외나로도

바다를 사이에 둔 봉래면과 동일면은 각각 외나로도와 내나로도의 행정구역명이다. 과거에 두 섬은 함께 봉래면으로 불렸으나, 1970년대에 행정편의를 위해 동일면과 봉래면으로 나뉘어졌다.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는 1995년 개통한 450m의 연도교 나로2대교로 이어져 있다. 그 옛날 신명장사가 이으려던 두 마을이 결국엔 훗날 다리로 연결된 셈이다. 외나로도 끝에 고흥우주센터가 있다.

신명장사는 ‘좋은 항구’를 위해 내나로도와 외나로도의 오른쪽 끝(여수방면)을 이으려 했지만, 나로도항은 현재 그 반대편인 왼쪽 해안(완도방면)에 있다. 나로도항은 과거 삼치 파시(삼치어장의 중심지)로 유명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때에 이미 전기와 수돗물이 들어갈 정도로 부자마을이었다. 일본 어부들이 많았고, 지금도 일본식 건물이 남아 있다. 고흥에서 우체국이 가장 먼저 들어서고, 한때는 고흥군 세수의 3분1을 충당했을 만큼 부유한 지역이었다.

창포끝에서 창굴로 가려면 험한 갯바위를 ‘타야’ 한다. 방파제에서 배를 타면 편리하겠지만, 그럴 형편이 못되면 물이 빠질 때를 기다렸다 자갈로 이뤄진 길을 걷는 게 수월하게 창굴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다.


● 저녁놀 비친 바다, 자연이 만든 선물

이슬비가 여전한 오후, 마을회관에는 동네 노인들이 화투를 치고 있었다. 점심을 막 끝낸 이후인지 낮잠을 청하는 노인도 있었다.

“여기는 낚시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고, 개펄체험 하는 가족도 많이 찾는다.”

화투를 치던 노인이 말했다. 창굴은 가는 길이 험해서 지역 주민들이 소풍을 가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어스름 저녁바다에 펼쳐진 저녁놀이 장관이라고 입을 모은다. 10여 가구쯤 되어 보이는 한적한 해안가 마을 앞바다는 저녁이면 붉은 빛으로 물든다. 아침 뒷산에 오르면 일출을 볼 수 있다. 창포마을은 작은 모래해변이 있고, 썰물 때는 갯벌체험도 하고, 갯바위 낚시가 유명해 연중 낚시꾼들이 찾는 곳이다. 해안에 늘어선 민박집과 펜션들은 이 곳을 찾는 외지인들이 많다는 걸 증명해준다.

고흥의 물빛은 흐리다. 개펄 때문이다. 하지만 일몰의 바다는 그렇게 흐린 물빛이어서 더 아름다운지 모른다. 신명장사는 봉래면 창포마을과 동일면 봉남마을을 이어 그 아름다운 저녁놀을 오래도록 담아두려 했는지 모를 일이다.


● TIP 설화란?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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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전남) |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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