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이 만난 사람] 이에리사가 제안하는 한국체육이 나아가야할 방향

입력 2016-08-11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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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길목에 있는 한국체육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과연 어디로 가야할까.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은 엘리트와 생활체육을 균형 있게 발전시킨 선진국의 제도를 잘 보고 배워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 마을의 공터에는 큼지막한 탁구대 2대가 놓여 있었다. 번듯한 탁구대는 아니었다. 상판은 울퉁불퉁했고, 네트도 수시로 팽팽하게 조여야만 경기를 할 수 있는 비공인 탁구대였다. 라켓도 공용으로 쓰다보니 고무로 된 커버는 언제나 너덜너덜했다. 바닥도 여름이면 질퍽하고, 겨울이면 미끄러워 애를 먹었다. 이런 볼품없는 시설이었지만 인기는 최고였다. 라켓을 잡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야 했고, 한 경기 더 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이기려했던 기억이 나이테처럼 남아 있다. 그 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다. 돌이켜보면 동네마다 탁구 열풍이 일었던 셈인데,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이 열풍의 진원지였다.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구기종목에서 세계 정상에 선 대회였다. 주인공은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였다. 특히 가장 어린 이에리사는 단체전 19전 전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월드컵 이후의 축구 열풍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낳은 야구 저변 확대, 골프 박세리· 피겨 김연아 키즈와 맞먹는 사회 현상이었다. 40여년이 흘렀지만 ‘사라예보의 기적’이 전한 감동은 여전하다. 소싯적 탁구의 재미를 알게 해준 이에리사(62) 전 국회의원을 만났다. 19대 국회의원이던 그가 금배지를 뗀 지 2개월여 흘렀다. 태극마크의 무게를 감내해야했던 국가대표 선수와 감독을 비롯해 여성 최초 태릉선수촌장, 대학교 교수, 국회의원(새누리당 비례대표) 등 한국체육사의 걸음걸음에 커다란 족적을 남겨온 그에게 한국체육이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5월29일에 국회의원 임기가 끝났다. 끝나기 전 한달 간은 이에리사배 탁구대회가 열린 뉴질랜드와 호주, 미국에 다녀왔다. 내 이름을 딴 탁구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호주는 벌써 7회 대회고, 미국도 5회를 맞았다.” (몇 년 전 대전에서 열린 생활체육 이에리사배 전국탁구최강전을 본 호주의 한인체육회장이 이에리사배 대회를 개최했고, 이어 뉴질랜드, 미국, 괌 등으로 확산됐다.)


-국회의원 시절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교수도 하고, 선수촌장도 하고, 국회의원도 했다. 자리는 결국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삶에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국회의원 할 때는 일을 많이 해야 해서 힘들었다. 족쇄 같은 느낌이었다. 그만두니 편하다.”


-의원 시절 성과를 냈던 주요 법안은.

“대한민국 체육유공자 지정은 뿌듯하다. 2년 반 만에 됐다. (국회에) 들어가자마자 법안 발의를 했다. 특히 체조 김소영 선수가 체육유공자로 남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소영이가 태릉선수촌에 오면 국가는 그 친구한테 해준 게 없어서 부담스러워한다. 또 연습 중인 아이들이 두려움을 가질까봐 걱정도 한다. 그걸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생각난 것이 ‘다른 분야의 유공자는 있는데 왜 체육인 유공자는 없나’하는 것이었다. 도하아시안게임 때는 승마 선수가 사망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보훈처에서 반대했다. 결국 국민체육진흥법 안에 포함하는 방안으로 해서 만들게 됐다. 이 과정이 2년 반 걸렸다. 법안 통과되던 날, ‘소영아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김소영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훈련하다가 사고로 지체 1급 장애를 갖게 된 전 체조 국가대표 선수다. 2014년 국민체육진흥법에 근거해 마련된 대한민국체육유공자는 국제경기대회 참가 또는 이를 위한 훈련 도중 숨지거나 장애 2급 이상의 중증장애를 입은 경우에 지정되며, 본인 또는 유족은 월정액의 연금 및 교육·의료 등의 지원을 받게 된다.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또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태릉선수촌을 근대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 했는데, 연구용역을 준 뒤로 아직 보류 중이다. 태릉선수촌은 우리의 심장이다. 역사가 있는 태릉을 그대로 써야한다. 진천선수촌은 너무 시골이다. 진천 주위엔 공장지대가 많고 공해가 많아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그걸 밀어붙여서 진행한 거다. 태릉선수촌은 유네스코에 왕릉문화재 등재할 때 문제없는 지역만 쓰면 된다. 그리고 태릉선수촌을 문화재청에 체육문화유산으로 재지정하자고 주장했고, 최근에 다른 곳도 많이 재지정됐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체육인복지법이다.(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역도 금메달리스트) 김병찬 선수가 불의의 사고로 숨지니까 땜빵으로 대책들이 나오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복지법 제정 후 복지재단을 만들어 생활이 어려운 선수들에게 지원 및 복지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체육인들만을 관리할 수 있는 그런 복지법이 필요하다. 예술인 복지법은 벌써 5년이나 돼 원로 예술인 등 지원책이 마련됐다.”

이 전 국회의원은 의원 시절 체육계의 제도 개선을 위해 애를 썼다. 지도자 자격증을 따려는 국가대표 출신들에게 실기시험을 면제시켜주는 제도와 생활체육인이 국가대표선수를 지도할 수 있는 제도의 개정 등을 이뤄냈다. 아울러 예체능계 국가우수장학금 도입, 대한민국 체육상 어버이상 제정 등에 큰 힘을 보탰다. 이 전 의원은 “할 수 있는 한 게으르지 않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못마땅한 부분이 더러 있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체육발전유공자에 대한 훈장 서훈 기준이다. 최근 문체부는 서훈 기준을 바꿨다. 올림픽 메달 점수를 높인 것이 포인트다. 1500점을 채워야만 최고 등급인 청룡장을 받을 수 있는데, 올림픽 금메달은 600점에서 800점으로 올리고, 은메달은 360점에서 540점, 동메달은 200점에서 320점으로 각각 높였다. 이로써 문제가 됐던 김연아도 개정 이전 기준으로 1424점에서 2050점이 되면서 청룡장 수여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 전 의원은 여전히 불만이다. 그는 “2013년 1월에 훈장 서훈 기준 개정안과 관련해 토론회를 개최했다.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는데, 3년 반이 지나서 내가 (국회의원) 그만두고 난 후 하나마나 한 개정안이 나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을 하나 따서는 청룡장을 못 받는다. 그런데 올림픽 금메달은 4년에 한 번 나오는 거다. 4년에 한번 금메달리스트 13명 정도에게 주는 건데 뭐가 그리 문제냐. 올림픽 금메달은 청룡장을 주자는 게 내 주장이다. 체육훈장 만들어서 20년은 수시 보상제, 그 뒤 20년에는 누진 점수제를 적용했다. 수시 보상제를 하지 않은 이유는 너무 남발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누진 점수제 명분은 비인기 종목도 훈장 받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훈장 받는 선수들이 줄어들었다. 훈장은 결국 명예다. 체육훈장 만든 이유는 체육인에게 주기 위한 건데 많으면 어떠냐. 그리고 사실 많지도 않다. 문제는 선수들한테 돌아가는 게 아니고 관계자, 조직위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고 했다. 그의 주장은 이어졌다. “이제는 투 트랙으로 가자. 올림픽 금메달은 바로 청룡장을 수여해 귀국하면 청와대에서 훈장 수여식을 열어 자긍심을 갖게 하자. 나머지는 누진 점수제로 진행해도 된다.”


-아직도 운동선수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하나.

“운동선수 육성을 위한 제반시스템을 더 꼼꼼히 살펴야한다. 옛날엔 부모 부담이 적었지만 요즘엔 부모가 내는 돈으로 학교 운동부가 운영된다. 많은 곳은 80% 이상이다. 지금은 부모들이 학교에 기부금 형식으로 내고 코치 월급, 합숙 등에 사용한다. 부모는 기부한 돈이라 15% 세금 감면이 되는데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각 시도 교육청에 공문 보내서 소급 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부모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입시비리, 승부조작도 조금이라도 예방되지 않을까 한다.”

이 전 의원은 “운동선수들에게 다소 부족할 수 있는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한다. 은퇴 전에 몇 개월이라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 기회를 마련해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와 사회가 도와줘야한다는 의미다. 이 전 의원은 “하나하나의 인격을 소중히 여겨서 투자해야 그들이 따라올 수 있다. 혼자 해내긴 어렵다. 그런 점들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예산이긴 하지만 돈을 써서 그들이 따라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주지 않으면 체육은 점점 어려워진다. 대학 평가 때 예체능계 비중도 점점 줄어드는 현실이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아마추어들도 승부조작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듯하다.

“악습은 아마추어부터 뿌리 깊이 박혀있다. 그래서 국회 들어가자마자 아마추어 승부조작 금지법을 바로 냈다. 아마추어 승부조작 금지법은 소위 짬짜미라 불리는 승부조작에 대한 처벌이다. 지도자와 학교에 대한 제재와 일부 선수에 대한 제재다.”


-프로리그의 승부조작 사태는 어떻게 보나.

“완벽한 제도란 없다. 프로연맹과 프로협회가 왜 생겼느냐.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교육시켜야 한다. 내가 스포츠중재위원회 만들자고 했는데, 지금 대한체육회 안에 시늉만 해놓은 상태다. 중재위원회는 외부 압력이 없어야 객관적으로 중재하고 판단할 수 있다. 솜방망이 처벌 역시 안 된다. 혹독한 징계나 제재가 필요하다. 자진신고 제도도 잘못됐다.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왜 자진신고를 받느냐. 야구는 지난번 회오리가 있었지 않았나. 선수들이 처음엔 모르고 발을 들여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음의 중심이 운동과 명예에 있느냐, 돈에 있느냐, 이 문제다. 돈을 쉽게 벌면 쉽게 생각한다.”

한국체육계는 대통합의 길에 접어들었다. 엘리트체육(협회)과 생활체육(연합회)간의 통합과 회장 선거가 끝났거나 진행 중이다. 10월에는 대한체육회 통합회장 선거도 예정돼 있다. 한국체육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갈 수 있는 대전환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체육이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체육을 통해 전 국민이 하나가 돼 간다는 의미가 통합의 목적이다. 재능 있는 선수들을 제도적으로 특별 관리해서 엘리트 체육을 관리하고, 전 국민이 건강하게 체육을 즐길 수 있도록 선진국의 제도를 잘 도입해야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뒷받침해야 한다. 투 트랙을 잘 이끌어나가야 한다. 효율성을 위해 통합한거 아니겠는가. 첫째는 구조조정이다. 어려움이 있지만 빨리 구조조정하고 조직을 재정비해서 현실에 맞게 엘리트와 생활체육을 골고루 다지는 길이 열려야 한다. 행사를 위한 생활체육 말고 실질적인 투자와 지원을 통한, 국민들의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이 우선돼야 한다.”


-향후 어떤 일을 하고 싶나.

“계획은 없다. 바람은 저개발국 스포츠지원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또 후배들을 챙겨주고 지원해주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목소리를 내서라도 나서고 싶다.”

이 전 의원은 선수 시절 잘 나갔지만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올림픽에 나간 경험이 없다. 왜일까. 1970년대 당시에는 탁구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 땐 올림픽이 없어서 아쉬웠다. 1988서울올림픽부터 탁구가 정식종목이 됐다. 그래서 그전까지는 세계선수권에만 출전했다”면서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선수권은 풀엔트리로 나오니까 가는 데마다 지뢰밭이라 어려웠다. 열아홉 때 19전19승으로 단체전 우승을 거뒀는데, 그게 사라예보 기적이라 불렸던 그 대회다. 아직도 기억은 생생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눈물과 땀과 고통 속에서 모든 선수들이 4년간을 준비했다. 자기와 싸움을 얼마나 했겠는가. 다 잘했으면 좋겠다”며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후배들을 향해 진심어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은?

▲1954년 8월15일(충남 보령)
▲서울여상~명지대 학사·석사·박사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 단체전 우승(1973년)
▲서울올림픽여자탁구대표팀 감독(1988년)
▲태릉선수촌장(2005.3~2008.8) 베이징올림픽 총감독(2008년) 인천아시안게임선수촌장(2014년)
▲용인대 스포츠레
저학과 교수(2003.3~2013.2)
▲제19대 국회의원(2
012.5~2016.5)

최현길 스포츠2부 부장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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