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18.44m] 혹사는 정의롭지 못하다

입력 2016-08-2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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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에서는 마약 판매상들이 왜 집도 없이 어머니한테 얹혀사는지를 추론한다. 슬럼가에서 마약 거래를 하다가 총 맞아 죽을 확률은 25%에 달하고, 수입은 시급 3.3달러에 불과한데 왜 이런 불합리한 삶을 사는지가 레빗의 궁금증이었다. 가설은 ‘인간의 욕망이 빚은 근거 없는 낙관’이다. ‘나는 위험하고 곤궁하게 살아도 절대로 안 죽고 살아남아 언젠간 마약갱단의 보스가 돼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현실의 피폐함을 견디는 아편이라는 것이다.


# 지금 KBO리그 판은 시카고 빈민가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사람 목숨처럼 대체 불가능한 투수의 어깨를 담보로 위태로운 도박판이 경쟁적으로 열리고 있다. 혹사의 원조 격인 노(老) 감독은 “팀이 필요하면 투수는 던지는 것”이라는 파시즘적 발상에서부터 “왜 넥센은 탓하지 않냐”는 물타기에 이어 “혹사의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유체이탈 화법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불펜투수를 팀 내 이닝 1·2위로 만든 비정상적 운영을 하는 감독이 이런 말을 하는 저의는 뻔하다. 한마디로 ‘하등 잘못되지 않았는데, 김성근이라서 저렇게 떠들어대는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바닥에 자리한다. 혹사는 선수가 당장 안 다쳤다고 괜찮은 게 아니다. 혹사는 A급 고액연봉이 아닌 투수, 신인급 투수 등 ‘상대적 약자’를 겨냥하기에 정의롭지 못하다. 거부할 수 없는 처지의 투수가, 감당할 수 없는 환경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공을 던지는 것을 지켜보기가 차마 안쓰럽고, 불편한 것이다. 이는 비단 한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화 송창식-권혁(오른쪽). 스포츠동아DB



# 더욱 정의롭지 못한 것은 혹사로 쌓은 부(富)가 공평하게 분배되느냐의 문제다. 그 처절한 불꽃 투혼의 결과, 투수의 미래가치는 오히려 나빠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투수는 ‘내 어깨, 내 팔꿈치만큼은 끝까지 괜찮을 것’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이는 ‘총알이 나는 피해갈 것’이라는 마약 조직원의 헛된 신앙과 다를 바 없다. 그 사이 투수들의 어깨와 팔꿈치의 담보를 잡고 빚어낸 가치는 엄한 사람에게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슬럼가의 최고 부자는 가장 안전한 곳에 사는 보스인 것처럼 말이다.

결국 ‘혹사에서 안전하려면 고액연봉자가 어떡하든 돼야 한다’는 기이한 역설이 발생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실종됐고, ‘억울하면 야구 잘해서 돈 많이 받으라’는 천민자본주의가 득세했다. 사회적 약자가 가장 큰 부담을 짊어지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와 지금 야구판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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