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들의 수다] 김의성 “내가 연기한 악역, 모두 내 안의 인물들…그 길을 가지않으려 애쓰는 게 나의 삶 ”

입력 2016-09-23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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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성은 어느새 악역전문배우가 됐다. 1100만 관객을 분노하게 했던 ‘부산행’의 악질적인 모습 외에도 ‘암살’ ‘소수의견’ ‘오피스’ ‘내부자들’에서도 그는 악역이었다. “솔직히 악역은 스트레스가 적다”며 웃는 김의성은 실제론 우리 사회의 아픈 곳에 항상 귀를 기울이는 배우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영화보다 ‘분노지수’ 높이는 악역 배우 ‘김 의 성’

날이면 날마다 오는 ‘수다’가 아니다. 까다롭고 까칠하기로 유명한, 냉철한 ‘눈’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스포츠동아의 두 여기자가 스타를 찾아 나선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때로 ‘사심’에 무너지고 말지만, 덕분에(?) 스타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2008년부터 2년간 스포츠동아 지면을 장식했던 ‘여기자들의 수다’(여수다)가 6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현빈, 강동원, 장근석 등 내로라하는 톱스타는 물론 박미선, 남희석, 신봉선 등 감각적인 재치를 자랑하는 개그맨들에게도 뒤지지 않는 두 여기자의 입담. 그 시즌2 역시 기대해도 좋다.


사회 문제 주저없이 나서는 이유?
서로 손 잡아야 진짜 행복하니까
가장 듣고 싶은 말 ‘아저씨 재밌어요’

“악역이 더 좋다”고 말하는 배우가 있다. 몇 년간 화제의 영화에서 악역을 도맡으면서 관객의 ‘분노지수’를 한껏 높인 김의성(51)이다. 올해 여름에는 더 했다. 1100만 관객을 모은 ‘부산행’에서 보여준 악랄한 모습은 지금도 ‘욕먹게’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김의성은 완전히 다른 모습. 유쾌하고 여유롭다. 자신에게 쏟아는 비난마저 즐긴다. 심지어 마음껏 욕을 하라면서 SNS의 문까지 활짝 열어뒀다. 욕하는 누리꾼의 글에는 일일이 댓글도 단다.

그렇다고 김의성을 ‘웃기는 아재’ 쯤으로 여겨선 곤란하다. 여러 사회문제에 과감하게 목소리도 낸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한 겨울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까지 벌였다.

종잡을 수 없는 김의성이 궁금하다. ‘여기자들의 수다’에 초대한 이유다.


-단연 화제의 SNS 스타다. 팬들의 열렬한 지지가 놀라울 정도다.

“SNS 활동을 본격 시작한 이유는 ‘부산행’ 때문이다. 개봉 전에 기술시사회로 영화를 보는데, 너무 놀랐다. 내 역할이 내가 봐도 심하더라. 가만히 있다간 큰일 나겠구나 싶어 일종의 ‘물타기’로, 위기 모면용으로 SNS에 마당을 마련했다. 하하!”

김의성은 ‘부산행’에서 자기 혼자 살자고 약자를 짓밟는 ‘개저씨’다. 양심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권위주의 상징. 관객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맞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거센 비난에 김의성은 ‘발끈’하지 않았다. 대신 SNS를 통해 ‘짜증을 다 받아주겠다’고 선언했고, 그렇게 30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왜 그렇게 미움을 받을까.

“‘부산행’에서 나는 살기 위해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일상적으로 출발하지만 결말은 끔찍하다. 그 공포가 관객에 충격을 준 듯하다. 작년에 ‘암살’을 같이 한 최동훈 감독은 ‘부산행’에 전형적인 한국인이 두 명 나온다고 하더라. 혼자 살겠다는 김의성, 남을 위해 희생하는 할머니, 두 명!”


-언제부턴가 악역의 대명사가 됐다.

(‘암살’, ‘소수의견’, ‘오피스’, ‘내부자들’. 이는 김의성이 최근 1년간 악역을 맡은 필모그래피다.)

“모두 내 안에 있는 인물들이다. 출발은 달라도 누구든, 얼마든지, 그런 모습(악역)으로 갈 수 있지 않나. 그게 사람이다. 악한 길을 가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결국 우리의 삶이지만.”

배우 김의성.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선해 보이다가도 무섭게 돌변하는 이중성도 있다. 어떤 게 진짜인가?

“누구나 다면적이잖아. 물론 나이 들면서 인상은 중요하다. 성격은 많이 유해졌는데 얼굴은 점점 아저씨로 변해 큰일이다.”


-아직 더 보여줄 악인의 모습이 남았나.

“글쎄. 솔직히 악역은 스트레스가 적다.(웃음) 선한 인물을 연기하기가 더 어렵다.”


-오달수의 뒤를 이어 요즘은 ‘김의성이 나오는 영화와 안 나오는 영화’로 나뉘는데.

“영화를 결정할 때 가장 먼저 따지는 부분은 돈이다. 단지 물질의 의미가 아니다. 나를 얼마나 존중하느냐, 얼마나 필요로 하느냐를 알려주는 꽤 예민한 척도 아닌가. 작은 영화를 하고 싶다가도. 한편으로 대작에 꾸준히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하하!”

김의성은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MBC 수목드라마 ‘W’의 촬영을 마쳤다. 밤샘촬영으로 육체적, 정신적 피로에 시달렸지만 휴식 대신 찾은 곳은 서울 광화문 광장이다. 연휴 첫 날인 14일 세월호 단식농성장을 찾은 그는 ‘우리는 잊지 않습니다’는 글도 남겼다.

앞서 2014년 겨울에는 세 달 동안 혹한을 견디며 1인 시위에 나섰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문제를 알리려는 자발적인 선택. 올해 초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자동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궁금하다.

“그저 무모하고 지혜가 부족한 거지. 뭐든 잘 참지 못한다. 실은 요즘에는 일련의 활동에 회의적인 마음도 생긴다. 지속적으로 나은 방향으로 사회에 기여하기보다 얄팍하게, 내 마음 편하자고 계속 배설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사회문제에 관심을 거둘 수 없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렇게 태어난 거다. 오지랖이 넓다고 할까. 사실 답도 모르면서. 이 시대에는 ‘각자도생’ 말고 답이 없다. 주어진 가운데 최대한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개인과 개인은 또 손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서울대 경영학과(84학번)를 다니던 김의성은 1987년 연극에 빠졌다. 학업은 뒷전으로 밀렸다. 1995년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스크린 활동을 본격 시작했고,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통해 비로소 주목받았다. 하지만 2000년 무렵 돌연 활동을 접고 베트남으로 떠났다.

김의성은 “연기는 하면 안 되는 일로 느껴졌다”고 돌이켰다. “도망갔다”는 표현도 썼다. 베트남에서 드라마 외주제작에 뛰어들었고, 제작자로서 성공도 거뒀다. 2011년 영화 ‘북촌방향’에 출연하기 전까지 평범한 삶을 꿈꿨다.

-다시 돌아올 생각은 안했나.

“전혀. 하지만 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35살부터 45살까지 딱 10년이다. 남자배우에게는 황금 같은 시기를 날려 보냈다. 후회는 없다. 연기에 대한 애정을 훨씬 강하게 해줬으니까.”


-연기 복귀작 ‘북촌방향’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 11월에 내놓을 차기작도 홍 감독의 작품인데.

“홍상수 감독은…. 언제나 함께 하고픈 연출자이다. 각별한 인연을 떠나, 중요한 예술적 성취를 매번 이뤄내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희귀한 결과물을 꾸준히 내놓는다. 동시대에 가장 익숙한 언어로 그 예술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만약 10년의 공백이 없었다면?

“촬영장에서 ‘왜 빨리빨리 찍지 않느냐’고 불평하고, 후배가 인사를 안 하면 호통치고, 모든 면에서 불행해하는 ‘선생님’이 되어 있을지 모르지. 다행히 10년의 공백은 나를 즐겁고 유쾌한 아저씨로 만들어줬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다른 사람들도 날 보면서 행복해하는 것 같은데.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하하!”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저 양반 재밌어, 저 아저씨 펑키한데? 나를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줬음 좋겠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늘 극적이다. 평소의 모습은 다를 텐데.

“집에서 밤이 되길 기다린다. 밤이 되면 집 밖으로 나와 술을 마신다.(웃음) 여러 날 시간이 되면 무조건 여행을 간다.”

결혼한 경험은 있지만 자녀는 없는 김의성의 ‘여행친구’는 지금 만나고 있는 연인이다. 그는 “여차하면 여행을 떠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10월6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도 맡았는데.

“내가 누굴 심사할 주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신인배우들이 가진 그릇이 얼마나 큰지 보려고 한다. 그런 사람을 찾아서 격려해주겠다. 영화제 내내 부산에 머물 생각이다. 배낭 메고, 시네필(영화광)처럼 무조건 영화만 보러 다닐 거다. 하하!”



배우 김의성.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이정연 기자가 본 김의성

따뜻하거나 매섭거나…
매력 만점 두 얼굴 ‘아저씨’

‘뜨겁거나 차갑거나….’

턱 아래 무성하게 자라난 흰 수염이 어찌 보면 한 없이 푸근하고 너그러운 동네 아저씨 같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금물이다. 검은색 뿔테 안경 넘어 매섭게 드러내는 눈빛으로 상대의 속마음을 구석구석 꿰뚫어 보는 듯 저절로 ‘쫄게’ 만든다. 마치 ‘야누스의 두 얼굴’과도 비슷하다. 성향은 ‘아저씨’와 ‘아재’의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고, 돌려 말하지 않아 때로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그래도 ‘직진’하는 모습이 멋지다.


● 이해리 기자가 본 김의성

노련하게 할 말 다하고
세련되게 생각 전하는 ‘아재’

김의성은 가장 세련된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배우 같았다. 지극히 현실적인 악역을 고집스럽게 맡은 이유도, 사실 세상을 향해 던지고 싶은 말을 전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보는 관객이 ‘저렇게 살면 안 된다’고 각성하게끔 만드는, 고도의 전술 구사. 마냥 진지하면 관심을 얻기 어렵다. 그렇다고 농담만 하면 무시당하기 일쑤. 연기에서도, 주관을 드러내는 일에서도, 가장 적절한 수위에서 가장 노련한 방식으로 대중을 유혹하고 있다. 그에게 기꺼이 ‘현혹’되고 싶다.


● 배우 김의성


김의성은 1965년 12월17일생이다. 서울대 경영학 전공하고 1987년 극단에 들어가 연기 시작했다. 1990년대 영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성공시대’, 드라마 ‘맏이’ ‘머나먼 쏭바강’ 등에서 주·조연을 맡으며 맹활약. 2000년 배우 생활을 접고 베트남에서 영화 사업을 하다가 2011년 홍상수 감독의 영화 ‘북촌방향’으로 컴백. 홍상수 감독과는 오랜 관계로서 그의 작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자유의 언덕’ 등에 출연. 2016년 영화 ‘부산행’, MBC드라마 ‘W’를 통해 존재감이 더욱 커졌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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