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시대’의 토대 만든 박정원 구단주의 교감경영

입력 2016-09-2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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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베어스 박정원 구단주. 잠실|김종원기자 won@donga.com

결국 야구단은 구단주의 정원(garden)일지 모른다. 구단주의 뜻이 있어야 자본을 투입하고, 토지를 마련해 터를 일굴 수 있다. 그곳에 어떤 나무와 꽃을 심어야 아름다울 수 있을지 심미안을 갖춘 정원사를 고르는 것도 구단주의 안목이다. 지금 KBO리그란 농장에서 두산은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완성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부터 반응하기에 나무(감독)와 꽃(선수)의 울창함 혹은 정원사(프런트)의 재주를 칭찬하기 바쁘다. 그러나 커튼 뒤의 구단주가 없었다면 이 모든 것들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어쩌면 구단주는 ‘무위(無爲)의 치(治)’가 미덕인 자리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리더십은 손을 놓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나무와 꽃이 맘껏 자라고, 정원사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도량을 일컫는다. 그런 점에서 두산그룹 회장인 박정원 두산 베어스 구단주가 정점인 체제에서 ‘두산 시대’가 도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2일 두산은 kt를 깨고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시즌 90승(46패1무)에도 도달했다. 박 구단주의 어떤 에센스(essence)가 해가 지지 않는 두산 야구의 시대를 열어젖힌 것일까. 두산 베어스 김승영 사장의 도움을 얻어 그 단면을 들여다봤다.

두산베어스 박정원 구단주. 잠실|김종원기자 won@donga.com



● 사람을 믿는다. 끝까지

두산은 올해 정규리그 정상에 서면 1995시즌 이후 21년 만이다. 강산이 두 번 이상 바뀐 시간이다. 그런데 신선한 반전은 두산 프런트에 1995년 우승을 경험한 사람들이 꽤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2~3년 못하면 사장, 단장을 비롯해 프런트를 거의 모조리 갈아버리는 야구판의 풍토와 다르다. 두산 프런트의 최고 강점으로 꼽히는 일관성과 전문성은 바로 이 경험의 힘이 작용한 결과다. 두산 프런트라고 빗나간 판단을 했던 순간이, 야구를 못해서 팬들의 질타를 받았던 고통스런 시절이 없었을 리 없다. 이때 두산이 달랐던 것은 구단주가 결과만 탓한 것이 아니라 그 의도의 순수성을 믿고, 만회할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결국 이긴 것은 이런 관용의 힘 덕분이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두산은 나락이었다. 김태룡 단장은 책임을 통감하고 사직서를 품은 채로 박 구단주를 만났다. 사의를 전했을 때, 박 구단주가 했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디 다른 데 가려는 거 아니에요? 김 단장은 나랑 끝까지 갈 사람이야.” 그때의 믿음이 없었더라면 지난해의 우승과 올해의 최강팀은 없었을지 모른다. 김승영 사장도 “못할수록 더 챙겨주신다”고 말한다.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 자발적으로 열성을 다해 움직이게 만드는 매력이다.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끝까지 챙기는 박 구단주의 성품은 선수를 대하는 시선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김 사장의 말이다. “정재훈이 다쳤을 때, 병원 검진자료까지 찍어서 보내라고 하시더라. 경기 직전, 라인업에 주전선수가 빠지면 사유가 무엇인지까지 궁금해 하신다.” 스프링캠프를 격려 방문할 때는 야구단 중역 가족의 안부까지 챙긴다.

두산베어스 박정원 구단주(오른쪽). 잠실|김종원기자 won@donga.com



● 따뜻한 배려 담긴 박정원의 교감경영

두산 일가의 야구사랑은 박 구단주의 부친인 박용곤 명예회장 때부터 내려온 가풍이다. 명예회장이 구단주였던 1982년 두산이 우승을 해냈으니 부자(父子)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룬 셈이다. 미국에서 유학한 박 명예회장은 야구에 관한 조예가 깊지만 현장간섭은 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의 운영 시스템을 통찰한 결과다. 그런 철학은 박 구단주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김 사장은 “내가 알고 있지 않으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많이 아신다. 구단주로서 얼마나 얘기 하고 싶은 부분이 많을까 싶다. 그러나 자제한다. 구단주의 한마디에 구단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아시는 거다.” 박 구단주는 천성적으로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지만 꽂히는 것이 있으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향이다. 디테일에 굉장히 강하다. 완벽주의다. 여기까지였다면 프런트와 현장이 피곤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상대를 배려하고 교감하는 박 구단주의 리더십 스타일이 작동한다. 그 덕분에 현장의 역동적이고 개성적인 야구, 프런트의 일관적인 육성플랜이 기능할 수 있었다. 김 단장의 전무 승진 때, 임원들이 보통 타는 대형세단이 아닌 RV카를 선물한 것이나 보우덴의 노히트노런 기념 깜짝 꽃다발 선물 등은 박 구단주가 직접 고른 배려다.

김 사장은 “사실 야구단이 그룹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마이너하다. 그러나 구단주께서 야구단의 위상을 높게 봐주셔서 굉장히 혜택을 보고 있다. 두산그룹의 브랜드 로열티를 올리는데 야구단이 큰 역할을 한 덕분이다. 그룹 회의에 가서도 ‘요즘 야구 보는 낙에 산다’는 사장단의 덕담을 듣는다”고 웃었다.

박 구단주는 그룹 일로 바쁜 와중에도 두산의 경기는 꼭 챙긴다. 올 시즌은 딱 한번 김 사장에게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어느 날 경기를 졌는데 구단주께서 문자가 왔더라. ‘이제 100승은 힘들겠네요’라고. 무슨 뜻인지 처음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살펴보니까 그날 지면서 나머지 경기를 다 이겨도 99승이더라(웃음).”


박정원 구단주

▲1962년 3월 9일 출생
▲대일고∼고려대 경영학 학사·보스턴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두산 대표이사, 두산건설 회장, 두산그룹 회장
▲두산 베어스 구단주 (2009~현재)


잠실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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