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영화 ‘밀정’ 허성태 “따귀 장면 넣자고 3박4일 설득했죠”

입력 2016-09-26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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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허성태.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영화 ‘밀정’이 발굴한 배우

700만 관객이 선택한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제작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은 한명의 배우를 ‘발굴’했다. 하시모토의 정보원 하일수 역의 허성태가 그 주인공이다. 주연 못지않은 실력과 개성으로 스크린을 압도하는 이 배우는 관객에 짜릿함을 안긴다. 2∼3년 뒤 한국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실력자’로 성장할 것 같은 예감이다. ‘밀정’의 관객수를 늘려가는 또 다른 주역을 만났다.


● 정보원 하일수 역 허성태

고액 연봉 대기업에 사표내고 ‘무모한’ 연기자 도전
우상 송강호 선배한테 맞은 따귀 8대…하나도 안아파

딱히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뿜어내는 기운만으로 시선을 끄는 배우가 있다. ‘밀정’이 사실상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허성태(38)가 그렇다. 못할 게 없을 것 같은 신뢰감까지 준다.

‘밀정’을 본 관객이 허성태를 떠올리려면, 송강호로부터 따귀 맞는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송강호와 대척점에 있는 그는 자동차 안에서 ‘건방’을 떨다 기어이 ‘불꽃 따귀’를 맞는다. 실제 촬영 때는 모두 8대를 맞았다고 했다. “정말, 진짜, 아프지 않았다”는 허성태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맞는 장면은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내 아이디어였다. 송강호 선배를 3박4일 동안 설득해 허락을 받아냈다. 대사만 하면 재미없을 것 같았고, 내 뺨을 때린다면 이정출(송강호의 극중 역할)의 심리가 더 드러날 것 같아 맞겠다고 고집했다.”

그날, 허성태는 송강호의 전화번호를 알게 됐다. “선배님이 ‘성태야, 너 전화번호 뭐냐’고 묻더라. 냉큼 번호를 찍어드렸다. 하하!”

배우 허성태.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허성태의 ‘과거’는 그를 확실히 이해하는 방법을 준다. 데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부산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다. LG전자에 입사해 러시아 지역 영업을 담당할 때는 나름대로 인정받았다. “모스크바 호텔에 있는 TV는 전부 내가 설치했다”는 ‘허풍’도 곁들였다. 이후 또 다른 대기업 해운회사로 옮겼다. 고액 연봉이 보장된 자리였다.

하지만 “술김에 건 전화 한 통”으로 그는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회식하고 거하게 취해 집에 와 TV를 켜니 ‘당신의 꿈을 캐스팅하세요’라는 광고 자막이 흘러나오더라. SBS ‘기적의 오디션’ 광고였다. 술김에 ARS로 참가 신청을 했다.”

35살이었다. 부산 예선에 모인 참가자는 800여명. 그 가운데 15명 안에 든 그는 방송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고, 첫 회에서 심사위원 전원의 선택을 받았다. 허성태는 “눈이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새벽 4시에 첫 녹화를 끝나고 곧장 출근한 그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30대 중반의 남자의 행동으로는 다소 ‘무모’한 선택. 그렇지만 아내는 반대하지 않았다.

“연애 10년, 결혼한 지 6년째다. 아내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들어갔는지, 또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지켜봤다. 날 믿어준다. 아내는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자’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보험을 전부 깨고 상경한 허성태는 2012년 영화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60여편의 단편영화, 또 그만큼의 장편영화에 출연했지만 대부분 엑스트라 수준의 단역이었다. 변변한 소속사도 없었다.

때문에 ‘밀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송강호와 상대한다는 사실은 “꿈”이라고 했다. “선배가 주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저절로 그 상황에 몰입하게 해준다. 사실 정말 팬이다. 영화 ‘변호인’을 80번 넘게 봤으니까. 그 말을 들은 선배가 나더러 ‘징그럽다’고 하더라. 하하!”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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