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①] 함부로 길들여지지 않는 쑥과 고양이의 섬

입력 2016-10-0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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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도항에서 배로 불과 5분 거리인 애도마을 사람들은 수백년 전 돌담을 쌓았다. 견고한 돌담은 엄격한 마을 공동체 속에서 외부 사람들에게는 고즈넉한 산책길을 열어 주고 있다. 곳곳에서 만나는 들고양이들은 그런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이 마을의 또 다른 주인이다.(왼쪽부터 시계방향) 고흥(전남)|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14. 봉래면 사양리 애도마을

세밀한 생활사와 풍속사 혹은 세상의 어긋난 도리에 대한 풍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윤색과 와전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이야기를 낳은 공간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의 입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다. 콘텐츠로서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본래의 설화를 들여다보는 까닭이다. 넘쳐나는 대신 그만큼 사라져가는 진정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로서 설화의 가치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전남 고흥군은 땅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반도의 토양 위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가 풍성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류몽인이 이 곳에서 ‘어우야담’을 쓸 수 있었던 한 배경이기도 하다. 웹툰과 애니메이션,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또 다른 원형일 수도 있을 고흥의 설화를, 스포츠동아가 격주 연재한다.


개 키우면 화를, 고양이는 복을 불러
지금도 마을 곳곳에 들고양이 천지
감춰진 절경들 자연의 엄숙함 강조

질 좋은 쑥(艾)이 지천에 깔려 있다는 섬(島), 애도. 고흥군 봉래면 사양리의 면적 0.326km², 해안선 총 길이 3.2km 남짓한 작은 섬은 남북으로 길게,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섬 앞으로 펼쳐진 바닷가가 평온한 호수처럼 보인다고 해서 ‘봉호’(蓬湖)라고도 불린다. 열심히 밭을 갈던 소가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자듯 애도마을은 섬 전체가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다. 하루 다섯 번, 육지와 섬을 잇고 있지만 외부 사람의 발걸음은 찾기 어렵다.

애도마을은 나로도항 선착장에서 배(사양호)를 타고 5분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도, 과거엔 ‘아무나’ 그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강한 공동체 의식과 마을 규약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그들만이 사는 섬’이었다.


● 살아있는 설화가 발자취마다…

‘쑥섬’의 역사는 조선 인조(1595∼1649)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밀양 박씨 일가가 섬으로 처음 들어온 후 장흥 고씨와 연안 명씨와 함께 터를 이루고 살았다. 고영래(79)씨는 “(마을)곳곳에 역사가 있고, 그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영험한 곳이라 그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고 했다.

시기를 알 수 없는 과거, 박씨가 처음 개를 키웠는데 사람을 따르지도 않고 날마다 미쳐 날뛰어 병을 얻어 결국 죽었다. 이후 사람들은 개 대신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했고, 어느 날 주인이 죽자 밤새 울다 함께 떠났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개를 키우면 마을에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고양이를 키우면 좋은 일만 생긴다는 이야기다.

설화의 영향인지 예나 지금이나 쑥섬 주민들 곁은 고양이가 지키고 있다. 30명가량의 주민들보다 더 많은 고양이가 살고 있다. 물론 모두 ‘들고양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집집마다 고양이 밥그릇을 두고 챙긴다.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은 더 크다. 마을에는 무덤이 1기도 없는 것이다. 고씨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다면서 뒷산을 가리켰다. 지금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제주)을 찾기 어려워 그 풍습이 중단됐지만, 10년 전까지 1년에 한 번씩 당산제를 지냈다. 제주로 선정된 이는 1년 동안 탈이 없어야 하고, 3년 동안 초상집에 가서는 안 되며 몸을 정갈하게 해야 한다. 당산제가 열리기 즈음해서는 외부 사람이 섬으로 들어와서도 안 되고, 임신한 여자들은 섬 밖으로 나가 출산해야 했다.

나로도에서 “노 젓는 배로 가마를 타고 시집왔다”는 김은심(76)씨는 “어른들이 무서워 마음대로 동네를 돌아다니지도 못했다”며 “애도 친정으로 가서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절경이 뛰어난 동네지만” 풍습을 따르기 위해 “섬에 갇혀 살 듯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금도 당집 근처에는 가지 않지만 “속으로는 외지로 일하러 나간 자식들을 위해 빌고” 또 빈다.

‘신선대’ ‘대감바위’ ‘중 빠진 굴’…

그렇게 지켜온 섬, 당집이 있는 산 중턱에는 원시림이 울창하다. 한낮에도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어두컴컴하고, 각종 나무들은 기이하게 뿌리를 내렸다. 그 뒤로 깎아지른 듯한 돌 절벽이 병풍처럼 섬을 에워싸고 있다.

그 옆에 자리한 ‘신선대’와 ‘대감바위’가 눈에 띈다. “처음 와본 사람들이 모두 놀랄 정도”로 절경이 뛰어난 이 곳에선 신선들이 바다와 바람을 느끼며 시를 읊거나 거문고를 타고 놀았다는 이야기로 내려온다. 겨울에도 강한 바람이 불지 않아 명당으로 꼽힌다.

또 6·25전쟁 당시 피신해 온 사람들이 살았다는 ‘중 빠진 굴’도 빼놓을 수 없다. 고씨는 “옛날 한 탁발승이 마을에 왔는데, 자신의 불심을 맹신하며 폭 10m가 넘는 곳을 뛰어넘겠다고 장담하다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고 해 붙여진 동굴이다”고 설명했다. 아마도 함부로 섬에 들어온 이들의 방자함을 꾸짖으면서도 고유의 터전과 자연을 대하는 엄숙함을 강조한 말이겠다 싶다. 고씨는 “봉래면에서 가장 부촌이었던 쑥섬이 오랜 시간 풍요롭고 평탄하게 살아온 것은 모두 마을을 사랑하고 지킨 옛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과거처럼 쑥섬이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 TIP 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고흥 IC→고흥 방면→한천교차로에서 도양·고흥 방면→동강교차로에서 동강·보성·대서 방면 우측방향 우주항공로→연봉교차로에서 점암·과역 방면 좌회전 고흥로→점암삼거리에서 자연휴양림·도화·포투 방면 우측방향 해창로→송산삼거리에서 영남 방면 좌회전→팔영도 따라 2.64km→해창만삼거리에서 나로도·도화 방면 우회전→봉래 교차로에서 나로도항 방면 우회전→나도로항 선착장 배로 이동


● TIP 설화란?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고흥(전남) |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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