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기획] KBO를 완벽하게 지배한 5대 왕조

입력 2016-11-0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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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해태 김응룡 감독-전 삼성 류중일 감독-전 현대 김재박 감독-전 SK 김성근 감독-두산 김태형 감독(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한국야구위원회·SK 와이번스

1982년부터 2016년까지 34번 한국시리즈가 개최됐다.(1985년엔 삼성이 전·후반기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개최되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강팀이 탄생했고, 리그를 지배했다. 그러나 2년 이상 연속으로 한국시리즈(KS)를 제패한 팀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2016시즌 전까지 2년 연속 KS 우승팀은 해태(KIA의 전신)와 삼성, 현대, SK 단 4개 팀 뿐이었다. 올해 두산이 NC를 꺾고 KS 챔피언이 되면서 5번째로 2회 연속 우승팀에 이름을 올렸다. 야구팬들은 2년 이상 KS 정상을 지킨 팀을 ‘왕조’라 부른다. 장시간 리그를 완벽히 지배했다는 표현이다. KBO리그 ‘두산 왕조’의 탄생을 계기로 역대 KBO왕조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되돌아 봤다.

사진제공|KBO



● 해태 왕조 : 카리스마 김응룡과 ‘검빨 유니폼’의 공포

해태는 1983년 첫 우승을 달성했다. 1986년 KS 정상에 다시 오른 후 89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해태는 1996~97년에도 2시즌 연속 우승을 맛봤다. 91년과 93년에는 징검다리 우승을 차지했다. 장기간 집권한 진정한 왕조였다.

해태는 1차 지명 인원 제한이 없던 1980년대 초반 광주일고, 광주상고(현 동성고), 군산상고 등에서 배출된 최고의 유망주들이 입단했고, 김응룡 감독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막강한 전력을 구축했다. 선동열,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 등 전설적인 투수들이 있었고, 이종범, 김성한, 김봉연, 한대화, 이순철 등 강타자가 즐비했다. 상대팀이 경기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죽는 다는 검은색 바지, 붉은 색 상의가 상징하는 강한 근성도 큰 힘이었다.

해태는 재정적으로 열악한 구단이었지만 계속해서 초특급 고교, 대학 선수들이 입단하면서 장기간 리그를 지배했다. 김응룡 감독은 연이어 파격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팀에 역동성을 심었다. 작전도 단순했고, 같은 시기 다른 팀에 비하면 훈련양도 적었지만 엄격한 규율 속에 하나로 뭉친 팀워크가 강했다. 해태는 9번의 우승과 함께 50번의 골든글러브 수상, 7번의 시즌 MVP도 배출했다.

그러나 1987년부터 1차 지명 숫자가 3명으로 크게 줄어들었고, 1990년대에는 실질적으로 1명으로 제한되기 시작하며 균열이 시작됐다. 2000년 프리에이전트(FA)가 도입된 후 급속한 붕괴를 겪었다.

스포츠동아DB



● 삼성 왕조 : 막강불펜으로 구축한 역대 유일 통합 4연패

삼성의 전성기는 2000년대 초반과 2010년대로 나뉜다. 삼성은 2000년 FA제도가 도입된 후 리그 최고의 스타들을 싹쓸이했다. 재정이 나빴던 해태와 쌍방울에 막대한 현금을 주며 선수를 트레이드하기도 했다. 여기에 명장 김응룡 감독을 영입해 2002년 첫 번째 KS 우승의 한을 풀었다. FA투자는 계속됐고, 당시만 해도 다른 팀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를 영입하기도 했다. 2005년 사령탑에 오른 선동열 감독은 강력한 불펜을 구축해 7회 이후 좀처럼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지키는 야구’를 내세워 2년 연속 KS 정상에 올랐다.

이후 삼성은 외부 FA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1990년 이미 완공한 전용 훈련장과 국내 구단 중 유일하게 오키나와에 직접 시설 투자를 한 스프링캠프를 갖춘 인프라로 육성에 공을 들였다.

2011년 삼성 사령탑에 오른 류중일 감독은 선동열 감독의 지키는 야구를 계승하고 완벽한 수비시스템, 그리고 타선의 강화를 통해 진정한 왕조를 세웠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삼성은 666경기에서 400승으로 승률 0.611, 5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 4년 연속 KS 우승을 차지했다. 4년 연속 정규시즌과 KS 통합우승은 전성기 해태도 다가서지 못한 영역이다.

사진제공|현대 유니콘스



● 현대 왕조 : 스타군단 완벽 시스템으로 최강팀까지

해태, 삼성과 함께 역대 최고의 팀으로 꼽히는 현대는 막대한 자금력과 프런트와 현장의 지혜로운 협업 속에 탄생한 시스템이 돋보인 구단이었다.

현대그룹은 1994년 아마추어 현대 피닉스를 창단해 아마추어 유망주를 싹쓸이 했다. 1996년 태평양을 인수해 KBO리그에 참여하면서 현대 피닉스에서 막대한 계약금을 받은 선수들이 각각 다른 팀의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했다. 그러나 계약금 반환 문제로 박재홍 등 대형 선수들은 트레이드 등을 통해 현대로 입단했다. 롯데는 피닉스에 입단했던 국가대표 투수 출신 문동환을 지키기 위해 전준호를 현대로 대신 보내는 등 규약을 비켜가는 교묘한 편법을 썼는데, 이 덕분에 현대는 단숨에 막강한 전력을 구축했다. 명 유격수 계보를 잇는 박진만과 김수경, 조용준 등 새로운 투수들도 탄생했다. 현대는 1998년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쌍방울에 거액을 주고 최고의 포수 박경완도 영입하며 화룡정점을 찍었다.

김재박 감독은 김시진 투수 코치, 김용달 타격 코치 등에게 상당 부분 전권을 주며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현대는 1996년 KS 준우승으로 강팀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고, 1998년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한 뒤 2000년 두 번째 우승 고지를 밟았다. 2003년과 2004년에는 2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정민태, 정명원이 선발과 마무리에서 활약한 마운드는 리그 최정상이었고, 탄탄한 수비에 기동력, 그리고 심정수와 외국인 타자가 활약하며 장타력까지 갖춘 완벽한 팀으로 기억된다.

스포츠동아DB



● SK 왕조 : 육성과 투자의 조화로 비상한 비룡

해체된 쌍방울을 기반으로 창단한 SK는 2003년 조범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역대 최고의 포수 박경완을 FA로 영입해 4위로 시즌을 마쳤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최정, 정근우, 송은범, 박재상 등 유망주들의 집중적인 육성이 이뤄졌고, 김재현의 FA영입 등 꾸준히 전력 상승에 공을 들였다.

2007년 취임한 김성근 감독은 전력분석 시스템을 통한 주전과 비주전이 구분되지 않는 선수기용과 파격적인 투수 기용을 통해 이미 상당부분 완성된 전력을 기반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정근우, 최정 등이 만개했고 김재현, 박재홍 등 베테랑들의 활약이 더해졌다. 김광현이라는 리그 최정상급 좌완 투수도 탄생했다. 박경완과 만난 투수들의 위력도 대단했다. SK는 2008년 KS 2연패에 성공하며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2009년 준우승했지만 2010년 다시 정상에 올랐다.

스포츠동아DB



● 두산 왕조 : ‘화수분 야구’의 결실이 피어나다

두산이 왕조의 서막을 열 수 있었던 데는 ‘화수분 야구’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외부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는데 인색했다. 지난해 장원준(4년 총액 84억원)의 FA 영입 사례를 제외하면 두산은 거금을 들여 선수를 사오는 대신 2군에서 유망주들을 발굴하는데 공을 들였다. 투자 방향 역시 외부 시장이 아닌 이천 베어스파크(2군 훈련지)로 향했다.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먼저 2군 육성시스템(1983년)을 가동한 팀도 두산이었다.

그 결실은 2010년대 들어 꽃을 피웠다. 김현수(볼티모어)를 시작으로 양의지, 민병헌, 유희관 등 현재 팀을 이끄는 주축선수들 모두가 두산의 품 안에서 탄생했다. 2016시즌 통합우승과 더불어 KS 2연패라는 대업도 이러한 ‘화수분 야구’가 뒷받침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산이 더욱 무서운 이유는 이러한 주축선수들이 모두 젊다는데 있다. 앞서 말한 선수들은 물론 김재환과 허경민, 박건우, 이용찬 등 대부분이 20대 중후반 나이에 걸쳐있다. 게다가 이들 모두가 가을야구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도 희망적인 요소다. 최근 4년간 3번이나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두산 주축선수들은 앞으로도 거칠 것이 없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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