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터뷰] 시작된 야구전쟁, 김시진이 말하는 WBC 정보전

입력 2016-11-1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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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 WBC 전력분석팀장. 스포츠동아DB

전쟁에 전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인 전투 앞에는 치열한 정보전이 있었다. 한국 역사 최고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은 전투지휘와 함께 첩보원과 척후병을 활용한 정보전 능력이 뛰어난 위대한 전략가였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국가들이 명예를 걸고 그라운드에서 맞붙는 전쟁과도 같다. 내년 3월 시작될 전투, 경기를 앞두고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3월6일 개막~3월23일 결승). 정보전, 탐색전이 소리 없이 치열하다.

전력분석은 현대전의 정보전처럼 현대야구에서 더욱 더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전력분석은 감독에게는 레이더, 선수들에게는 눈과 같다.

전력분석팀에게 유니폼과 등번호는 없다. 대표팀이 빛나는 성적을 올려도 관중석에서 박수를 치는 것이 전부다. 스포트라이트도 없고, 선수단 명단에 이름도 없다. 그러나 과거 전장에서 척후병들이 군복이 아닌 변복을 하고 가장 깊숙한 적진에서 정탐을 했듯, 전력분석팀은 대회 개막을 4개월 앞둔 시점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시진 WBC대표팀 전력분석팀장은 넥센과 롯데 두 팀에서 감독을 했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투수코치로 금메달에 큰 공을 세웠다. KBO리그 최초의 100승 투수이며 대학시절 수 없이 많은 국제대회 마운드에 올랐다. 김 팀장이 올해 초 프리미어12대회부터 대표팀 코치도 아닌 전력분석팀장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난 야구인이다. 그림자처럼 뒤에서 선수들의 눈이 되겠다. 야구인들은 팬들에게 보답해야 하고 사죄해야 한다. WBC는 소중한 기회다.”

공식 인터뷰를 청한 날 김 팀장은 아내의 생일을 기념한 가족모임 저녁식사가 예약된 날이었지만 약속시간 직전까지도 해외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 대표팀이 속한 A조는 ‘죽음의 조’라고 불린다. 2013년 4강에 오른 네덜란드는 최근 일본과 평가전에서 대등한 경기를 했다.

“일본에서 평가전을 직접 관람했다. 문제는 아직 네덜란드가 엔트리를 확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타자는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가 주릭슨 프로파(텍사스) 단 한명만 왔지만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젠더 보가츠(보스턴) 조나단 스쿱(볼티모어)이 오면 프로파가 백업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강팀이다. 자국리그 타자 중심으로 일본 주축 투수들에게 2경기에서 18점을 올렸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시즌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평가전이라서 투수들이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냐?’라고 하지만,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어떤 부분에서 다른가?

“일류 투수는 마운드에 오르면 아무리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무조건 타자를 이기려고 한다. 일본 최고의 투수들이었다. 그것도 홈경기다. 그러나 네덜란드 타자들의 스윙 스피드는 매우 빨랐다. 정교하고 강한 타격을 했다. 스포츠투아이(야구통계전문업체)와 함께 데이터를 선수들이 쉽게 해석할 수 있게 영상과 자료집을 준비하고 있다. 네덜란드 타자들의 습성과 성향 등을 파악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추가로 합류하면 그에 맞춰 또 많은 것을 수정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마운드 전력은 어떤가.

“이번 평가전은 자국리그 선수들 위주로 참가했다. 사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WBC 규정상 미국국적이라고 해도 조부모 중 한명만 네덜란드 출신이면 본선 참가가 가능하다. 릭 밴던헐크가 한국전에 표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LA 다저스 마무리 켄리 젠슨이 합류할 수도 있다. 매우 위협적인 구성이다. 그런 상황도 대비하고 있다. 예상 밖 마이너리그 투수가 나오는 경우도 굉장히 까다롭다. 정보획득 채널이 많지 않다.”

김시진 WBC 전력분석팀장의 눈은 네덜란드로 향했다. 한국의 2라운드행을 방해할 복병이라는 경계심에서다. 특히 주릭슨 프로파 등 현역 메이저리거들의 가세에 따라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것이 김 팀장의 설명이다.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네덜란드-일본 평가전에서 유격수로 나선 프로파.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이스라엘은 어떤가. 야구팬들에게도 매우 생소한 팀이다. 김인식 감독은 이스라엘을 ‘복병’으로 평가했다.

“전력분석팀에 함께 있는 이종열 위원(SBS스포츠)이 9월에 직접 브루클린 예선전(영국·이스라엘·브라질·파키스탄)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투수들은 굉장히 빠른 공을 던지고 야수들의 기동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네덜란드도 같은 색깔이 있는데, 번트작전도 적극적이고 빠른 발을 활용한 확률 높은 야구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자료도 준비하고 있는데, 관건은 역시 엔트리다. 예선전 선수들의 70% 이상이 최종 엔트리에서는 바뀔 것으로 본다.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 중 상당수가 이스라엘대표팀 출전 자격을 갖고 있다. 마이너리그에도 그 숫자가 많다. 일본의 경우 2라운드에서 만날 것을 대비해 비교적 자료가 충실하다. 영상도 많이 갖고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최종 엔트리 발표 후 준비시간이 매우 촉박할 것 같다. 그 부분이 염려스럽다.”


-A조에는 만만치 않은 상대 대만도 있다.

“대만도 단기전에서 한국을 이길 수 있는 팀이다. 트리플A에서 뛰고 있는 투수 한명이 경기를 지배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더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전력분석 자료가 필요하다. 열심히 준비하겠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보다 훨씬 큰 위기감이 느껴진다. 굉장히 어려운 여정이 대표팀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전력분석팀은 이기는 길을 찾는 게 임무다. 이길 수 있다는 가정 하에 현장 감독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선수의 판단을 도와야 한다. A조에서 만날 팀 모두 쉬운 상대는 없다. 그러나 팀 승리에 보탬이 되도록 눈이 되고 길잡이가 되겠다. 약점은 어떤 팀에나 있다.”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은 대만, 일본에 비해 정보가 많지 않다. 전력분석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어려워도 꼭 해야 한다. KBO도 확실한 지원을 해주고 있다. 아쉬운 부분은 엔트리 발표다. 선수들에게 수비 시프트, 투수들의 볼 배합 등을 세심한 분석에 영상까지 첨부해 다각도로 제공해야 하는데 엔트리가 워낙 유동적이라 완벽하지 못할까봐 걱정이다.”


-감독 출신으로 시즌 내내 KBO 경기운영위원으로 전국을 누볐다. 겨울은 체력을 충전하는 시기다. 코칭스태프도 헌신하고 있지만 전력분석은 그림자다.

“당연히 현장이 우선이다. 우리는 그림자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누구인가. 야구인 아닌가. 모두가 한 팀이고 모두가 야구인이다. 사실 올 시즌 팬들에게 죄송한 일이 있었다. 용서를 구해야 한다. 또 항상 보답해야 한다. WBC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격전장이다. WBC의 성과가 KBO리그와 한국야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야구인으로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고 사명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김 팀장은 아내의 생일을 함께하기 위해 달려갔다. WBC 전력분석팀은 김시진 팀장과 이종열, 최원호 SBS스포츠 해설위원, 안치용 KBSN 해설위원 그리고 스포츠투아이 전문 인력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WBC에서 한국대표팀이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순간까지 바로 곁에서 함께한다. 돌아서던 김 팀장은 한 마디를 더 했다. “우리 전력분석팀 모두 열심히 최선을 다해주고 있다. 경기가 시작되면 밤잠도 못 자고, 식사도 거르고 자료정리와 보고서를 작성한다. 항상 고마울 뿐이다. 이 말을 못해서….”


● 김시진 WBC 전력분석팀장


▲생년월일=1958년 3월 20일

▲출신교=포항중앙초~포항중~대구상고~한양대

▲프로 경력=삼성(1983)~롯데(1989~1992)

▲지도자 경력=태평양 코치(1993)~현대 코치(1996)~현대 감독(2007)~히어로즈 감독(2009)~넥센 감독(2010)~롯데 감독(2013~2014)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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