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버바 왓슨…쫄지 말자! 최진호”

입력 2017-02-1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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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PGA 코리안투어를 제패하고 PGA 투어에 도전장을 낸 최진호는 17일(한국시간) 리베이라골프장에서 개막하는 제네시스오픈에 출전한다. PGA 무대에 선 그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할 뿐이다. (사진 1) 퍼팅 연습 중인 최진호. 뒤쪽에 검은 옷을 입은 선수는 애덤 스콧이다. (사진 2)선수들의 피로회복을 위해 마사지센터가 따로 마련돼 있다. (사진 3)최진호가 클럽하우스 옆 연습그린에 세워진 벤 호건 동상 앞에 섰다. 사진제공 | 최진호

■ 데뷔 13년 만에 ‘꿈의 무대’ 입성

드라이빙레인지 시설 내 수십대트럭 장관
연습그린에 세워진 전설의 동상 ‘감동 2배’


“여기가 바로 꿈에 그리던 PGA 투어구나.”

2016시즌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를 제패하고 1인자가 된 최진호(33·현대제철)가 17일(한국시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인근 퍼시픽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 골프장에서 개막하는 제네시스오픈에 출전한다. 돌고 돌아 프로 데뷔 13년 만에 꿈의 무대 PGA 투어에 서게 된 최진호가 스포츠동아 독자들을 위해 PGA 투어 첫 도전의 설레는 마음을 전해왔다.


● 감동 또 감동

구불구불 도로를 따라 리비에라 골프장의 정문에 도착했다. 월요일 오전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고, ‘플레이어’라고 써 있는 내 차를 발견하자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선수들이 타고 온 자동차들이 쭉 늘어서 있는 광경만으로도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PGA 투어란 뭔가 남다른 곳임에 틀림없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클럽하우스는 생각보다 작았다.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진 국내골프장의 클럽하우스와 비교하면 오히려 초라해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품고 있어서인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분위기가 긴장하게 만들었다.

클럽하우스에 도착하자 또 다른 자원봉사자가 라커룸으로 안내했다. 알파벳 순서에 따라 라커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내 자리는 최경주 선배의 옆에 배정됐다.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TV로만 보던 선수들이 옆을 스쳐갈 때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신기했다. ‘저 선수들과 함께 경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 긴장이 밀려왔다.

클럽하우스 아래층으로 내려와 문을 여니 코스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로 앞에 1번홀 티잉 그라운드가 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작은 연습그린이 위치했다. 그 순간 입구 쪽에 세워진 동상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골프의 전설 중 한 명인 벤 호건이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이 대회의 전신인 LA오픈에서 우승했던 기록과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 숱한 전설과 스타를 탄생시킨 유서 깊은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왔다. 기념으로 간직하기 위해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신기하고 부러운 PGA 투어

코스로 들어서는 순간 또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먼저 클럽하우스를 나와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이는 코스는 인상적이었다. 마치 먼지 한 톨 없이 잘 관리된 카펫을 깔아놓은 듯 곱게 빛나는 초록의 잔디가 가슴을 뛰게 했다.

드라이빙레인지의 시설도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다. 주변으로 수십 대의 트럭이 늘어서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선수들에게 장비를 만들어주는 이동식 피팅트럭과 마사지센터, 의료센터 등 그 규모와 수준이 부럽기만 했다. 드라이빙레인지 뒤로는 갤러리스탠드가 설치돼 있어 언제든 선수들의 연습 장면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한 배려 또한 눈길을 사로잡았다.

월요일 오후 들어 조금씩 선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TV로만 보던 스타들의 모습이 보이니 신기했다. 잠시 후 연습하고 있는 버바 왓슨과 인사하며 얘기하는 안병훈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는 대단한 스타처럼 보였던 선수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러웠다. 그 순간 ‘TV에서 볼 때는 대단한 스타처럼 보였지만, 이곳에선 다 같은 선수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언젠가 나도 저 선수들과 같은 무대에 서면 또 누군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겠지.

가볍게 연습을 마친 뒤 후배 강성훈, 김시우와 함께 코스로 나갔다. 잘 다듬어진 코스 위에서 라운드를 할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사실 이 코스는 지난해 동계훈련 중 갤러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최경주 선배의 경기를 보면서 18홀을 돌아봤다. 그때도 코스가 만만찮게 보였는데, 실제 코스 안으로 들어가보니 더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인코스(후반 9홀)는 페어웨이가 좁으면서 그린까지 작아 공략이 쉽지 않게 보였다.

연습을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힘이 나는 일이 생겼다. 멀리 미국땅에서도 나를 알아보시는 팬들이 작은 목소리로 “최진호 프로, 파이팅”이라며 응원해주셨다. 기분이 이상했지만 힘이 났다.

저녁에는 최경주 선배의 초대로 식사를 함께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따뜻한 배려와 조언으로 반갑게 맞아주셨다. “긴장하지 말고 준비한대로 즐겨봐라”는 최 선배의 한마디가 큰 위안이 됐다.

하루하루 준비하다보니 어느덧 D-데이가 다가왔다. 수요일에는 일찍 연습을 마치고 오후 4시쯤 숙소로 들어왔다. 1라운드는 오후 1시15분 티오프로 시간을 배정받았다. PGA 투어의 괴짜 골퍼로 잘 알려진 브라이슨 디셈보, 리치 버버리안과 같은 조다.

밤이 깊어질수록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이 더 커졌다. 심장소리도 더 크게 요동을 치는 것이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PGA 무대에 서게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쫄지 말자. 열심히 준비했으니 마음껏 즐기고 후회 없이 쳐보자. 내일 모든 것을 쏟아 붓자. 최진호, 파이팅!”

-리비에라에서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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