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오키나와] 이대호, 조선의 4번타자가 털어놓은 부담감

입력 2017-02-2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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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대표팀의 중심축인 이대호는 ‘조선의 4번타자’라는 별명답게 나라를 위해 뛰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팀은 물론 소속리그를 옮긴 이번 역시 마찬가지. 이젠 한결 편하게 태극마크를 달 때도 됐지만, 본인은 물론 후배들까지 챙겨야하는 부담감이 그를 짓누르는 눈치다. 사진제공 | KBO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의 4번타자는 이대호(35·롯데)다. 김인식 감독은 타순을 확정해서 발표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대호가 4번에 들어가고, 김태균과 최형우가 양 옆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대호의 별명 중 하나는 ‘조선의 4번타자’다. 2006도하아시안게임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단 그는 2008베이징올림픽, 2009년 제2회 WBC,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2013년 제3회 WBC, 2015년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까지 국제대회 때마다 나라를 위해 뛰었다. 6차례 국제대회에서 39경기 타율 0.336·7홈런·40타점으로 활약하며 결정적인 장면도 많이 만들어냈다.

WBC대표팀 이대호.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이제는 ‘맏형’, 달라진 이대호가 느끼는 부담감

이대호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다. 코칭스태프는 당초 소속팀의 애리조나 캠프에 보냈던 그를 대표팀의 오키나와 캠프에 중도 합류시켰다. 장시간 비행에 다른 선수들보다 5일이나 늦게 도착했지만, 이대호는 도착 직후 옷만 갈아입고 훈련장으로 향할 정도로 의욕을 보였다.

이대호는 달라져 있었다. 원체 기술적으로 완성된 선수로 훈련도 성실히 했지만, 이젠 후배들을 위하는 선배로서 모습이 돋보인다. 1982년생으로 동갑내기 김태균(35·한화)과 함께 야수 최고참인 그는 ‘맏형’으로 솔선수범하고 있다.

그는 “며칠 안 됐지만, 선수들을 보니까 전부 다 건강하고 분위기가 정말 좋다. 좋은 전훈이었다”며 웃었다. 이어 “선수들이 나와 (김)태균이에 대해서 많이 얘기해주는 것 같은데 솔직히 우리가 하는 건 많지 않다. 대표팀에 온 후배들은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다. 훈련도 알아서 잘 한다.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겸손해했다.

이대호는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그는 “국제대회는 세계적으로 잘하는 선수들이 모이는 자리 아닌가. 잘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부담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래도 후배들에게 자기 야구를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후배들은 즐겁게, 배운 대로 하면 그만이다. 부담은 나나 태균이처럼 고참들이 갖는 것”이라고 답했다.

WBC 대표팀의 4번타자 이대호가 19일 일본 오키나와 나하 셀룰러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미우리와의 연습경기에 8회 대타로 나와 삼진을 당하고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제공 | KBO



● 떨어진 실전감각, 대표팀 4번타자가 갖는 부담감

이대호는 떨어져 있는 실전감각이 가장 큰 걱정이다. 19일 열린 요미우리와 연습경기에서도 8회 대타로 들어가 요미우리 왼손투수 토네 치아키를 상대로 서서 3구 삼진을 당했다. 그는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도 잘 모르겠더라.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들어왔다고 해서 놀랐다. 그만큼 배팅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 있다”며 “사실 3월에 경기하는 게 쉽지는 않다. 투수들도 몸을 만들고, 우리도 눈에 잘 안 들어오는 시기다. 그런데 바로 150㎞짜리 공을 쳐야 한다. 준비과정에서 힘든 게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결국 연습경기를 통해 끌어올려야 한다. 훈련 때 감이 좋아도 배팅볼의 스피드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전에선 늦는다. 계속 치면서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파울을 많이 치면서 감을 잡아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대호는 4번타자에 대한 부담감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4번타자를 치는 건 자존심도 살고 좋은 일”이라면서도 “사실 4번타자란 게 부담은 된다. 꼭 쳐야 하는 자리고, 언제든 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이상 성적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고참으로서 부담감, 그리고 4번타자로서 부담감을 모두 짊어지고 WBC에 나선다. 한층 더 성숙한 ‘조선의 4번타자’는 그렇게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키나와(일본) |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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