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 분노의 성명서 “A씨 무죄라니…연기 아닌 성폭력” [전문 포함]

입력 2017-03-28 17:28:00

남배우 A씨의 성폭력 논란과 관련해 영화인들이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해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여성영화인모임, 영화마케팅사협회는 17일 사무국 성명서를 통해 “A씨의 강제추행치상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를 규탄하며, 2심 재판부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A씨는 2015년 4월 영화 촬영 중 서로 합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 여성 배우를 폭행하고, 속옷을 찢고 가슴을 만지고 바지 안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가 이를 공론화하자 A씨는 B씨에게 사과하고 스스로 “영화에서 하차하겠다”고 말했으나 이후 결정을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국은 “검찰은 강제추행치상과 무고로 A를 기소하고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2016년 12월, 1심 재판부는 저예산영화의 시․공간상 한계와 제작진의 준비 소홀을 이유로 들면서 ‘업무상 행위’로서 성폭력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이 항소하여 현재 2심 재판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업무상 행위’를 할 때는 사전에 충분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A씨는 시나리오와 감독 지시에 없던 ‘사정 연기’까지 진행했다. 감독 포함 스태프 중 누구도 제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영화인으로서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는 저예산영화의 보편적인 현장이 아니며, 저예산영화의 한계로 인한 필연적인 상황 또한 아니다. 촬영을 강제한 폭력이다. 이로 인해 일어난 상황을 ‘배역에 몰입한 연기’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재판부의 선고에 반박했다.

이들은 분노를 표하면서 “2심 재판부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한다. 그것은 영화가,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는 영화인이자 안전한 업무 환경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는 노동자로서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주목하며, 영화계 나아가 예술계 전반에 만연한 폭력을 근절하고 건강한 노동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 성명서 전문>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이다.” - 배우 A의 강제추행치상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를 규탄하며, 2심 재판부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한다.

지난 2015년 4월, 영화 촬영 현장에서 배우 A(이하 A)가 감독․배우․스태프들과 사전에 협의한 연기 내용과 전혀 다르게, 상대 배우 B(이하 B)를 폭행하고, B의 속옷을 찢고, 가슴을 만지고,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추행하는 성폭력을 가했다.

해당 장면은 평소 B가 A의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부부강간 장면이며, 자극적인 노출 없이 얼굴 및 상반신 위주의 헨드핼드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멍 분장을 B의 어깨 쪽 부분에만 하였고, 속옷도 의상 소품이 아닌 B의 개인 속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메이킹 촬영기사까지 현장에서 메이킹을 촬영하고 있었다.

B는 촬영이 종료되자마자 곧바로 감독과 그리고 A에게 추행 및 폭행 사실을 알려 피해사실을 공론화 했다. 당시 A는 B에 대한 사과와 함께 스스로 영화 하차를 하겠다고 하였으나, 이내 하차 결정을 번복하고 B에게 2차 피해를 가했다. 이에 B는 피해자 지원기관에 상담을 요청했고, 경찰에 강제추행치상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였다.

검찰은 강제추행치상과 무고로 A를 기소하고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2016년 12월, 1심 재판부는 저예산영화의 시․공간상 한계와 제작진의 준비 소홀을 이유로 들며, A는 촬영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배역에 몰입해 연기를 했으며, 이는 업무상 행위로서 성폭력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검찰이 항소하여 현재 2심 재판을 진행 중이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에서 연기는 ‘업무상 행위’ 이다. 신체적 안전을 위협하는 폭행과 인격적 훼손이 가해질 위험이 있는 연기는 배우를 포함한 영화 제작 구성원들 간에 충분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 합의에 따라 촬영을 진행해야 한다. 해당 장면의 촬영 당시, 감독은 A에게는 난폭하게 강간하는 연기를 지시했으나 B와는 이러한 연기 지시를 공유 및 합의하지 않았다. A는 위 절차와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시나리오와 감독지시에 없었던 '사정 연기'까지 진행했다. 촬영하는 동안 A의 연기에 대해 감독 포함 스탭 중 그 누구도 상황을 제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영화인으로서 유감을 표한다.

이것은 저예산영화의 보편적인 현장이 아니며, 저예산영화의 한계로 인한 필연적인 상황 또한 아니다. 일종의 편의에 따라 영화 제작 구성원 중 일부를 합의 과정에서 배제하고, 촬영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배우로 하여금 사전에 숙지한 연기 내용과 범위에 어긋난 촬영을 강제한 폭력이다. 이로 인해 일어난 상황을 ‘배역에 몰입한 연기’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폭력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우리는 비단 영화 현장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폭력이 영화계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것에 반대한다. 또한 저예산영화라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고 피해 사실을 무화한 1심 재판부의 판결문에 영화인으로서 분노한다.

잘못된 판례는 추후 영화와 예술의 이름을 빙자하여 벌어질 범죄에 악용될 것이며, 과거의 폭력을 은폐하고 정당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정당한 항의와 문제제기는 묵살되고, 유사한 폭력은 끊임없이 재생산 될 것이다.

따라서 배우 A의 강제추행치상 및 무고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2심 재판부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한다. 그것은 영화가,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는 영화인이자 안전한 업무 환경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는 노동자로서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주목하며, 영화계 나아가 예술계 전반에 만연한 폭력을 근절하고 건강한 노동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17년 3월 28일

한국독립영화협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여성영화인모임
영화마케팅사협회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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