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기획W] 해태-롯데 무거래·트레이드에도 천적이 있다

입력 2017-04-21 05:30:00

과거 해태와 롯데의 간판 선수였던 선동열-故 최동원(오른쪽). 사진제공|KBO

트레이드. 사전적 뜻은 거래다. 프로스포츠에서 트레이드는 독특한 거래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모든 트레이드는 시장에서 이뤄진다. 각 구단은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구매자다. 단 10개 구단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대단히 과점적이면서 폐쇄적인 시장이다.

트레이드는 결정적인 순간 한국프로야구 역사를 바꿔왔다. 흥미로운 부분은 역대 트레이드를 살펴보면 각 구단간의 친밀도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해태(현 KIA)와 롯데는 프로야구 원년 제과라이벌이자 영호남 라이벌로 유명했다. 해태와 롯데는 제과업계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해왔다. 그러한 영향 탓인지 두 팀은 1982년부터 해티가 KIA로 넘어가기까지 단 한번도 상호간 트레이드를 하지 않았다. 짧지 않은 기간에 단일리그인 KBO리그에서 트레이드를 하지 않은 팀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라운 역사다. 양 팀의 트레이드는 KIA로 인수된 이듬해인 2002년 7월31일 롯데 김인철이 KIA로 간 것이 최초의 사례다. 2003년엔 1월14일 KIA 김규태가 롯데로 트레이드됐고, 7월16일 심제훈과 엄정대의 맞트레이드가 성사됐다.

KIA에는 해태 타이거즈에 입사해 팀 역사를 함께한 베테랑 프런트가 다수 존재한다. KIA의 숨은 힘이기도 하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제과 라이벌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롯데와 해태는 전력 흐름이 매우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서로 남고 모자란 부분이 반대여야 하는데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았다”로 모아진다.

KIA 시절 이용규-김상현-LG 시절 강철민(왼쪽부터). 사진제공|KIA 타이거즈·LG 트윈스


반대로 KIA는 해태시절부터 LG와 2009년까지 매우 활발히 트레이드를 했다. 1993년 12월 해태 간판스타 한대화와 신동수가 LG로 가고, 미스터 LG 김상훈과 이병훈이 해태로 트레드된 뒤 LG가 우승을 하는 등 1990년대까지만 해도 LG가 이득을 본 사례가 많았지만, KIA로 바뀌고 나서는 대부분 KIA가 큰 이득을 봤다.

2005년 이용규는 LG에서 KIA로 트레이드 된 후 국가대표 리드오프로 성장하며 2009년 우승을 함께했다. 2009년 시즌 중 LG에서 KIA로 옮긴 김상현은 시즌 MVP가 됐다. 당시 트레이드를 주도한 LG의 운영팀장은 염경엽 SK 단장이다. 정성훈을 영입해 중복자원인 김상현을 보내고 아마추어시절 특급 투수였던 강철민을 택했지만 부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LG는 이후 KIA와 트레이드를 하지 않고 있다.

전 LG 현재윤-LG 손주인-전 삼성 김태완-삼성 정병곤(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삼성 라이온즈


LG는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한 뒤 2012년 12월까지 22년 동안 삼성과 단 한차례도 트레이드를 하지 않았다. 삼성과 LG는 전자업계 라이벌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당연히 선수를 주고받지 않았다. LG와 삼성의 첫 트레이드는 2012년이었다. 현재윤, 손주인-김태완, 정병곤이 포함된 3대3 트레이드는 당시 양 팀 단장의 깊은 친분이 작용한 첫 거래였다. 포수 보강이 급했던 LG의 요청을 막강 전력을 구축했던 삼성이 받아들인 결과였다.

트레이드 역사를 살펴보면 즉시전력을 원했던 팀들의 실패 확률이 더 높았다. 반대로 현재와 미래를 맞바꾼 팀들의 혜안이 팀의 역사를 많이 바꿨다. 상대 팀 트레이드 절대 불가 자원을 요구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금기로도 통했지만 이제 그러한 경계가 모두 사라지며 트레이드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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