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현의 야구學] 투수의 시대, 다시 찾아온 ‘마운드의 봄’

입력 2017-05-19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스포츠동아DB

그라운드에 투고타저(投高打低)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을 겪었던 KBO리그. 그러나 올 시즌은 여러 변화와 함께 ‘투수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해 5.17까지 솟았던 리그 전체 방어율과 0.290의 전체 타율은 현재 4.25와 0.271로 나란히 내림세고, 경기시간 역시 평균 3시간25분에서 3시간15분으로 10분이나 감소했다(17일 기준). 굳이 수치로 나열하지 않아도 야구계 안팎의 관계자들은 이미 변화의 바람을 충분히 느끼는 모습이다. 투고타저 현상의 원인과 이에 따른 유·무형적 효과에 대해 야구기자 2년차 고봉준 기자가 묻고, 조범현 전 감독이 답했다.


Q : 올 KBO리그는 유독 투고타저의 흐름이 눈에 띕니다. 그라운드 밖에서 보는 모습과 현장의 목소리는 어떠한지 궁금한데요.

A : 투고타저 현상이 짙어졌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겠네요. 제가 현장에 있던 지난해는 물론 그 전과 비교해도 대량점수가 나오는 경기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경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잘 실감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엔 초반부터 대량실점이 잇따르면서 일찌감치 긴장감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초반부터 1~2점 싸움이 전개되면서 시소게임이 늘어났습니다. 한 명의 야구인이 아닌 한 팬으로서 KBO리그를 즐기는 재미도 커졌어요. 현장에 있을 때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죠. 한동안 모든 감독들이 막판까지 안심을 하지 못했습니다. 7회부터 5점 정도를 리드하면 경기를 잡아야하는데 7점 가까이가 순식간에 나버리니 안심할 수가 없었죠. 저뿐만 아니라 많은 감독들이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또 다른 걱정거리가 있겠지만, 대량실점 압박감은 줄었다고 할 수 있죠.


Q : 단 1년 만에 확 바뀐 풍경입니다. 그렇다면 그 배경은 어떻게 보십니까.

A : 키포인트는 역시 스트라이크존(S존)의 변화입니다. 좌우는 물론 위아래로 조금씩 커지면서 많은 타자들이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에요. 현장에서 만나는 선수들도 볼멘소리를 하더군요. 물론 아직까지 잡음은 있습니다. 심판진 간의 개인차가 있다보니 경기마다 편차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가끔은 ‘저런 볼도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나’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여러 팬들께서 불만을 표출하고 계신데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참 쉽지가 않습니다. 심판도 사람이기 때문이죠. 타자들처럼 심판진 역시 적응해 나가는 시간이 필요한 듯 보입니다.



Q. 그렇다면 투고타저 현상이 가져올 효과엔 무엇이 있을까요. 이미 기록상으로도 큰 차이가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도 분명 있을 듯합니다.

A : 우선 리그 전체를 생각했을 때 긍정적인 흐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간엔 너무 타고투저 현상이 짙었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지난해 수치를 살펴보니 KBO리그 전체 방어율이 5점대가 넘더군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수치죠. 그런데 지금은 1점 가까이 내려갔습니다. 경기시간 역시 10분 정도 줄어들었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보다 정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죠. 그리고 또 하나.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초반부터 시소게임이 전개되면서 관중들과 선수단의 몰입도가 높아졌어요. 초반 7-0 승부보단 1-1 승부가 더 재미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각 팀 마운드 운영을 둘러싼 지략싸움도 볼거리에요. 선수기용부터 투수교체 타이밍까지. 투수전 속에서 1~2점차 승부만이 지니는 묘미가 한동안 계속될 듯합니다.


Q : 투수의 시대와 함께 자연스럽게 여러 투수들이 위용을 떨치고 있습니다. 토종과 외국인을 통틀어 어떤 선수들을 가장 눈여겨보고 계십니까.

A : 일단 헥터 노에시(KIA)가 단번에 눈에 들어오더군요. 원체 잘 던졌던 투수지만, 넓어진 S존을 잘 활용하면서 올해에도 호투 중입니다. 참 영리한 투수에요. 또 한 명은 양현종(KIA)입니다. 제가 2007년 말 KIA로 부임했을 때 현종이는 이제 갓 프로에 들어온 선수였어요. 하루는 불펜 피칭을 보는 데 참 구위가 좋더군요. 볼끝이 살아오는 움직임이 일품이었습니다. 유연성은 물론 근육의 질 자체도 좋았고요. 그런데 제구는 조금 불안정했어요. 그런데 점차 경험을 쌓으면서 최근엔 성숙단계에 이른 모습입니다. 제가 봐도 타자들이 쉽게 칠 수 없겠더라고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타고투저 현상 때문에 막판에 승리를 날리는 경우가 많아 참 안타까웠는데 요새는 승운마저도 따르고 있네요. 개인적으로는 참 뿌듯합니다.

KIA 헥터-양현종(오른쪽).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Q :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사이드암 전성시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A : 사이드암 투수들이 여럿 등장한 현상은 넓어진 S존과는 관계없이 구종의 힘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엔 사이드암의 변화구라고 하면 가운데서 외각으로 흘러나가는 볼과 공과 타자 몸쪽을 파고드는 싱커 정도였어요. 그런데 고영표(kt), 임기영(KIA) 등 모두가 체인지업으로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옆구리 투수가 던지는 떨어지는 변화구는 타자들이 공략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아 한 가지 추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S존이 넓어졌다고 해서 모든 투수들이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컨트롤을 바탕으로 이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이득을 볼 수 있겠죠. 앞으로 제구력을 갖춘 투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들의 격차는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또 하나는 구위입니다. 투수의 시대 속에서도 볼끝이 좋아야 타자들을 이겨낼 수 있겠죠. 야구를 깊이 있게 보는 팬들께선 여기에 초점을 맞추셔도 흥미로운 관전이 가능할 듯합니다.

kt 고영표-KIA 임기영(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정리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