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베이스볼] 두산 정진호 “사이클링히트는 겨우 시작일 뿐”

입력 2017-06-1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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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KBO리그` 두산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5회말 2사 1루 두산 정진호가 투런홈런을 때리고 있다. 정진호는 KBO 23번째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두산전에선 KBO리그에 길이 남을 기록 하나가 탄생했다. 역대 23번째이자 역사상 최초로 5회 만에 달성된 사이클링히트였다. 진기록의 주인공은 두산 외야수 정진호(29)다. 그는 이날 1회부터 5회까지 4타석에 들어서는 동안 2루타와 3루타, 안타, 홈런을 차례로 때려내고 KBO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아직 대다수 팬들에게 이름이 낯선 정진호는 올해로 입단 7년차를 맞는 늦깎이 기대주다. 2011년 데뷔해 매 시즌 1군 무대를 밟았을 만큼 잠재력 하나는 인정받았던 준족의 외야수. 그러나 그 앞에 놓인 주전의 벽은 쉽게 허물지 못했다. 내로라하는 외야수들이 차고 넘쳤던 두산이라는 팀 특성상 정진호는 만년 백업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짙은 자괴감에 빠져있던 시점, ‘사이클링히트’라는 행운이 그의 곁에 다가왔다. 정진호는 “지금 2군에 가면 나이로는 최고참급에 속한다. 그 때문에 자괴감이 드는 날도 많았다”고 고백한 뒤 “그러나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번을 계기로 최대한 많은 경기에서 내 기량을 펼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이클링히트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정진호를 10일 롯데전을 앞둔 울산 문수구장에서 만났다.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KBO리그’ 두산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5회말 2사 1루 두산 정진호가 투런홈런을 때리고 덕아웃에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정진호는 KBO 23번째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사이클링히트 덕분에 은사님과 다시 연락이 닿았어요”

-기록 달성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그날 상황이 궁금하다.


“사실 컨디션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저 몸에 힘이 조금 붙은 시기였다. 2군에 오래 있었고, 1군에서도 경기에 많이 나가지 않은 터라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타격감은 그날 역시 특별히 좋지는 않았다. 그대로였다고 할까. 경기 전날 비가 많이 내려 타격연습을 실내에서 진행했는데 별다르게 좋은 느낌은 없었다. 전날 기분 좋은 꿈도 꾸지 않았다.(웃음)”


-사이클링히트를 직접 본 적은 있었나.

“두 눈으로 처음 본 사이클링히트는 지난해 박건우가 달성한 때였다. (박)건우가 동생이긴 하지만 참 부럽기도 했고,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야구를 하면서 한 번 할까 말까한 기록도 아니고, 못한다고 봐야하는 기록 아닌가.”


-기록의 마침표였던 5회 홈런공을 삼성 우익수 구자욱이 직접 챙겨 화제가 됐다. 그날 저녁 둘이 회식을 했다고.

“(구)자욱이가 기특한 일을 해줬다. 그래서 경기가 끝난 뒤 삼성 숙소 근처로 건너가 소고기를 사줬다. 사실 자욱이와는 상무에서 각별하게 지냈다. 입대 동기(2012년)인데다가 서로 체형이 비슷해 공통된 운동이 많았다. 둘 다 마른 체형이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몸집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서로 꼭 붙어 다녔다.”


-서로 무슨 말을 하면서 밥을 먹었나.

“자욱이가 ‘(진기록 달성한) 형이 부럽다’고 하기에 내가 ‘나보다 잘 치는 네가 더 부럽다’고 말해줬다.”


-축하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문자와 전화가 참 많이 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락은 중앙대 시절 정기조 감독님과 통화였다. 정 감독님께선 3학년 때까지 학교에 계시다가 4학년을 앞두고 학교를 떠나셨다. 그러고 나서 프로 입단할 때 연락을 드린 뒤로 7년 가까이 안부를 여쭙지 못했다. 그런데 7일 경기가 끝나고 문자를 보내주셨더라. 그래서 바로 전화를 드려 감사하다고 말씀 드렸다.”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실 듯하다.

“지금은 따로 나와 살고 있느라 통화만 드렸다. 앞으로는 더 자신 있게 하라고 말씀해주시더라. 곧 구단으로부터 사이클링히트 기념공을 받으면 본가에 전시할 계획이다.”


-그런데 김태형 감독은 당시 방송 인터뷰를 보고 ‘정진호가 말을 너무 못해 채널을 돌렸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더라.

“감독님께서 오해를 하신 듯하다.(웃음) 나도 그 기사를 접했다. 그래서 방송 인터뷰를 다시 돌려봤는데 이야기를 못한 느낌은 없었다.”

두산 정진호. 스포츠동아DB



● “달리기 하나로 육상부도 제쳤죠”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랑 동네에서 테니스공을 갖고 캐치볼을 하고 있었는데 옆을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야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시더라. 인헌초(서울 관악구) 야구부 학부모회장이셨다. 그렇게 처음 야구부에 들어가게 됐다. 어차피 부모님께서도 맞벌이를 하셨고, 누나도 학교가 늦게 끝나는 날이 많아 집에 있으면 혼자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런데 야구부에선 친구들도 많고, 간식도 줬기 때문에 서서히 재미가 들었다. 처음엔 부모님께서 완강히 반대하셨지만, 결국엔 내가 이겨 지금까지 오게 됐다.”


-야구선수로서 재능이 특별했는지 궁금하다.

“다른 능력은 잘 몰라도 달리기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야구부에 들어간 뒤로도 초등학교 육상대회에 나갈 정도였다. 한 번은 학교 육상부 친구들을 제치고 서울시대회 80m 종목에 출전했다. 예선 2위, 결선 2위로 은메달을 땄다. 딱 한 선수에게 두 번이나 밀렸다.”


-포지션은 처음부터 외야수였나.

“아니다. 초등학교 때는 주로 유격수와 투수를 봤다. 중학교로 넘어와선 계속 유격을 맡았고, 고등학교에선 3루를 잠시 보다가 외야로 전향했다. 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중견수 포지션을 주로 소화했다.”


-프로필을 보니 대학 시절 대표팀 경력이 화려하다.


“대학교 다닐 때 대표팀만 4번을 나갔다. 세계야구선수권과 아시아야구선수권, 야구월드컵, 한미야구선수권 명단에 모두 뽑혔다. 그래도 대학 다닐 때는 야구 좀 했다.(웃음)”

두산 정진호. 스포츠동아DB



● “왜 하필 두산이었나 하는 생각도…”

-2011년 두산이라는 팀에 입단했다.


“사실 신인드래프트 결과를 듣고 왜 하필 두산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 4학년 시절 주위에서 ‘어느 팀에 가고 싶냐’라고 물으면 두산만 아니면 된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두산이라는 팀은 주전 야수층이 견고해 피하고 싶었다. 결과를 듣고 얼마나 당황했던지….”


-팀에 들어와서 보니 실제로도 벽은 높았나.

“당시 멤버가 참 화려했다. 이종욱~김현수~정수빈의 주전 외야진은 물론 이성열~임재철 선배 등 백업도 탄탄했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바깥에선 두산을 화수분 야구라고 극찬한다. 2군 훈련지인 이천은 그 산실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렇다면 안에서 느끼는 두산의 2군 분위기는 어떠한가.

“다들 열정적이다. 그러나 자괴감이 든 때도 많았다. 지금 이천에 가면 나이로는 내가 최고참급에 속한다. 대부분이 어린 후배들이다. 이천에 오래 있다 보면 야구에 재미가 줄어든 시절도 가끔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제 사이클링히트의 기운을 성적으로 이어가야한다.

“프로에서 지내다 보니 ‘운’이란 존재도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만약 그날 박건우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사이클링히트를 때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나에게 찾아온 행운을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최대한 많은 기회를 얻고 싶고, 또 그 기회를 성적으로 보답하고 싶다.”


● 두산 정진호


▲생년월일=1988년 10월 2일

▲출신교=인헌초~선린중~유신고~중앙대

▲키·몸무게=185cm·78kg(우투좌타)

▲프로 입단=2011년도 신인드래프트 두산(2차 5라운드 전체 38순위)

▲프로 경력=두산(2011~2012년)~상무(2012~2014년)~두산(2014년~)

▲입단 계약금=6000만원

▲2017시즌 연봉=4700만원

▲통산 성적=229경기 타율 0.244(352타수 86안타) 7홈런 36타점 78득점

▲2017시즌 성적=28경기 타율 0.313(64타수 20안타) 3홈런 7타점 11득점(12일까지)

울산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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