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기획W] 영광과 눈물이 함께 담긴 영구결번 스토리

입력 2017-06-2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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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동원의 영구결번식.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등번호는 선수에게 분신과도 같다. 상당수 스타 선수들은 팀을 옮겨도, 국가대표팀에 뽑혀도 자신의 등번호를 그대로 유지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팀 이적 후 거액을 지불해 고가의 선물을 하고 등번호를 양보받기도 한다. 김성근 전 감독은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이 고르지 않은 번호를 택한다’는 불문율을 유일하게 지키지 않는 감독이었다. 38번에 대한 큰 애착 때문이었다.

자신의 상징을 팀에 영원히 남기는 영구결번은 선수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영구결번의 영광을 차지한 주인공은 최근 등번호 9번을 영원히 남기게 된 이병규를 포함해 단 13명뿐이다. 그러나 13번의 영구결번 지정은 언제나 큰 박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프로야구 초창기 KBO리그 각 구단은 영구결번에 인색했다. 은퇴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것도 큰 배경이었다.



● 영구결번 취소될 뻔했던 선동열의 18번

KBO리그 역사상 첫 번째 영구결번은 1986년 세상을 떠난 OB 김영신이다. 그러나 당시엔 추도의 의미를 담아 영결식 후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그래서 사실상 KBO 역사상 명예로운 영구결번의 첫 번째 주인공은 선동열(전 KIA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선동열은 1996년 해태에서 일본 주니치로 현금 임대되어 떠난 직후 18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해태로 복귀하면 다시 달 수 있었지만, 1999시즌 후 주니치에서 은퇴하면서 18번도 함께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2001년 해태를 인수한 KIA는 이듬해인 2002년 ‘제2의 선동열’로 불린 김진우가 입단하자 ‘전설적인 투수의 등번호를 대물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18번을 선물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팬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고 곧장 취소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선수 시절 선동열.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현역선수로 영구결번, 뒤늦게 영구결번

3번째 영구결번의 주인공은 LG 김용수(전 중앙대 감독)로, 현역선수 신분이었던 1999년 LG는 41번에 대해 사상 최초 영구결번식을 했다. KBO리그 최초로 100승-200세이브를 달성한 위대한 업적이 반영된 매우 영광스러운 현역 영구결번지정이었다. 김용수는 2000년 은퇴했다.

그러나 삼성을 상징했던 스타 이만수(전 SK 감독)는 1997년 은퇴 이후 7년이 지난 2004년에서야 등번호 22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수년간 이어진 삼성팬들의 요청을 구단이 수용한 결과였다. 이만수는 은퇴 과정에서 삼성 구단과 마찰을 빚었고 은퇴식도 없이 유니폼을 벗었는데,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 코치로 활약하던 시절에 뒤늦게 영구결번 결정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OB 베어스의 영원한 스타 박철순도 1996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지만 영구결번은 2002년에야 결정됐다. 박철순의 은퇴식이 1997년 4월21일 열렸지만 당시 KBO리그에는 영구결번 문화가 정착하지 않아 뒤늦게 21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롯데의 전설 고 최동원(전 한화 2군 감독)은 2011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뒤 등번호 11번이 사직구장에 영원히 남게 됐다. 1988년 롯데를 떠난 후 무려 23년, 1990년 삼성에서 은퇴한 후 21년 만의 일이었다. 선수협회 결성 등으로 구단과 마찰이 있었던 최동원에 대한 예우는 사후에야 이뤄졌다.

전 두산 박철순.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 한화는 3명으로 최다 영구결번 구단

한화는 2005년 장종훈(롯데코치)의 35번을 시작으로 2009년 정민철(MBC스포츠+ 해설위원)의 23번과 송진우의 21번까지 팀 역사를 함께한 스타들을 연이어 영구결번으로 예우했다. 한화는 현재 영구결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구단이다.

KIA도 2012년 이종범(MBC스포츠+ 해설위원)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지만 성대한 은퇴식과 함께 등번호 7번을 18번 옆에 두며 영원히 광주에 남겼다. 아울러 KBO리그 영구결번 중 21번은 2명(박철순 송진우)이나 포함돼 있어 눈길을 모은다.

장종훈(35)-송진우(21)-정민철(23)의 영구결번. 동아일보DB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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