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현의 야구學] (上)적을 속이고, 나를 속이고…볼 배합의 세계

입력 2017-06-3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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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배합은 투수와 포수의 하모니다. 누군가는 ‘볼 배합은 허상’이라고 평가절하를 내리지만 좋은 포수가 우승을 만드는 것도 현실이다. 스포츠동아DB

경기 내내 공수를 주고받는 야구는 수싸움의 연속이다. 상대의 심리를 꿰뚫으면서도 자신의 속내는 드러내지 않아야하는 종목이 바로 야구다. 그리고 이러한 수싸움의 첨단에 놓여있는 대목이 바로 ‘볼 배합’이다. 타자를 잡아내기 위한 투구 뒤엔 늘 볼 배합이 자리하고 있다. 포수 출신의 조범현 전 감독은 “볼 배합엔 정답이 없다”고 정의를 내리면서도 “현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해야하는 것이 바로 볼 배합”이라고 역설했다. 볼 배합의 세계에 대해 야구기자 2년차 고봉준 기자가 묻고, 조 전 감독이 답했다.


Q : 볼 배합이란 단어는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그 깊이에 대해선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일반 팬들 역시 궁금해 하는 내용인데요.

A : 볼 배합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틀린 답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저는 ‘볼 배합에 정답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그 속이 깊기 때문이죠. 먼저 볼 배합에 대한 기본 갈래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요. 투수 중심 배합, 상황 중심 배합 그리고 타자 중심 배합입니다. 투수를 중심으로 놓고 봤을 땐 기교파와 정통파로 나눌 수 있겠네요. 기교파 투수의 경우는 포수가 변화구와 제구력에 바탕을 두고 타자를 맞춰 잡는 패턴으로 볼 배합을 가져갑니다. 반대인 정통파의 경우엔 힘으로 밀어붙이는 볼 배합이 필요하죠. 상황에 따라서도 볼 배합은 달라집니다. 상황 중심 배합은 실례를 들어보죠. 주자 1루 시 병살을 유도하는 상황, 1루가 비어있는 상황, 주자 3루 시 희생플라이를 허용해선 안 되는 상황 등 입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판단해 볼 배합을 결정해야합니다. 오늘은 타자를 중심으로 한 볼 배합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Q : 그렇다면 타자 중심 배합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A : 이는 기본적으로 상대타자 유형을 파악하는 작업에서 출발합니다. 장타자/단타자, 당겨치는 타자/밀어치는 타자, 직구를 잘 치는 타자/변화구에 잘 대응하는 타자, 이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들을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겠죠. 다음은 타자의 자세, 배트 그립 모양, 배트를 들고 있는 각도, 스트라이드 시 발의 위치, 몸의 중심 이동 분석 등입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사전에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어야만 순간적인 분석을 통해 효율적인 볼 배합이 가능합니다. 그 다음이 파울 스윙에서의 결과 분석입니다. 같은 파울이라고 해도 타구방향에 따라서 다음 볼 배합에 대한 결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 파울타구에 따른 볼 배합 변화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A : 오른손 타자를 기준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당겨쳐서 3루코치 박스 방향으로 라인드라이브성 파울타구가 나온다면 타자의 타이밍이 조금 빠르다는 뜻입니다. 이럴 땐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로 상대 타이밍을 뺏어낼 수 있습니다. 만약 1루코치 박스 방향으로 직선타구가 나온다면 타자의 타이밍이 다소 늦다는 증거죠. 이 경우엔 가급적 몸쪽으로 직구를 붙이면서 승부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다음으로 파울타구가 백네트 방향으로 간다면 타이밍이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땐 방금 던진 볼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수의 사인을 보고있는 박희수. 스포츠동아DB



Q : 그런데 볼 배합에 앞서 타자가 어떤 구종, 어느 코스를 노리는지 먼저 파악해야할 텐데요. 그 노림수는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요.

A : 앞서 몸의 중심 이동을 이야기했는데요. 경기를 하다 보면 타자가 도대체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타자 속을 매번 알아차릴 수는 없는 법이죠. 이럴 땐 의도적인 볼 배합을 통해 파악할 수 있습니다. 몸쪽 깊숙이 직구를 붙이거나 타자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변화구를 던진 뒤 타자의 웨이팅 모습을 통해 노림수를 예측하는 방법이죠. 만약 타자가 몸쪽 유인구성 직구에 반응해 팔이 앞으로 나온다면 직구 타격의도가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직구 타이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증거죠. 이럴 땐 역으로 변화구를 던지면서 타이밍을 뺏어야합니다. 반대로 외곽 변화구에 타자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면서 팔이 따라온다면 직구 타이밍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변화구 비중을 높이는 게 유리합니다.


Q : 그렇다면 이와 같은 볼 배합에 정통한 포수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KBO리그 원년부터 수많은 포수들을 보셨을 텐데요.

A : 아무래도 볼 배합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포수는 박경완(SK 배터리코치)이 아닌가 합니다. 박 코치 현역시절을 회상해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데이터에 특징이 없었다는 겁니다. 포수는 일반적으로 볼 배합에 관한 특정 데이터가 쌓이기 마련입니다. 어느 카운트엔 어느 볼을 많이 유도했는지 드러나게 되죠. 그런데 박 코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하나. 앞서 언급한 타자의 유형과 자세, 성향, 타석에서의 움직임 등을 모두 파악하면서 볼 배합을 했던 포수였습니다. 쌍방울과 SK에서 제자로도 데리고 있었지만, 박 코치 속은 저도 모르겠더군요. 적군은 물론 아군도 속인 셈이죠. 또 한 명은 진갑용(소프트뱅크 코치)입니다. 상대타자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만큼 머리가 뛰어난 친구였습니다. 둘 모두 소속팀의 수차례 우승을 괜히 이끈 것이 아닙니다.

선수 시절 박경완. 사진제공|SK 와이번스


정리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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