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를 만나다①] 오인성 “‘카3’는 내 인생작, 누구도 침범 못 해요”

입력 2017-07-20 17: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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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퀸’은 제 인생 캐릭터예요. 이거 꼭 써주세요. 하하.”

성우 오인성에게 월트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카’(Cars)는 의미가 있는,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며 연이어 ‘라따뚜이’의 주인공을 맡게 됐다. 그야말로 그에게 ‘꽃길’을 가게 해 준 작품이라고나 할까. 올해로 12년째, ‘카’시리즈에서 주인공 ‘맥퀸’을 맡은 그에게 소감을 묻자 단번에 답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웃음)”

이번 ‘카3’는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맥퀸’이 어느날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차세대 라이벌 ‘스톰’과의 대결에서 패하자 큰 충격에 빠지고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달려온 ‘맥퀸’은 좌절을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꿔 성숙해지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오인성은 이번 ‘카3’를 연기하며 남다른 감정으로 작품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맥퀸은 승리가 최고인 줄 알고 살아왔지만 주변을 돌아보진 않았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그 때 맥퀸은 젊었으니까. 하지만 살아가면서 그게 다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나. 맥퀸이 이번 편에서 그걸 알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카3: 새로운 도전’을 보면서 솔직히 좀 슬펐어요. 영화를 보면 맥퀸이 전복이 되는데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딱 맥퀸과 같은 입장인 것 같아요. 요즘 50대, 60대가 되면 하던 일을 관둬야 하는 시기가 오잖아요. 그런데 이게 제 의지와 상관없이 내몰리는 기분이랄까. 물론 젊은이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요즘 청년실업도 심각한 사회문제잖아요? 하지만 동시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정년퇴임을 해도 내가 살았던 만큼은 더 사는 시대가 오니까요. 새로운 도전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더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아무래도 싱크로율이다. 성우들은 녹음할 때 그림이 없는 상태에서 녹음을 시작한다. 감독의 지시에 맞춰 여러 감정 표현을 시도하면서 작품을 완성해나간다.

“아무래도 해외 애니메이션은 싱크로율을 맞추기가 어려워요. 일단 영어는 어순이 다르기도 하고 소리의 길이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요. 거기에 제 나름대로의 연기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미국과 한국은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감정표현도 조금은 달라요. 그런 것들이 조금 애매하죠. 하지만 감독님이나 번역가분들이 훌륭하셔서 덕분에 준비를 잘 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성우들은 더빙을 할 때 다른 배우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개별로 더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누구 하나가 대사를 틀리거나 감정 전달이 안 돼 NG가 났을 경우 다른 성우의 시간도 동시에 빼앗기 때문이다. 또한 소요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저희는 워낙 오랫동안 같이 해온 팀이라서 어떻게 연기했을지 유추를 하며 녹음을 해요. 때로는 감독님이 상대방이 녹음한 것을 들려주기도 해요. 그런데 다들 베테랑이시니까 서로가 어떻게 녹음을 했을지 대강 파악을 하세요.(웃음) 그렇게 조합을 하고 믹싱을 거쳐 한 애니메이션이 다시 탄생되는 거죠.”

이어 그는 과거 KBS 소속이었을 때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오인성은 “예전에는 여러 명이 더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화면 속 배우들하고 입 모양이 안 맞을 때가 있기도 했다. 앞에서 열연을 했는데 뒤에서 틀리면 이거 큰일 나는 거다. 요즘에는 컴퓨터로 잘라서 붙이기라도 하지만 그 때는 베타 테이프에 녹음을 할 때라 수정이 안 됐다”라며 “그래서 성우들은 본인 감정만 잘 조절되면 혼자서 하는 게 가장 좋다”라고 말했다.


오인성은 1990년에 성우로 데뷔를 했다. 배우를 꿈꾸던 그는 먹고 살 궁리를 하다 친구의 제안으로 성우 시험을 보게 됐고 운이 좋게 KBS에 입사를 하게 됐다. 당시에는 라디오 방송을 많이 했다고. 한 달 동안은 연수를 받고, 또 한 달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선배들의 녹음 때 참관만 한다. 이후에 단역 대사를 한 마디를 받는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차 나왔습니다.” 정도다.

“그렇게 짧은 대사를 하는데도 만날 혼나요.(웃음) 연출하시는 감독님들 중에는 연극계에서 기라성 같은 선배들도 계셨기 때문에 앞에서 녹음을 하면 벌벌 떨었죠. 대사는 벌써 머리 속에서 달아나요. 식은땀으로 목욕을 했죠.”

그렇게 경험을 쌓으면서 오인성은 점차 굵직한 조연을 맡게 됐다. ‘극장판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나옹’이가 대표적이고 ‘명탐정 코난’의 ‘괴도 키드’, 그리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 역 등 다양한 목소리로 관객들과 만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맥퀸’을 포함해 ‘골룸’이라고 말했다.

“골룸을 할 때 심혈을 정말 많이 기울였어요. 그랬던 이유가 보통 편성하는 방송사가 바뀌면 성우도 바뀌는데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달랐어요. 1편은 KBS에서 방영됐고 2,3편은 SBS에서 방영됐거든요. 모든 캐스팅이 다 바뀌었는데 저만 계속 ‘골룸’을 하게 됐어요. 이러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정말 ‘피와 뼈를 묻으리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녹음을 했죠. 그런데 최종 방송에는 제 목소리에 어떤 효과를 넣어 로봇 소리와 비슷하게 나오더라고요. 그게 좀 아쉬웠어요. 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요.”

이제 햇수로는 26년, 오인성은 성우라는 직업을 택한 것이 운명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성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친구가 연극반에 들어가 따라가게 됐고 졸업을 하니 내가 연기자의 길에 들어서 있었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

“성우는 제게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자를 꿈꿨으니 동기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하는 거 보면 부러울 만도 한데 아이러니하게 저는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화면에 나오지는 않지만 제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이 정말 좋아요. 진짜 천직이에요, 천직.”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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