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축구대표팀 조기소집, 이게 최선입니까?

입력 2017-08-0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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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다가오는 시점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대표팀 조기소집’이다. 대의명분 아래 그간 K리그의 원칙은 어김없이 무너졌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축구의 씁쓸한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스포츠동아DB

K리그 전 구단 반발 없이 일사천리 진행
꼬인 K리그 일정…팬들 배려는 관심밖
선발도 조기소집 대가로 이뤄질 가능성
월드컵도 좋지만 무기력한 K리그 아쉬움


한국이 2002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배경에는 K리그 구단들의 희생이 컸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가적인 대사’라는 명분으로 무차별적인 선수차출이 이뤄졌고, 이런 일방적인 강요에도 프로구단들은 찍소리 한번 못했다. 왜냐하면, 월드컵이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2002년 이후 프로구단들의 자세는 달라졌다.

‘대표팀이 살아야 프로가 산다’는 논리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았다. ‘프로가 살아야 대표팀도 산다’며 목소리를 냈다. 맞는 말이다. 프로구단이 선수들을 제대로 길러내야만 대표팀에서도 뽑을 선수가 많아서 좋고, 팬들의 관심도 끌 수 있어 흥행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당시 한국대표팀을 맡은 외국인 감독들은 여전히 프로구단을 호구로 여겼다. 대표팀 선수차출에 관한 한 히딩크식 사고가 그대로 이어졌던 것이다. 프로구단들의 달라진 자세와 맞물리면서 갈등의 씨앗은 그렇게 잉태되고 있었다.

히딩크 이후 대표팀을 맡은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2004년 4월 사임하면서 “(한국대표팀을 맡은) 14개월 동안 72시간밖에 훈련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은 대표선수 차출의 갈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본프레레 감독 또한 반쪽짜리 훈련을 하기 일쑤였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지휘봉을 잡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40일간의 동계훈련을 준비하면서 일부 구단들이 반발하자 “훈련에 참가하지 않는 선수는 독일월드컵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선수선발의 결정권을 쥔 감독들의 기싸움도 만만치 않았다.

스포츠동아DB


한국축구에서 차출문제로 가장 시끄러웠던 때는 2006년 말∼2007년 1월이었다. 당시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함께 관할했던 핌 베어벡 감독과 프로 구단들의 갈등의 골은 상당히 깊었다.

프로구단들은 FIFA가 정한 규정에 근거해 대표팀 소집규정을 제대로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을 했고, 협회가 대표팀 소집규정특별위원회라는 TF팀을 만들어 규정을 정비한 게 2006년 1월이다. 그런데 그해 말 한해 농사를 결정짓는 K리그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베어벡은 성남과 수원 선수들을 차출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이듬해 1월에는 올림픽대표팀 차출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당시 전체 프로구단들이 사상 처음으로 선수차출을 보이콧하면서 진통이 상당 기간 이어졌다. 그 논란 이후 프로구단을 바라보는 협회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고, 갈등은 수면 아래로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몇 차례 다듬어진 현재의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운영규정에 따르면, “선수소집 개시일은 월드컵 예선의 경우 FIFA가 정한 매치 캘린더에 기재된 대회 및 경기 일정상의 월요일까지로 한다”고 되어 있다. 쉽게 말해 경기가 열리는 해당 주의 월요일까지 소집을 허용하는 것이다. 대개 목요일 또는 금요일에 경기가 열리는 것을 감안하면 3∼4일 전 소집이 되는 셈이다. 더 이상 주먹구구식 로컬 룰에 의존하지 않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췄다고 보면 된다.

물론 남아공월드컵이나 브라질월드컵, 그리고 최근의 러시아월드컵 카타르전의 예에서도 보듯 원 포인트 조기소집은 더러 용인됐다.

최근 한국축구의 핫이슈가 다시 조기소집이다. 조기소집이라는 단어 때문에 10여년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 것이다. 일방통행에서 공존과 상생의 구호로 바뀐 그 과정들 말이다.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 스포츠동아DB


신태용호는 규정보다 1주일 앞서 조기소집을 한다고 하지만 해외파의 경우 소속 구단이 보내줄 리 만무하고, 결국 대상은 K리그 선수들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K리그 구단들의 양보가 있었다. 여기에는 2가지 명분이 들어 있는 듯 하다. 한국축구가 최대 위기에 빠졌다는 점과 K리거들을 대거 뽑을 수 있다는 점이 MSG처럼 깔려 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의 사활이 걸린 최종 예선 2경기(이란, 우즈베키스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본선탈락의 충격파도 엄청날 것이다. 그래서 한국축구는 더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쉽게, 아니 단 한 구단의 반발도 없이 그렇게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는 게 의아스럽다. 심지어 이제는 조기소집 때문에 K리그 일정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 것을 보면서 과연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다. 베트남에서 열린 올스타전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K리그이지만 그래도 한국축구의 근간은 K리그다. K리그 팬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렇게 턱하니 갖다 바치는 모양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표팀 감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K리거를 얼마나 뽑을지는 감독의 판단이지만 그렇게 중요한 경기를 앞둔 대표선발이 조기소집의 대가로 이뤄져서는 곤란하다. 이런 게 작용해서 대표팀을 선발한다면 흑역사의 한 줄로 기록될 게 분명하다. 대표팀이 조기소집을 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좋지만, 한 국가의 근간인 프로리그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무기력한 K리그를 보면서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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