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배구 대표선수들이 왜 코피를 쏟아야하나?

입력 2017-08-2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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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 카자흐스탄전에서 허리부상으로 쓰러진 양효진. 사진|SPOTV 캡쳐

# 8월 초, 남자 배구대표팀은 2018년 세계선수권 티켓이 걸린 아시아지역예선에서 패했다. 선수단은 사력을 다했지만, 이미 져놓고 붙은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회 장소는 이란 아르다빌. 해발 1500m의 고지대였다. 그러나 대한배구협회(이하 협회)는 이런 기초정보도 선수단에 제공하지 못하고,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현지에 도착해 갑자기 희박한 공기에 적응하려니 무리였다. 선수들은 코피를 쏟았다. 패배는 이변도, 불운도 아닌, 예정된 결과였다. 귀국 비행기 예약마저 착오가 발생해 일부 선수의 티켓을 새로 사는 사고까지 벌어졌다.


# 여자 배구대표팀은 월드그랑프리(동유럽)~아시아선수권(필리핀)~그랜드챔피언스컵(일본)~세계선수권 아시아지역예선(태국)의 대장정을 걷고 있다. 상식적으로 한정된 인력이 일정을 모두 감당할 순 없었다. 선택과 집중은 필연이었는데 협회와 여자대표팀 홍성진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이에 관해 어느 배구인은 “아시아선수권은 최정예 대표팀이 나가지 않는 편이 옳았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얼핏 그랜드챔피언스컵의 비중이 가장 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각 대륙별 강팀들이 참가하는 대회다. 여기에 한국을 넣은 이유는 김연경의 존재감 때문으로 봐야한다. 그러나 정작 이 대회에 한국은 김연경 등 정예멤버를 대거 뺐다.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을 목표로 하는 대표팀은 배구 강호들을 경험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월드그랑프리의 여독이 가시지 않았음에도 만만한(?) 아시아선수권에 ‘올인’했다가 선수들 몸만 망가뜨렸다.

26일 홍성진 감독이 이끄는 여자배구대표팀이 2017년 국제배구연맹(FIVB)월드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결선라운드 출전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체코 오스트라바 출국을 했다. 오한남 신임 대한배구협회장이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협회는 ‘내전 상황’이나 다름없다. 전임 회장을 탄핵시키고 들어온 집행부는 태생적으로 화합을 끌어낼 수 없었다. 벌써부터 오한남 회장을 옹립하는데 기여한 소위 구주류와 외부인사 영입 차원에서 협회로 들어온 속칭 신주류끼리의 불협화음이 들려온다. ‘신주류가 협회 사무국 직원들을 압박하기 위해서 여론몰이를 한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 속에서 협회가 어디까지 망가질지 알 수 없다. 권력투쟁에서 줄 세우기는 필연이다. 이러니 협회가 배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진정성조차 의심스럽다. “사재 2억원을 출연한 오 회장이 불쌍하다”는 개탄마저 나온다. 그들끼리의 밥그릇 싸움에 정신 팔린 나머지, 코피 쏟고 혹사 끝에 쓰러지는 대표선수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협회를 향한 분노의 본질이 이것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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