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버리’ 알리는 링만 빙빙…이노키는 누워서 15회전

입력 2017-08-25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서 있는 남자, 누워 있는 남자. 20세기 최고의 이종스포츠 맞대결은 1976년 복서 알리(왼쪽)와 프로레슬러 이노키가 벌인 한판 승부였다. 종합격투기 탄생의 계기가 된 경기였다. 소문난 잔치였지만 먹을 건 없었다. 스포츠동아DB

■ 세기의 대결 원조는 알리-이노키전

“동양선수중 날 이기면 100만달러 주겠다”
알리 도발로 성사됐지만 세기의 졸전으로


‘제1차 세기의 대결’은 1976년 6월 26일 일본 도쿄에서 벌어졌다.

최초로 이종스포츠 종목의 대결이 성사된 종합격투기 탄생의 기원이 되는 전설의 경기다. 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 무하마드 알리가 일본의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결했다. 이 대결을 보기 위해 대한민국의 각 학교는 학생들을 일찍 집에 보내줄 정도로 엄청난 화제였다.

기자도 그렇게 해서 집에서 TV 위성중계로 이 경기를 지켜봤다.

이 경기가 성사된 것은 알리의 입 때문이었다. ‘떠버리’란 별명의 알리가 우연히 만난 일본 아마추어 레슬링협회 회장 이치로 하타에게 “동양선수 가운데 누구라도 나를 이기면 100만 달러를 주겠다”고 농담처럼 말한 것이 계기였다. 이 말을 하타가 일본 매스컴에 전했다. 갑자기 일본 뉴스의 헤드라인을 연일 장식했다. 이때 등장한 선수가 안토니오 이노키였다. 자신이 새로 만든 프로레슬링 단체의 홍보를 위해 알리와 대결하겠다고 했다.

뜻하지 않게 대결이 성사됐지만 문제는 경기 룰이었다. 양쪽이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룰을 주장했다. 나흘간 회의를 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결국 클린치를 못하게 하고 크레플링 등 레슬링 기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내용만 합의하다보니 각자가 원하는 스타일로 싸우는 어정쩡한 경기방식이 됐다. 경기 내용은 모두가 잘 아는 대로였다. 알리는 서서 링을 돌았고 이노키는 누워서 15회전을 보냈다. 그 때 생긴 이노키의 별명이 창녀였다.

알리는 링에 누워만 있다면서 경기 내내 이노키를 이렇게 불렀다.

두 사람은 이 경기를 계기로 친해졌다. 1998년 이노키의 은퇴식 때 알리가 참석했다. 2016년 알리가 사망하자 누구보다 먼저 애도한 것도 이노키였다. 1만4000명의 관중이 가득 들어찬 도쿄 부도칸에서 벌어진 경기는 전 세계 34개국에 생중계됐지만 세기의 졸전으로 욕만 먹었다. 두 선수의 파이트머니는 당시 돈으로 18억엔, 현재 시세로 300억원이었다. 부도칸 2층 지정석 티켓가격이 1만엔, 가장 비싼 좌석은 30만엔(현 시세 500만원)이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