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대행만 두 번, 두산 한용덕 코치의 2인자 철학

입력 2017-08-3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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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한용덕 수석코치는 2012년 한화 코치 시절에 이어 올 시즌 생애 두 번째 감독대행을 맡았다. 갑작스런 감독의 부재에도 특유의 노련함과 포용력으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스포츠동아DB

두산 한용덕(52) 수석코치 겸 투수코치는 20일 수원 kt전부터 23일 인천 SK전까지 3경기에서 감독대행을 맡았다. 김태형 감독의 일시적 건강 이상으로 발생한 공백을 메운 것이다. 한 수석은 2012년 한화에서도 감독대행을 경험했다. 감독대행만 두 차례. 그러나 정작 한 수석은 2인자의 본분을 잃지 않았다. “내 얘기가 나오는 것이 감독님이나 팀에 도움이 안 될 수 있다”고 인터뷰를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오직 그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한화 감독대행 시절 한용덕.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코치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 다하는 자리”

한 수석은 20일 새벽 5시에 매니저의 연락을 받았다. “감독님이 입원할 것 같다”는 급보였다. 이날 수원엔 비 예보가 돼 있었다. ‘팀이 잘 나가는 상황에서 부담됐다.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하필 비가 멎었다.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었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신을 되새겼다.

그렇게 돌입한 두산 대행 첫 경기. 6회 쏟아진 비 탓에 1점차 강우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22일 SK전도 2-6까지 밀렸다. 연패 위기였다. “감독님이 없어서 분위기가 어두운데 침체가 올 것 같았다. 승부수를 뒀다.” 지고 있음에도 불펜 필승조를 올렸다. SK의 불펜진 구위를 고려하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1점차로 따라 붙은 8회, 무사에 주자가 나갔다. 희생번트를 댔다. 그럼에도 결국 점수가 안 났다. 9회 다시 주자가 나갔다. 이번엔 번트로 아웃카운트를 낭비하지 않고, 타자를 믿기로 했다. 박건우의 역전 2점 홈런이 나왔다. 투수 김강률의 안타까지 터졌다. 분위기가 돌아온 것이 느껴졌다. 여세를 몰아 23일 SK전까지 이겼다. 당시 한 수석은 선수단 미팅에서 물었다. “달라진 것이 있으면 얘기해 봐.”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야구는 똑같다.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감독님만 며칠 못 나오실 것이다. 너희들 야구만 하면 결과는 좋을 것이다.” 비록 3경기였지만 흐름을 끊지 않고, 김 감독을 맞을 수 있어서 한 수석에겐 뿌듯한 시간이었다.

20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kt 위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열렸다. 4회말 kt 공격 때 두산 한용덕 코치가 정종수 주심에게 비가 많이 내린다며 어필하고 있다. 수원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감독대행? 더 이상 맡고 싶지 않다”

정작 한 수석은 “대행은 이제 안 하고 싶다. 차라리 코치가 낫다”고 웃었다. 누군가를 대체하는 대행의 자리가 갖는 무거움을 그만큼 절감한 이도 없을 것이다. 2017시즌도 수석코치로 출발했는데 어느덧 투수코치 직함이 따라붙었다. 팀이 필요로 하면 코치는 맡아야 하는 숙명이다.

투수관리에 특화돼 있어도, 수석코치는 수석코치의 일이 있다. 한 수석은 “가교”라는 비유를 했다. 2인자 수석코치는 본질적으로 선수, 코치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자리다. 듣기 불편한 소리도 흡수해줘야 한다. 수석코치가 개입하려다간 팀에 혼선이 발생한다.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써 기능하는 보직인지라 스트레스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한 수석은 “성향상, 그런 것을 잘하는 편”이라고 웃었다.

반면 1인자인 감독을 향해서는 야당 노릇을 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윗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직언하는 일이다. 한 수석은 “감독님이 잘 들어주신다.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달라고 하신다. 다만 나도 (의견이 달라도) 감독님의 뜻이 굳으면 따른다”고 원칙을 말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처세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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