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Medical Story] ‘빠따’만큼이나 위험한 ‘오리걸음’

입력 2017-08-3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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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운동선수들 신체 접촉 없는 체벌도 위험
근육 파열되거나 관절 연골 손상 가능성
그나마 ‘손들기’나 ‘투명의자’가 더 안전


“마음 같아서는 바로 ‘빠따’라도 치고 싶은데.”

축구국가대표팀에 합류한 김남일 코치가 인터뷰에서 선수들을 향한 심정을 드러내며 했던 말이다. 이후 “세월도 흐르고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거 같다”고 물러섰지만 적어도 불과 10년∼20년 전에는‘빠따’로 대변되는 체벌이 너무나 당연히 자행되었음을 드러낸 말이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 정부주도의 교육개혁 일환으로 교내 체벌이 금지됐다. 이후 체벌이 교육의 수단이 아닌 폭력이라는 인식도 확대됐다.

하지만 얼마 전 휴대전화로 학생들의 머리를 때리고 ‘투명의자’자세로 서 있게 한 초등교사에 대한 판결에서, 전자에는 유죄가 후자에는 무죄가 선고된 걸 보면 모든 체벌이 지난 시절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체벌은 방법에 따라 직접체벌과 간접체벌로 구분된다. 직접체벌은 김남일 코치의 ‘빠따’처럼 도구나 신체를 직접적으로 접촉시켜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간접체벌이란 접촉 없이 명령으로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다. 소위 ‘투명의자’나 ‘오리걸음’으로 불리는 체벌 등이 이에 속한다. 최근 판결에 미루어 짐작하건데 직접체벌은 가학행위라고 인정되는 반면 여전히 간접체벌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듯하다.

체벌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또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겠지만, 정형외과 의사 입장에서 볼 때 간접체벌 역시 직접체벌만큼이나 무척 위험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근육통 때문에 병원에 좀 다녀본 사람이나, 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등장성운동과 등척성운동이란 용어를 한두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등장성운동은 근육의 길이가 짧아지거나 길어지면서 힘을 내는 동적인 운동을 말한다. 앉았다 일어서기, 팔굽혀 펴기, 오리걸음 등 움직이면서 받는 체벌들이 등장성운동이다. 등척성운동은 근육의 길이는 변하지 않으면서 힘을 내는 정적인 운동을 말한다. 손들기, 엎드려뻗쳐, 투명의자, 누워서 다리 들기 등 움직이지 않고 받는 체벌이 여기에 속한다.

등척성운동은 관절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근육을 수축하므로 수술 뒤 초기 재활운동에 활용된다. 힘이 어느 정도 돌아왔을 때는 등장성운동이 유용하다. 등척성운동이 더 안전하다는 말이다. 또 움직이는 체벌을 받게 되면 굽혀졌다 펴졌다하는 과정에서 관절 연골의 손상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근육이 수축 이완되는 과정에서 근육에 무리가 가서 근육 파열이 발생할 수 있다. 심할 경우, 횡문근의 근육세포가 괴사되거나 손상을 입어 혈액으로 유출돼 간이나 신장에 문제를 일으키는 횡문근 융해증도 유발한다.

물론 등척성운동도 횡문근 융해증이 생길 수 있지만 가능성은 많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그나마 덜 유해한 간접체벌은 등척성운동인 손들기, 엎드려뻗쳐, 투명의자, 누워서 다리 들기 등이다.

실제로 이들은 병원에서 추천하는 운동들과 닮았다.

엎드려뻗쳐는 요즘 유행하는 코어 운동 풀 플랭크 자세와 비슷하다. 풀 플랭크는 엎드려뻗쳐하는 자세에서 엉덩이를 내려 머리부터 다리까지 몸이 일직선이 유지되도록 해 코어 근육(등, 복부, 엉덩이, 골반근육)을 강화해주는 운동법이다. 투명의자는 허벅지와 허리를 단련시켜주는 기마자세나 운동법에 가깝다. 누워서 다리 들기는 누운 자세에서 한쪽 다리는 무릎을 굽혀 땅에 붙인 발바닥으로 지지 역할을 한 뒤 반대쪽 다리의 무릎은 편 상태로 허벅지에 힘이 느껴지도록 45도 정도 들게 해 무릎 주변의 근육을 강화시키는 대퇴 사두근 강화운동과 유사하다.

하지만 모든 운동이 그렇듯 등척성운동의 자세 역시 그 사람의 사정에 맞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만약 어깨와 손목에 문제가 있다면 엎드려뻗쳐자세가 안전할 리 없다. 무릎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투명의자 자세가 독약이 될 수 있다.

2002년 롯데의 이대호가 오리걸음 체벌을 받다가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고 그 시즌에 뛰지 못하게 된 참담한 사건이 있었다. 오리걸음은 등장성 운동으로 무척 조심해서 이루어져야하는 행위이다. 사람의 몸은 각자 다른 약한 부위를 가지고 있다. 운동은 그런 신체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확한 방법으로 해야 한다.

자세가 비슷하다고 해도,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체벌이 운동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이대호의 실력이 만개하게 된 시점은 2006년으로 체중감량을 위해 통도사에 들어가 운동과 식이요법에 매진한 뒤였다고 한다. 결국 오리걸음은 평생 느끼게 될 무릎통증 외에는 아무 효과를 남기지 않은 것 같다.

다시 김남일 코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인터뷰 이후, 직설적인 그의 발언에 사람들이 환호했다고 한다. 축구대표팀의 최근 실적을 보고 실망한 마음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혹시나 그 환호 속에 직접이든 간접이든 체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어 있을까 염려된다. 체벌은 운동이 아니다.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영구적 상처를 입힐 수 있는 학대행위일 뿐이다. 적어도 각종 고통에 신음하며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매일 접하는 정형외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김우 LG트윈스 필드닥터·날개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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