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히딩크 영입’ 청와대 청원, 후폭풍 알고는 있나

입력 2017-09-11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한 한국축구를 둘러싸고 때 아닌 논란이 일고 있다. 거스 히딩크(71·네덜란드)를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모셔오라는 일각의 주장 탓이다. 이들은 각종 축구 게시판을 통해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부진했다는 이유로 사령탑을 교체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허우적거리던 대표팀을 신태용(47)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마지막 2연전을 무사히 마쳐 목적을 달성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태극전사들의 노력과 수고를 깎아내리기 바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열정과 열망으로 충분히 포장할 수 있다. 문제는 최근 잇달아 청와대 홈페이지에 등장한 청원이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에 긍정의 의사를 표명한 것은 돈이 아닌, 정서적인 이유다. 현실이 어렵다면 국민모금을 해서라도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해야 한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여 붉은 티셔츠를 입고 ‘히딩크 감독 부임하라’고 외치자. (정부는) 국민들의 촛불민심을 저버리지 않길 바란다.” 이런 내용의 청원이 홈페이지에 올라 있다.

9월 6일부터 하나 둘씩 등장한 글들은 꽤 많아졌다. 일부는 많은 공감을 받은 ‘베스트 청원’이 됐다. 이런 글을 쓴 사람의 열정과 생각은 자유지만 생각해야 할 부분도 있다. 대표팀 감독 선임에 꼭 대통령까지 나서야 할까라는 생각이다. 축구가 국민감정을 가장 자극하는 국민 스포츠이긴 하지만 꼭 정치가 끼어들어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게다가 정부의 개입에서 비롯될 파장까지 생각하고 있을까. 국제축구연맹(FIFA)은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축구계 전반에 대한 외부 특히 정치권의 압력과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협회도, 대표팀도 포함된다.

우리와 경쟁한 이란도 이 때문에 한바탕 소란을 빚었다. 그리스에서 활약 중인 자국대표팀 주장 마수드 쇼자에이와 에흐산 하지사피가 이스라엘 팀과의 경기에 출전했다는 이유로 이란 정부 관료가 “대표팀에서 2명을 제명하겠다”고 해서 문제를 만들었다. FIFA는 즉각 진상조사에 나섰다. 이란축구협회에 공식 해명을 요구했다. 결국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대표팀 구성에서 절충안을 내세워 간신히 문제를 잠재웠다.

2015년 10월 쿠웨이트도 정부가 축구협회를 비롯한 스포츠단체에 과도하게 간섭해 FIFA로부터 자격정치 처분을 받았다.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에서 우리와 같은 조에 있었지만 끝내 0-3 몰수 패를 피하지 못했다.

만에 하나 스포츠를 모르는 우리 정부 인사가 “히딩크 감독의 영입을 고려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으면 그 즉시 대한축구협회는 FIFA의 조사 대상이 된다. 상황에 따라선 통산 10번째 월드컵 본선티켓도 사라진다.

누구도 이러한 상황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월드컵에 나서지 못해도 히딩크 감독이 올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월드컵 본선 초대장을 받은 국가이기에 히딩크 감독이 복귀설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이마저 본인의 입에서 나온 적이 없기에 진위여부는 좀더 살필 필요가 있다. 지금의 모든 사태가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것이라면 모두가 허망해진다. 한국축구를 너무 사랑해 정치권의 관심까지 끌어들이려 한 팬들도 이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다. 스포츠에 정치가 끼어들어서 문제가 되고 촛불로 이어진 것이 바로 얼마 전이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