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히딩크-축구협회 이제는 좀 더 솔직해지자

입력 2017-09-1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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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은 순간부터 불거진 거스 히딩크(왼쪽) 감독의 부임 논란이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게 전달된 카카오톡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커졌다. 신뢰를 잃어버린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 무섭다. 스포츠동아DB

2002한일월드컵이 끝날 무렵, 한국축구의 관심은 온통 거스 히딩크 감독의 재계약 여부였다. 월드컵 1승과 16강이 지상과제였던 한국이 꿈에도 상상 못했던 4강에 오르자 히딩크에게 한 번 더 지휘봉을 맡기려 했다.

전국은 이미 히딩크 광풍에 휩싸였다. 뭐를 해도 히딩크를 내세우면 가능한 시절이었다. 팬들도 당연히 히딩크를 강력하게 원했다.

그런데 히딩크를 가까이에서 접하던 사람들을 만나보면 우리의 바람이 이뤄질 가능성이 극히 낮았다. 이미 4강을 이룬 히딩크 입장에서 한 번 더 하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뉘앙스였다.

2002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결국 히딩크는 자신의 고국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갔다.

히딩크는 “한국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하고 싶다”며 떠났다. 아울러 “2004년 올림픽과 2006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대표팀이 재정비될 것이다. 제안을 받는다면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도 했다.

히딩크의 가치를 잘 아는 축구협회는 어쨌든 끈을 놓고 싶지 않았고, 그 때 나온 아이디어가 기술고문이었다. 그 해 9월 히딩크와 2년간 기술고문 계약을 체결했다. 아인트호벤과의 계약이 끝나는 2004년 6월 한국대표팀 사령탑으로 영입할 수 있는 우선 협상권을 가지는 것도 포함됐다. 기술고문의 역할은 대표팀 운영 조언, 연간 3~4회 대표팀 경기 참관, 코치 강습회 주재 등이다. 히딩크는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축구가 발전하는 데 조언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고문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그 역할이 크지는 않다. 그래서 이름은 그럴싸해도 실효성에는 의문이 따른다. 아마도 축구협회는 2006년 독일월드컵 지휘봉을 히딩크에게 맡기는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리고 고문자리를 맡겼을지 모르나, 모든 건 ‘희망고문’으로 끝이 났다.

15년이 흐른 2017년 9월 14일, 히딩크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급작스럽게 이뤄진 자리였다. 내용은 간단하다. “한국축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또 축구협회에서 원하면 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한국축구를 위해 조언을 하겠다는 내용은 지난 15년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전혀 특별할 게 없다. 히딩크와 한국축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특수 관계이기에 언제든 조언이 가능하다.

눈에 띄는 건 현시점에 대표팀 감독은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기자회견을 왜 했는지가 의아스럽다. 한국축구를 위해 조언해주겠다는 뻔한 내용만으로 자리를 마련했다면 아이러니다. 감독 맡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강조할 요량이었다면 더욱 더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술고문을 맡겠다면 최소한 예전의 기술적인 조언이 무엇이었고, 어떤 효과가 있었으며, 아울러 지금 한국축구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언급했어야했다. 그랬다면 기자회견의 취지와도 맞았을 것이다.

기자회견 이후 공개된 노제호 거스히딩크재단 사무총장의 카톡 내용의 진의는 꼭 확인해야한다. 한국인 감독이 2경기 임시감독을 맡아 본선에 오르면 히딩크가 맡을 의향이 있다는, 그리고 히딩크가 원하면 언제든지 한국감독은 가능하다는 뉘앙스의 오만 가득한 내용이 설마 ‘한국축구의 영웅’이 그랬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축구인들의 자존심을 짓밟았다는 점에서 히딩크의 입을 통해 확인할 필요는 있다.

히딩크 측근이 6월 19일 김호곤 부회장에게 보낸 카카오톡 전문. 사진제공 | 대한축구협회


축구협회도 할 말은 없다, 김호곤 부회장이 기술위원장이 되기 전인 6월 19일 노제호 총장한테 히딩크의 의향이 든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면, 히딩크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어떤 식으로든 조직내부에서 공유했어야 했다. 그리고 협회 차원에서 직접 의사를 확인할 수도 있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논란이 될만한 사항이 더 있다면 모두 털고 가야한다. 그래야 무너진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다.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은 그만두자. 히딩크도 한국축구의 자산이다. 이왕 히딩크가 적극적인 조언을 다시 한번 언급한 마당이라면 축구협회는 감정적인 대처보다는 그를 어떻게 활용할 지를 고민해야한다. 자문 가능한 내용들을 점검하는 게 우선이다.

특히 자문 내용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히딩크 만큼 러시아를 잘 아는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브라질월드컵 때 곤란을 겪었던 훈련 캠프지 선정에 조언을 구하고, 대표팀의 약점인 국가대표팀의 경험을 커버해줄 수 있는 베테랑 코치 영입이나 전력분석관, 체력담당관 등에 대한 조언도 가능하다. 히딩크 정도의 인맥이라면 우리 입맛에 맞는 코치를 구할 수도 있다.

12월 1일 조편성 이후 상대팀 전력분석에도 히딩크의 능력은 십분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히딩크 이외에도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등 한국축구와 인연이 있는 네트워크를 꼼꼼히 점검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마침 다음달 7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국과 러시아의 평가전에 히딩크가 온다고 한다. 러시아월드컵 준비의 첫 걸음으로 삼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자.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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