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베이스볼] ‘현역 최고령 투수’ 한화 박정진이 말하는 생존비결

입력 2017-09-2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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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박정진은 1999년 한화 1차지명으로 프로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올해로 18년째 ‘이글스맨’인 그는 KBO리그 현역 최고령 투수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후반기 맹활약을 펼치며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한화 박정진(41)은 현역 최고령 투수다. 기존의 최고령 투수 최영필(43·전 KIA)이 6월 은퇴를 선언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이틀을 물려받았다. 박정진은 1999년 한화의 1차지명을 받아 프로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기대만큼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때는 방출 위기에 몰리기도 했을 정도로 입지가 좁았다. 그러나 2010시즌부터 극적인 반전을 이뤄내며 한화 불펜의 든든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고, 지금도 변함없이 필승계투요원으로 활약 중이다. 특히 2010시즌 이후 리그에서 가장 많은 480경기에 등판한 것은 박정진의 강철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라 의미가 크다.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의 접견실에서 박정진과 마주앉아 그의 파란만장한 야구인생에 귀를 기울였다.

한화 박정진. 스포츠동아DB



● 현역 최고령 투수의 책임감

-시즌 중반 최영필의 은퇴로 갑작스레 현역 최고령 투수가 됐다.


“시즌 초에는 영필이 형이 있었는데(웃음). 팀에선 야수를 포함해 내가 최고참이다. 그에 따른 책임감이 크고, 그 이면에는 외로움도 많이 느낀다. 혼자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 솔선수범하고 모범이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언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내가 팀을 끌고 간다는 게 쉽지 않지만, 팀이 연패에 빠지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구단은 물론 코칭스태프가 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고참이 되고 나서 ‘책임감’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투수조에선 (심)수창(36)이와 서로 도우려고 한다. 타격에는 사이클이 있으니 투수가 중심을 잡아줘야 팀이 경기를 풀어가기 쉽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져야 플레이가 이뤄지지 않나.”


-6월부터 완벽하게 살아났다(32경기 3승 1세이브 6홀드방어율 1.45). 지치지 않는 체력의 비결은 무엇인가.

“선배들의 다양한 면을 봤다. 사생활은 물론 생활 패턴까지. 정민철, 송진우, 문동환 등 쟁쟁한 선배님들을 많이 보고 배웠다. 나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기계처럼 생활했던 것 같다. 시즌 때는 패턴이 쳇바퀴 돌 듯 똑같다. 그것도 루틴이다. ‘내일을 더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몸관리를 했다. 컨디션이 좋을 때도 어떻게 유지할지 연구했다. 올해는 2군에 다녀왔던 게 좋은 쪽으로 작용했다. 처음 2군 내려갔을 때는 ‘이렇게 끝나는 건가’라는 절망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내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렸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겨야 한다’는 압박을 떨치니 마음이 편해졌고, 충분히 재정비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이나마 내 것을 찾은 것 같다.”


-박정진의 야구인생은 2010년부터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부터 나를 괴롭히던 통증이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내 공을 던질 수 있었고, 마음대로 됐다. 사실 프로 입단 후에 정말 많이 아팠다. 조금만 던져도 어깨와 팔꿈치 부상에 시달렸다. 내 컨디션을 찾을 수가 없었다. 2010년 4월 말부터 필승계투조로 들어가게 됐는데, 멋모르고 던진 게 아니다. ‘아프지 않으니까 이렇게 던질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과거에는 ‘공 한 번만 던져보자’는 생각뿐이었다. 나도 내 야구인생은 2010년부터라고 생각한다. 그 때부터 쌓아온 커리어가 있다. 과거에는 부상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재활군을 전전하다가 1군에 올라가면 또 아팠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야 아프지 않을까’에 대해 매 시즌 연구했다. 늘 부상이 없는 시즌을 강조했다. 통증이 사라지고 야구도 잘 되니 기분이 좋더라.”

2010년 당시 박정진(왼쪽). 스포츠동아DB



● 특이한 투구폼? 나만의 것!

-특이한 투구폼에 대한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중학교 때 야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는 공 던지기 선수였다. 투포환 던지듯 연식구를 던졌는데, 그때는 하늘을 보고 던져야 했다. 중학교 때 야구를 하고 싶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청주중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야구공도 투포환을 던지듯 던졌다. ‘라디오 팔스윙’이라고, 팔을 옆으로 뻗어서 투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때는 한 번 던지면 어깨가 많이 아팠다. 아마 시절에는 팔꿈치가 아팠는데, 대학 시절에는 어깨가 계속 아프더라. 메이저리그 등 여러 관련 서적을 찾아보니 ‘라디오 팔스윙’은 어깨를 다칠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 프로 입단 후에도 계속 통증을 느꼈고, 팔스윙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가.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약 15년 전 2군 생활을 할 때다. 사직구장에서 열린 2군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투구 도중 어깨가 좋지 않아서 무심코 팔스윙을 바꿨다. 팔을 떨어뜨렸다가 올리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어깨가 안 아프더라. 그때부터 지금의 폼으로 연습을 많이 했다. 물론 지금의 투구폼이 그때와 똑같진 않다. 몸에 익숙해지도록 변화를 주고 힘을 쓸 수 있게 하다 보니 지금의 투구폼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의 투구폼을 두고 부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맞다. 투구폼이 와일드하다. 여러 투수코치님들로부터 ‘지금의 폼은 안 된다’, ‘그렇게 던지니까 아픈 것이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솔직히 투구폼을 바꿔보려고 시도하기도 했는데, 또 아프더라. 지금은 어깨를 올리고 던지는데, 내리고 던질 때는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결국 기존의 폼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


-투구폼을 완벽하게 정착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2003년으로 기억한다. 실전에서 구속도 잘 나왔고, 결과도 좋았다. 그때부터 내 투구폼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연투도 하고, 많은 이닝을 소화하다 보니 별 말이 없더라. ‘정말 힘들게 던진다’, ‘체력소모가 엄청나게 클 것 같다’고 하는데, 그 얘기를 들어도 개의치 않았다. 내게는 가장 잘 맞는 폼이었으니까. 물론 잘 던지고, 예쁜 폼을 가진 투수를 보면 부럽지만, 내게는 지금의 투구폼이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나만의 것이 됐다.”

한화 박정진.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한화는 내 인생이자 집 같은 존재

-시즌을 거듭하면서 체력관리법이 달라지기도 하나.


“프로 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이다. 시즌이 끝나면, 한달 반에서 두 달간 휴식기가 있는데, 그때 몸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제는 스프링캠프를 2월 1일에 시작하니 비시즌이 더 길다. 마흔살이 넘어가면서 운동을 많이 하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더라. 그래서 컨디션을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비시즌 때 아예 쉬어보기도 했고, 꾸준히 연결해서 운동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경험이 쌓였다. 물론 젊었을 때와는 다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쉬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투수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젊은 투수를 보면서 ‘정말 부럽다’고 느끼는 한 가지가 바로 밸런스다. (류)현진(LA 다저스)이를 예로 들면, 어떻게 훈련하든 생활패턴이 어떻든 공을 잡으면 최적의 밸런스를 유지한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습득한 지식을 머리에 저장한다. 펜을 잡으면 바로바로 저장이 되는데, 운동선수들은 몸으로 익혀야 한다. ‘몸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 시즌 초에 정말 밸런스가 좋으면 어느 정도 유지된다. 문제는 비시즌에 그 밸런스가 흐트러질 수 있다. 좋은 투수들을 보면서 밸런스와 유연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다. 단연 최고는 밸런스다. 현진이와 함께 뛰면서 밸런스는 정말 부러웠고, 또 놀라웠다. ‘저 친구(류현진)는 자기만의 밸런스를 정확히 입력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부러웠다.”


-박정진에게 한화란.

“한화는 내 인생이고, 집 같은 존재다. 내가 처음 입단해 지금까지 야구를 했다. 정말 고마운 곳이다. 내가 이 팀에서 떠날 뻔했던 적도 있지만, 나를 기다려준 데 따른 고마움이 정말 크다. 내가 워낙 많이 아팠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참고 기다려줬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뛸 수 있었다. 보답 아닌 보답을 하면서 내 몫을 조금이나마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한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감사’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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