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한국축구 유럽원정 평가전에서 생긴 일

입력 2017-10-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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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우리는 추석(10월 4일)을 전후로 긴 연휴를 즐기고 있지만, 태극마크를 단 축구국가대표선수들은 유럽원정 평가전을 치른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10월 7일 러시아, 10월 10일 모로코와 평가전을 갖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유럽으로 건너가 경기를 한다는 건 큰 부담이다.

비용문제나 시차, 시설, 음식 등 불리한 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한수 위의 평가전 상대를 구할 수 있다는 점과 원정이라는 큰 부담감을 안고 경기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 유럽에서 뛰는 우리 선수들을 대거 불러 편하게 테스트해볼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에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그동안 한국축구는 숱하게 유럽원정을 다녀왔는데, 시대별로 눈에 띄는 특징이 엿보인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유럽으로 원정 가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도 많이 들고, 특히 현지 대표팀과의 공식 평가전 일정을 잡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주로 현지 클럽 팀과 경기를 가졌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현지 대표팀과 경기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최고 레벨의 팀은 섭외가 쉽지 않았다. 주로 유럽 중·하위권 팀들을 상대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유럽 강팀들과 평가전을 갖는 횟수가 늘어났다. 이는 한국축구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그렇지만 독일,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등 세계적 강호들과 그 나라에서 직접 원정경기를 갖지 못한 건 아쉬운 점이다.

역대 유럽원정 전적은 상대가 대표팀으로 한정할 경우 12승9무25패, 클럽팀을 포함할 경우 15승11무26패다. 한국축구가 유럽원정에서 생긴 일을 특징별로 묶어서 살펴본다.

중앙정보부에서 만든 양지축구단.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무려 105일간의 유럽 원정

한국축구가 최초로 유럽에서 경기를 한 건 1948년 런던올림픽이다. 당시 2경기(16강전 멕시코 5-3 승, 8강전 스웨덴 0-12패)를 치렀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도 2경기를 했다(헝가리 0-9 패, 터키 0-7 패). 1961년 칠레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를 위해 유고를 방문한 것이 세 번째 유럽원정이다.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국가와 원정경기를 치렀는데, 결과는 1-5로 졌다. 귀국길에 이스탄불에서 터키대표팀과 친선경기(0-1 패)를 치른 것이 유럽에서 처음 가진 평가전이다.

1960년대 당시 전설로 남아 있는 원정대가 있다. 바로 중앙정보부에서 만든 양지팀이다. 사실상 국가대표팀 양지팀은 1970멕시코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1969년 5월부터 8월까지 그리스, 서독,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을 방문하며 무려 105일간의 유럽원정을 다녀왔다. 이는 한국축구 사상 최장기간 해외원정 기록이다. 선수들끼리 너무 오랫동안 같이 있는 바람에 나중에는 지겨워서 서로 얼굴 쳐다보기도 싫었다는 후문이다. 이회택, 김정남 등에게는 현지 클럽 팀의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2012년 스페인과의 평가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한국이 행운을 전해준 스페인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평가전을 치르기에 유럽은 안성맞춤이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을 앞둔 2월, 한국대표팀은 서독 전지훈련을 통해 현지 클럽들과 연습경기를 가졌다.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차범근도 대표팀에 합류해 동료들과 호흡을 맞췄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앞두고는 몰타 전훈을 가졌고,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에 가기 전에는 슬로바키아와 마케도니아, 유고를 방문해 전력을 점검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는 노르웨이와 스코틀랜드를 방문해 각각 노르웨이와 가나와 친선전을 치렀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1월에는 스페인 말라가에서 핀란드, 라트비아대표팀과 경기를 했다.

재미있는 건 스페인과의 평가전이다.

2010년 본선이 열린 남아공으로 건너가기 전 오스트리아에서 스페인대표팀과 평가전을 가졌는데, 스페인은 남아공월드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물론 우리도 원정월드컵 사상 첫 16강이라는 업적을 남겨 서로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평가전이었다. 2012년 유럽선수권(유로 2012)을 앞두고 한국은 또 다시 스페인과 스위스 베른에서 평가전(1-4 패)을 가졌다. 이번에도 스페인은 유로 2012에서도 우승했다. 한국이 스페인에 기운을 불어넣은 셈이다.

앙헬 마리아 빌라르 스페인축구협회장의 며느리가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평가전 성사가 쉬웠다는 소문도 들렸다.

지난 2013년 크로아티아에 0-4로 완패한 축구대표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참사의 역사

거스 히딩크 감독의 별명이 ‘오대영’이 된 사연도 유럽에서 비롯됐다. 2001년 8월 히딩크는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체코 원정을 갔다. 축구 강국과 붙어야 실력이 는다는 히딩크의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0-5로 참패를 당했다. 엄청난 역풍이 불었다. 경질요구도 거셌다. 그의 별명은 ‘오대영’이 됐다. 하지만 히딩크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한국축구를 단련시켰고, 결국엔 2002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썼다.

2013년 2월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크로아티아대표팀과의 평가전도 무기력했다. 최강희 감독의 한국대표팀은 0-4로 크게 패하며 실망감을 안겼다.

2016년 6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스페인과 치른 평가전에서도 슈틸리케 감독의 한국은 1-6으로 크게 패하며 질타를 받았다. 이전까지 잘 나갔던 슈틸리케도 당시 평가전에서 무기력한 경기를 보이며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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