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 영화 ‘카모메식당’ 그녀의 주먹밥으로 깨달았지,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걸

입력 2017-10-13 06:57:00

북유럽 핀란드 헬싱키에 모여든 사치에·마사코·미도리(맨 위쪽 사진 위쪽부터). 이들이 만드는 주먹밥(가운데 사진)과 시나몬롤(맨 아래쪽 사진)은 소박한 일상의 따스함과 그 위로의 달콤함이다. 핀란드 촬영이 남긴 여운 덕분일까. 사치에 역의 고바야시 사토미와 미도리 역의 카타기리 하이리는 각각 ‘사소한 행운’과 ‘나의 핀란드 여행’이란 책도 내놓았다. 스포츠동아DB

■ 영화 ‘카모메식당’

행복한 삶 찾아 무작정 떠난 핀란드
낯선 땅에서 만난 카모메식당

시나몬롤과 소박한 주먹밥
그 속에 담긴 소중한 일상의 행복


단순히 이야기의 결말만은 아닐 터이다.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포함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들여다보는 이들이 스스로 그 결론을 맺어주길 바라는 ‘열린 결말’로서 갈무리하기도 한다. 한 편의 영화가 관객에게 안겨주는 진한 여운이 발원하는 또 하나의 지점, 마지막 장면, 바로 ‘라스트 씬’(Last Scene)이다. 그래서 ‘라스트 씬’은 어쩌면 한 편의 영화가 드러내려는 모든 것이 담긴, 단 하나의 장면일지 모른다. 때로는 ‘에필로그’로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도 많아서 ‘라스트 씬’의 여운은 더욱 깊고 커지기도 한다. 표기법상 맞는 표현인 ‘라스트 신’이 아닌 ‘라스트 씬’이라 쓰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육계나무의 껍질을 말려 만든다는 시나몬(가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전해져 내려오는 향신료 가운데 하나다. 계피와는 또 다른 향취를 지닌 시나몬은 동남아가 주 원산지. 오랜 옛날 아랍 상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온 시나몬(을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은 아시아와 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유럽인들의 탐욕을 불러왔다. 요리의 풍미를 더해주는 향신료를 독점하기 위해 그들은 끝없는 싸움을 벌였다.

그 기원이야 어찌 됐든, 시나몬은 여전히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중요한 재료다. 이를 주 재료로 삼는 시나몬롤 또한 북유럽 사람들이 사랑하는 먹거리다. 시나몬 가루를 달걀과 설탕, 소금 등으로 버무린 반죽에 뿌리고 이를 구워내 적당히 부풀려 소라 모양으로 맛깔스럽게 내어지는 시나몬롤은 그 특유의 청량한 듯 향긋함과 달콤함으로 오랜 세월 북유럽 특히 핀란드 사람들을 사로잡아왔다. 좀체 지지 않는 태양이 빚어내는 백야처럼 차갑고 스산한 기온이 길게 이어지는 기후의 특성 때문일까.

하지만 수많은 이방의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핀란드의 이미지는 그런 차가움과 스산함과는 거리가 꽤 있다. 실제로 핀란드는 어느 새 한국인을 비롯한 많은 이방인들에게 새로운 ‘이상향’처럼 보인다. 핀란드를 가리키는 다양한 지표들은 그 수치적 상징이다.

사회적 행복도 5위(유엔지속발전해법네트워크, 세계행복보고서 2017·한국 56위), 국가경쟁력 평가 10위(세계경제포럼·한국 26위), 국가 가족지출 6위(한국보건사회연구원, OECD 국가 합계출산율 트렌드 분석을 통한 정책적 함의 도출 보고서·육아수당, 육아휴직급여, 가사서비스 등 출산양육 복지제도의 한 지표·한국 최하위), 사회발전지수 2위(미국 사회발전조사기구·한국은 26위), 부패인식지수 3위(국제투명성기구·한국 29위), 직장인 행복지수 7위(글로벌 리서치 기업인 스웨덴 유니버섬의 전 세계 57개국 설문·한국 49위)….

20년 동안 병간을 해드린 어머니와 아버지가 잇따라 세상을 떠난 뒤 “족쇄가 풀린 느낌”을 안고 핀란드로 날아온 중년여성 마사코에게도 핀란드는 그렇게 보였나보다. 아버지 생전 기저귀를 갈아드리다 TV 속 “기타 없이 흉내로만 연주하는” 에어 기타 대회의 풍경을 보고는 핀란드에 반해버렸다. “부인 업고 달리기, 핸드폰 멀리 던지기, 사우나에서 오래 참기” 같은 “거에 열 올리는 사람들이 어딘지 여유 있어 보이고, 쓸 데 없는 일에 얽매이지도 않고 느긋하게 사는 인생”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핀란드를 찾았다. 물론 “특별한 목적”도 없다.

“어디론가 꼭 떠나고” 싶어 ”그냥 세계지도를 펴놓고 눈감고 찍었더니 핀란드”여서 날아왔다는 미도리도 “조용하지만 친절하고 언제나 여유로운 사람들”로 핀란드인들을 가리킨다.

두 여성이 주인의 동의 아래 기약 없이 머물고 있는 곳, 핀란드 헬싱키의 한적한 거리에 자리 잡은 카모메식당이다. 이들보다 먼저 일본에서 날아와 핀란드 항구의 통통한 갈매기를 보고 식당 이름을 따온 사치에가 그 주인이다. 그는 “일식당이라고 꼭 일본에서 할 필요는 없다”며 “소박해도 맛있는 음식을 여기선 왠지 알아줄 것” 같아서, “여기라면 나도 살아갈 수 있겠다” 싶어서 핀란드의 일상을 택했다.

하지만 한 달 전 문을 연 식당의 손님이라곤 일본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지닌 현지 청년 토미 뿐이다. 중년의 여성들은 이 낯선 식당 안의 동양여성들을 동물원 우리 속 동물을 들여다보듯 한다.

그래도 사치에는 카모메식당을 거창하게 포장해 알릴 생각은 없다. 누구나 “근처를 지나다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동네식당”이라 믿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를 써서 잔뜩 만들고 좋은 사람만 초대해 술도 한 잔 하며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것”을 “세상 끝나는 날”의 작은 소망으로 품고 있는 그다. 그래서 첫 손님인 토미에게 늘 커피를 무료로 선사하고, 중년의 여성들에게는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전할 뿐이다.

그가 내는 주 메뉴는 오니기리(주먹밥)이다. 사치에는 이를 “고향의 맛”이라고 믿는다. 일찍 엄마를 여읜 어린 그에게 아버지는 “일년에 딱 두 번, 운동회와 소풍 때 주먹밥을 만들어 주었다”. “주먹밥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게 훨씬 맛있다”면서. 연어와 매실, 말린 생선을 넣은 “크고 볼품없었지만 너무 맛있었다”는 주먹밥을 사치에는 이웃과 나누고 싶었다.

사치에가 내어오는 주먹밥은, 이유도 없이 자신을 떠나버린 남편 때문에 아파하는 또 다른 현지 여성을 바라보며 “핀란드 사람들은 다 그런 줄 알았”지만 “조용하지만 친절하고 언제나 여유로운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미도리의 말처럼, 실상 땅 위 모든 이들의 삶이 대체로 그렇고 그런 일상인 것임을, 결코 별다르지 않은 것임을 말해준다. 핀란드 기자 출신 저널리스트로 미국인과 결혼해 터전을 뉴욕으로 옮긴 아누 파르타넨도 핀란드를 비롯한 노르딕국가들과 미국사회의 사회적 시스템을 비교해 미국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적 시각과 북유럽의 높은 ‘삶의 질’을 제시한 저서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북유럽 사회가 행복한 개인을 키우는 방법’에서 “핀란드의 내 친구들은 낮은 자존감 면에서는 전설적”이라며 “어둡고 차디찬 겨울이 오래 지속되는 탓에 핀란드 국민 다수는 연중 상당기간 침울하게 지낸다”고 털어 놓았다.

이처럼 “저마다 다 사연이 있”고(마사코), “어디에 가든 슬픈 사람도 있고 외로운 사람도 있는 법 아니겠”(사치에)느냐는 말은 그래서 평범한 듯, 그렇지 않은 듯 진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미도리와 마사코, 현지 여성이 사치에와 함께 나누는 소박한 주먹밥의 식탁이 안겨주는 맛도 어느새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드는 동질감의 것이기도 하다.

사치에와 미도리가 반죽하고 구워내는 맛깔스런 시나몬롤과 “코피 루왁”이라는 주문 아닌 주문을 곁들인 따뜻한 한 잔의 커피도 그렇다. 시나몬롤의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는 결국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카모메식당은 헬싱키의 소박하지만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동네식당”으로서 그 역할을 찾아간다.

여전히 몽환적 색채로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 혹은 느리고 작은 슬로 라이프에 대한 선망 혹은 알싸하고 기분 좋은 내음을 내뿜는 자작나무숲 같은 것으로만 이방의 핀란드를 떠올리는 이들에게도 카모메식당의 소박한 주먹밥과 시나몬롤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을 터이다. 사치에와 미도리와 마사코가 각기 별 것 아닌 인사법을 확인하며 미소 짓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소중한 일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영화 ‘카모메식당’

‘요시노 이발관’ ‘안경’ 등으로 낯익은 일본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2007년작. 소소한 일상, 하지만 진한 감성의 스토리로 핀란드 헬싱키의 작은 식당 카모메식당에 모여든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치에 역의 고바야시 사토미를 비롯해 미도리 역의 카타기리 하이리, 마사코 역의 모타이 마사코 등 인물들이 생생한 캐릭터로서 정감을 더한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에 따르면 ‘카모메식당’은 실제 헬싱키에서 ‘카흐빌라 수오미’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윤여수 전문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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