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들의 깜짝 반란, 가을야구가 주는 또다른 묘미

입력 2017-10-13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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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3차전 롯데 자이언츠와 NC 다이노스 경기가 열렸다. 3회말 2사 2루 NC 노진혁이 우중월 투런 홈런을 날리고 그라운드를 돌아 홈인해 하이파이브 하고 있다. 마산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고기를 먹어본 사람은 없다. 프로야구의 가장 큰 잔치라 할 수 있는 포스트시즌 무대. 이 잔치판에서 그동안 고기를 먹어보지 못했던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반란을 일으키면서 가을야구의 판도에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이번 가을잔치 최고 깜짝 스타는 준플레이오프(준PO) 3차전 데일리 MVP에 선정된 NC 노진혁(27)을 꼽을 수 있다. 당초 선발 3루수로 나선 박석민이 수비에서 실책과 실수를 연이어 범하자 김경문 감독은 3회초 수비 때 노진혁을 투입했다. 이때만 해도 경기 초반부터 공수의 기둥인 박석민의 교체가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는 이는 드물었다. 그런데 노진혁은 자신의 장기인 수비는 물론 약점으로 꼽히던 방망이로 큰일을 냈다.

3-2로 앞선 3회말 2사 2루서 롯데 선발투수 송승준을 상대로 2점홈런을 날리며 팀에 승기를 불어넣었다. 이때만 해도 ‘우연’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퍼포먼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5회 김원중, 6회 장시환을 상대로 우전안타를 쳐내더니 8회엔 김유영에게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모두 다른 투수를 상대로 홈런 2방을 포함해 4타수 4안타 3타점 4득점의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팀의 13-6 대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2012년 NC 특별지명을 받아 NC 유니폼을 입은 그는 2013년 1군 무대 데뷔 후 통산홈런이 단 4개에 불과했다. 통산타율 또한 0.209에 그쳤다. 그러나 군복무(상무)를 마친 뒤 지난 9월말에 NC에 합류한 그는 달라져 있었다. 이날 기록한 1경기 4안타, 2홈런, 3타점 모두 프로 입단 후 그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박석민 교체 후 노진혁 투입은 결과적으로 김경문 감독의 ‘신의 한 수’로 귀결됐다.

NC 지석훈. 사진제공|NC 다이노스


노진혁뿐만 아니다. 준PO 1차전에서는 NC 지석훈(33)이 ‘언성 히어로’가 됐다. 7회말 대주자 이재율 대신 3루수로 교체투입된 그는 2-2 맞선 연장 11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박시영을 상대로 우중간 2루타를 치고 나간 뒤 권희동 타석 때 절묘한 슬라이딩 쇼를 펼쳤다. 박시영의 폭투가 포수 강민호 뒤로 많이 흐르지 않았지만, 쏜살처럼 3루로 내달린 그는 3루수 황진수의 태그를 피하기 위해 슬라이딩 과정에서 왼손을 재빠르게 접는 환상적인 기술로 살았다.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결정적 장면. 그리고는 권희동의 적시타 때 결승득점을 올렸다.

준PO 1차전에서 패하긴 했지만 롯데 박헌도도 깜짝 홈런으로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1-2로 끌려가던 8회말 대타로 나서 동점 솔로홈런을 날려 사직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우리는 포스트시즌에서 백업들의 반란을 숱하게 봐 왔다. 준PO만 해도 가까이로는 2010년 두산 용덕한(현 NC 코치), 2014년 LG 최경철(현 삼성)이 MVP에 오르기도 했다. 아무래도 포스트시즌에는 전력분석과 견제가 상대 중심타선에 더욱 집중될 수밖에 없는데, 그 틈새를 파고들어 종종 예상하지 못한 ‘미친 선수’가 나타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은 그래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예상치 못한 깜짝 스타의 탄생, 가을야구가 주는 또 다른 묘미다.

이재국 전문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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