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최우리의 고백 “조제가 어려워 연기AS를 받으러 갔다”

입력 2017-10-13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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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ㅣ 벨라뮤즈

최우리란 배우를 좋아한다. 어떤 작품을 인상 깊게 보았는지, 어떤 배역에 끌렸는지, 어떤 노래·연기에 빠졌는지 물어보면 곤란할 것 같다. 사실 딱히 답할 말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최우리의 작품을 제법 본 것은 사실이고, 그때마다 “참 잘한다”라고 생각했던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최우리란 배우를 왜 좋아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역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최우리가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즐거웠다. 다른 배우가 해도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조제 역이라면 역시 최우리란 배우가 참 잘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이 영화를 정말로 많이 좋아했다. 2004년 개봉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일본영화.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인생영화’였을 것이고, 그 ‘누군가’에게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돌려 보았는지는 쑥스러워 밝히지 못할 정도다. 적어도 내가 쓴 기사의 교열보다는 훨씬 더 공들여서, 열심히 보았다.

지금도 그 장면, 대사들이 눈과 귀에 훤하다. 나는 정말 이 영화를 좋아했다.

조제는 대학로 골목을 뚜벅뚜벅 걸어와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커피 한 모금을 쭉 들이켜고 어깨를 폈다. 숨을 길게 뱉었다.

이제, 인터뷰 시작이다.


- ‘조제’는 쿠미코가 스스로 만든 자신의 이름이죠. 쿠미코가 좋아한 프랑스 작가 프랑수와즈 사강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조제, 쿠미코의 어디에 끌렸나요?

“어쩐 일인지 저는 장애를 지닌 인물을 많이 연기했어요. 기억상실증이라든지 … 헤드윅의 이츠학도 비슷하죠? 쿠미코는 다리에 장애가 있죠. 그런데 저를 포함한 우리들은 누구나 한 가지씩은 보이지 않는, 자유롭지 않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마치 쿠미코의 다리처럼 말이죠. 다리를 못 쓰는 여자에 대한 특징적인 느낌이라기보다는 왠지 나 같은, 우리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 환상적이지만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더 공감되고, 그래서 더 아픈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을 이렇게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할 수 있다니. 연극도 영화와 비슷하다고 봐야죠?

“말씀하신 부분을 표현하는 데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현실감, 잔잔함, 담담함이 있었죠. 시원하지 않은, 갑갑한 단어들로 가득합니다. ‘슬프다’, ‘기쁘다’가 아니라 ‘먹먹하다’, ‘애잔하다’였죠. 지루할 수도 있어요. 한 끗 차이입니다.”


- 영화와 연극. 과연 그럴 것 같습니다.

“연극은 시공간의 이동이 없잖아요. 제한적이죠. 연습할 때 남자배우들과 별의 별 얘기를 다 했어요. ‘왜 이런 대사를 이들이 하게 되는 거지?’하는 질문을 던지곤 했죠. 정말 토론을 많이 했어요.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 하게끔 해야 하니까요.”


- 그러고 보면 최우리 배우는 일본 원작의 작품들을 꽤 했군요.

“맞아요(웃음). ‘트라이앵글’이 있었고 ‘오케피’가 있었죠. 일본 원작의 작품들은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팍’ 터지는 건 없죠. 하지만 감정이 굉장히 섬세해요. 아주 작은 것까지 놓치지 않죠.”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일본에서도 연극으로 만들어졌겠죠?

“아니에요. 일본에서도 작품화된 적은 없습니다. 대본도 우리나라 작가가 썼어요. 원작자에게 대본을 보내주었고, ‘오케이’를 받았다고 합니다.”


- 연극은 오랜만이죠? 사실 최우리씨는 뮤지컬 배우니까요.

“페리클래스라는 작품을 최근에 했어요. 양정웅 연출이고, 유인촌 선생님과 함께 한 작품이죠. 아빠와 딸. 처음부터 납작 엎드렸죠. 유인촌 선생님에게 ‘연극은 처음이에요. 많이 부족할 것 같아요’했어요. 그게 예뻐 보이셨나 봐요.”


- 뭐라고 하시던가요?

“ ‘배우가 자기 단점을 그렇게 꺼내놓기 쉽지 않은데 …’ 하시더니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가르쳐주셨죠.”

사진제공 ㅣ 벨라뮤즈



- 최우리와 조제. 발랄하고 엽기적이고 백치적인 출연작품만 본 사람이라면 ‘최우리가 조제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없었어요. 발랄하고 백치미를 드러냈던 작품들은 이미 예전 작품이 되었으니까요. ‘금발이 너무해(리걸리블론드)’ 이후 저도 나름 (금발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고요. 머리 색깔만 해도 너무 외국 티가 나지 않도록 했죠. 그 뒤로는 금발 가발을 쓴 작품이 없어요.”


- ‘금발이 너무해’의 엘 우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군요.

“금발, 백치미의 이미지. 지나치게 캐릭터가 정해지는 게 불안했거든요. 그래서였는지 조제를 한다고 했을 때, 이질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 최우리 배우가 생각하는 조제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 작품을 하기 전, 영화를 볼 때는 ‘그냥 좋다’였어요. 내 것이 아니었을 때니까. 그런데 이 사람을 막상 연기하려니 ‘뭔지 모를 장면’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하는데 도무지 안 되는 거예요.”


- 도무지 안 되었다?

“대본을 리딩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죠. 그런데 움직이면서 연기를 하려니 ‘어떤 연기를 해야 하지?’하는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연기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을 찾아갔죠. 모르는 게 있거나, 막히는 데가 있으면 지금도 가거든요. 선생늬임~ AS 해주세요~ 하면서(웃음).”


- 그런 정도라면 어떤 선생님이 마다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뭐라고 조언해 주시던가요?

“뭘 해야 할지 힘들다고 하니까 선생님께서 ‘그게 우리들 삶 같지 않니?’하시더라고요. 일도 해야 하고, 부모님도 계시고, 사랑을 하려니 계산도 해야 하고, 일만 하자니 삶이 건조해지고, 뭐 때문에 뭐는 못 하고. 그게 우리 같지 않니? 그 여자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의 팩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여자 같구나. 끝! 이렇게 말씀 하셨죠.”


- 알 듯 모를 듯한 말씀이시군요.

“드라마 ‘하백의 신부’에서 제가 맡은 조염미가 무당과 같다면 조제는 부처 같은 사람. 모든 걸 해탈한 사람이랄까요. 단지 집안에서 책과 라디오를 통해서 모든 걸 습득한 거죠. 여하튼 전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 드렸죠. ‘아우, 선생님, 연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으면 그때 말리셨어야죠! 안 말리셨으니 책임지세요!’”


- 하하! 분위기를 좀 바꿔 보겠습니다. 영화에서 조제를 맡은 이케와키 치즈루의 아담함과 비교해서 최우리 배우는 좀 크지 않습니까?

“앉아 있어서 괜찮대요(웃음). 옷도 실루엣이 골격이 드러나는 쪽이 아니라서. 게다가 같이 하는 백성현 배우가 커요. 다행이죠.”


- 작가 나다베 세이코는 왜 원작 소설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생각은 안 해 봤지만 … 그래서 좋았어요. 배우들 모두가 이 작품의 엔딩을 좋아했죠. 다들 엔딩 때문에, 더 좋다고 했어요.”


- 최우리 배우의 지인들은 최우리 배우가 평소에 털털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한 기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차분하고 말도 조근조근 한다’라는 쪽이거든요. 혹시 인터뷰를 할 때에도 연기를 하는 건가요?

“하하! 설마요. 사실 인터뷰도 예전엔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기자님이 ‘얼굴이 갸름해졌어요’하면 ‘보톡스 맞았어요’하고, ‘키스신이 어땠어요?’하면 ‘별 느낌 없었어요’하는 식이었죠. 그런데 주변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하도 말려서(웃음). 특히 조제는 더 그래요. 조제 인터뷰인데 저의 털털함과 거친 부분이 보여지면 좀 그렇잖아요.”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막공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10월29일까지 CJ아지트대학로에서 공연을 합니다. 아직 ‘조제…’를 못 본 관객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보시면 ‘내가 언제 저런 사랑을 해봤던가 …’ 싶어지실 거예요. 저렇게 아픈 걸 각오하고 달려들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누구나 아픈 것은 싫어하잖아요. 보시는 관객 분들께서 자신이 몰랐던, 외면했던, 잊었던 부분을 다시 한 번 꺼내보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조제를 연기하는 배우로서, 전 그걸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이 공연을 하는 목표이기도 하고요.”

개막을 앞두고 연습을 하던 때, 배우들은 이 작품의 원작소설을 돌려 보았다고 한다. 책 속에 최우리는 다른 배우들을 위해 이렇게 써 넣었다.

“만나서 반갑고, 이번 작품을 통해 잊고 살았던 추억을 꺼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들 읽으시라”고.

헤어지기 전, 마지막까지 남겨 두었던 질문을 던졌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최우리는 남자친구인 츠네오가 장바구니를 들고 와서 “밥을 해달라”고 하는 장면을 골랐다. 창문을 통해 이야기하는 두 사람. 조제가 츠네오에게 먹어보라고 권하는 장면.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질문을 남겨둔 보람이 있었고, 안도했다.

실은 나도 그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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