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 판소리 수묵화…남도에 가면 ‘예술풍류’가 흐른다

입력 2017-10-1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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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게 드리운 구름에 살짝 몸을 숨긴 달마산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해남 미황사 대웅보전, 가을빛 화창한 광주 월봉서원의 빙월당에서 유생체험을 하는 방문객들에게 뮤지컬 ‘서편제’의 노래 ‘살다보면’을 들려주는 공연팀,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 있는 해남윤씨 고택 녹우당 내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왼쪽부터 시계방향).

남도 선비 풍류와 여유 만끽하는 월봉서원
고산 윤선도 자취 어린 600년 고택 녹우당
천년 고찰 미황사의 판소리·수묵화 한마당


옥빛 유생복을 입고 여유롭게 거니는 서원의 가을 정취, 천년 고찰에서 경험하는 수묵화와 판소리의 콜라보레이션,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부터 남농 허건의 산수화까지 지금도 생생한 거장들의 예술혼.

지역 특성을 살려 문화와 예술의 정취를 여행에서 느껴보는 예술 체험 여행들이 여럿 생기고 있다. 예향으로 불리는 호남 지역에서도 가을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있다. 전남 해남의 행촌문화재단(이사장 김동국)은 ‘예향 남도’의 전통문화 ‘수묵화’를 주제로 ‘예술가와 함께 하는 남도 수묵 기행’을 운영하고 있다.


● 반듯하지만 여유로운 조선 선비의 풍류

서원은 최근 사찰과 함께 체류·체험 관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체계적으로 정립해 지켜온 전통 예절과 독특한 문화가 있어 이를 바탕으로 각종 체험 프로그램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황룡강변에 자리잡은 월봉서원은 남도 선비의 멋과 풍류를 여유롭게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조선 중기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론’을 펼쳤던 기대승을 추모하기 위해 선조 때 지어진 이곳은 다른 서원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다. 하지만 뒤로는 343m의 판사등산을, 앞으로는 행주 기씨 집성촌인 너브실 마을과 마주한 앉음새부터 제법 여유롭다. 서원을 빙 둘러 완만한 경사의 ‘철학자의 길’이라는 산책 코스가 있다. 옥빛 유생복과 유건을 입고 조선시대 유생의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카페 ‘다시’(茶時)에서는 호남 선비의 차문화를 경험하고, 옛 책 만들기, 나만의 차, 탁본 등의 체험 문화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미리 예약을 하면 마을에서 직접 기르고 채취한 식자재로 만든 정겨운 가정식 상차림인 ‘너브실 밥상’을 맛볼 수 있다.


● 가을비 내리는 천년 고찰서 만난 판소리와 수묵화

미황사는 해남 달마산 자락에 자리잡은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절이다. 신라시대인 749년에 창건했으니 1200년이 훌쩍 넘은 고찰이다. 이곳을 찾은 날, 마침 가을 정취를 한껏 더 무르익게 하는 비가 제법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낮게 드리운 구름이 걸린 아기자기한 산세의 달마산을 등에 지고 고즈넉이 자리잡은 절집의 정취가 남달랐다.

미황사 대웅전은 보물 제947호로 다른 절과 달리 단청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 유구한 시간의 흔적을 곱게 먹은 대웅전의 자태가 푸른 숲과 담백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산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나는 자하루 미술관에서는 이곳의 매력에 빠진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한쪽 벽을 가득 채운 1000개의 작은 부처 그림이 눈길을 끈다. 조병연 작가의 ‘천불’로 해남 지역에서 8개월간 수집한 돌에 부처를 그린 작품이다. 저마다 다른 모습과 느낌을 주는 부처의 모습이 남다르다.

이번 여행길에는 자하루 미술관에서 수묵화와 판소리가 어우러진 멋진 무대를 접하는 기회도 얻었다. 한국화가인 김선두 화백이 미황사의 느낌을 살려 먹의 농담과 여백이 어우러진 산수화 한 폭을 그리는 동안, 수궁가 전수자인 소리꾼 이병재씨가 옆에서 남도의 신명과 애잔함이 어우러진 사철가와 수궁가 한 대목을 들려주었다.


● 600년 윤선도 고택과 공재의 초상화

남도의 예술과 문화, 역사를 말할 때 고산 윤선도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의 아이콘이다. 치열한 당쟁 속에서 꼿꼿한 기개를 지켜온 남도 선비의 표상인 그는 각종 경서와 역사부터 의약, 음양, 지리 등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쌓아온 ‘르네상스적 인물’. 특히 시조에 뛰어났는데, 이런 윤선도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해남 녹우당이다.

집 뒤에 있는 비자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 나는 소리가 마치 빗소리를 떠올리게 한다고 붙은 이름이 ‘녹우당’(綠雨堂)이다. 해남윤씨의 600년 고택이자 고산의 장원으로 현재 14대 종손 윤형식씨가 살고 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사대부집이지만, 안채가 특이하게도 ‘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원래 ‘ㄷ’였으나 사랑채를 덧붙이면서 지금의 모양새가 됐다.

녹우당에는 고산 윤선도의 여러 유물을 전시한 고산유물전시장도 있다. 여러 전시품 중 꼭 챙겨서 봐야할 것은 국보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강렬한 눈빛과 함께 얼굴의 작은 터럭 하나까지 꼼꼼하게 묘사한 극사실주의 묘사도 인상적이지만, 단순히 외면의 모습만이 아닌 인물 내면의 복잡한 감정까지도 느껴지는 그림의 깊이가 무척 놀랍다.


● 추사, 흥선대원군, 그리고 남농

조선시대 서화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도 예술기행에서 목포의 송옥미술관을 꼭 챙겨 가보는 것이 좋다. 조선내화의 창업주이며 전남일보 발행인이었던 성옥 이훈동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곳으로 아담한 규모지만 국내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추사 김정희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작품이 있고 한국 남종화의 토대를 만든 소치 허련, 미산 허형, 남농 허건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이번 예술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전문 미술 큐레이터의 해설을 곁들여 들을 수 있다.

글·사진|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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