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내친구] 방송인 이봉원 “산은 날 위로해주죠…술로 찌든 내장도 청소해주고”

입력 2017-10-20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매주 일요일 산에 오르는 방송인 이봉원이 북한산 숨은 벽을 배경으로 삼아 팔짱을 낀 채 활짝 웃고 있다. 북한산을 자주 찾는 그는 이곳의 산세를 훤히 파악하고 있을 만큼 등산에 푹 빠져 지낸다. 북한산 ㅣ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 히말라야까지 접수한 산사나이 이봉원

야구·골프 등 운동마니아…“그중 산이 최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10박11일 트래킹도

“잡생각은 그만…온전히 나를 버릴 수 있어”
손수 싼 도시락으로 산악회 동료들과 만찬

호기심 발동하면 실행에 옮겨야하는 성격
“한번 사는 인생, 굴곡 있어도 도전해야 살맛”


매주 일요일, 방송인 이봉원(54)은 직접 결성한 산악회 회원들과 서울 근교 산을 오른다. 계절에 따라선 내장산에 단풍을 구경하러 가기도 하고, 곱게 눈 덮인 겨울 산의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설악산으로 훌쩍 떠나기도 한다. “한국에는 좋은 산이 너무나 많다”며 즐거워하는 그는 이제 북한산, 설악산의 지리쯤은 훤히 꿰고 있다. 암벽, 빙벽에도 능한 이봉원은 10박11일에 걸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래킹 코스도 섭렵했다.

방송인 이봉원.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 산이 왜 좋으냐고?

이봉원은 등산 외에도 야구, 헬스, 골프 등을 두루 좋아하는 운동 마니아다. 그래도 부동의 1순위는 등산이다. 간혹 바쁜 일상에 지칠 때면 다른 운동은 손에서 놓아도 산과는 더욱 가까워지곤 한다. “힘들 때 다른 건 안 해도 산은 꼭 간다. 산은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다. 참 소박하다.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다.”

산에 오를 때만큼은 땅 위에서의 걱정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사실 험한 길을 오르느라 온 몸이 사력을 다하는 통에 잡생각이 끼어들 틈조차 없다.

숨이 거칠어지고, 다리가 무거워지는 고비들을 몇 차례만 넘어서면 황홀한 경치가 기다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봉원은 “이곳에서는 나를 온전히 버릴 수 있다. 산에 오르는 순간에는 몸이 힘드니 나를 힘들게 하는 다른 것들은 전부 다 신경이 안 쓰인다. 덕분에 산은 잠시나마 심신의 위안처가 된다”고 했다.

애주가인 그는 등산을 마치고 절대 빼놓지 않는 것이 있다. 술이다. 평소 입이 짧은 그는 닭, 오리 고기는 일절 입에 대지 않을뿐더러 돼지고기, 생선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가끔 소고기만 조금 먹는다. 하지만 술이라면 언제든 대환영이다. 우스갯소리로 술을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일주일에 등산을 두 번만 하면 마시고 싶은 술을 마음껏 마셔도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산에 와서 피톤치드로 내장을 치유하면 되니까”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당연히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지만, 이봉원에게 산은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다.

이봉원(위 사진 오른쪽 끝)이 직접 싸온 도시락(아래 사진)을 산악회 회원들과 나눠 먹고 있다. 북한산 ㅣ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 ‘그냥’ 이봉원의 시간

산이 좋은 이유로는 수만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이봉원을 산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이다. ‘방송인’ 이봉원을 ‘아저씨’ 이봉원으로 만드는 산악회 친구, 동생들이다.

연예인 대우는 없다. 되려 이봉원 스스로 온갖 궂은일을 자처한다. 먼 곳으로 등산을 갈 때면 직접 다인승 차량을 끌고 오는데, 이런 날엔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술도 기꺼이 참는다. 산행을 다니면서도 기념사진 촬영은 이봉원의 몫이다. 회원들이 “우리는 거꾸로 연예인이 사진을 찍어준다”며 너스레를 떨자 이봉원은 부끄러운 듯 “쟤네들은 사진 구도를 몰라”라며 웃어넘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작 본인은 근사한 사진 한 장을 남기기도 쉽지 않다.

산악회 내에선 ‘엄마’로 통한다. 산에 오르는 날이면 손수 도시락도 싸온다. 간단히 허기를 달랠 김밥 몇 줄이 아니라 회원들과 푸짐하게 나눠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다. 여름엔 산 위에서 콩국수, 냉면을 먹을 정도로 차려놓는 메뉴가 화려하다. 한 번은 양푼 대야를 메고 올라가 각종 나물을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 주위 등산객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와 북한산 밤골∼해골 바위∼숨은 벽까지 이어지는 산행을 함께한 덕분에 이봉원표 도시락을 맛볼 수 있었다.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가방에서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꺼내 제법 그럴듯한 식탁을 마련했다. 이어 비닐에 싸인 반찬 통이 줄줄이 나왔다. 꽉 눌러 채운 밥, 김치, 밑반찬과 함께 마당에서 직접 기른 유기농 상추와 고추까지 작은 가방에 참 알차게도 준비해 왔다.

여기에 동생들은 시장에서 정성껏(?) 구입한 반찬을 보태며 슬쩍 숟가락을 얹는다. 이미 이봉원 도시락의 맛은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인지 먹다 남은 반찬, 야채들은 동생들이 집으로 가져가기까지 한다.

기분 좋게 부른 배를 두들기며 스포츠, 정치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렇게 이봉원은 구슬땀을 흘리며 산을 오른데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산 위에서만큼은 충분한 여유를 누린다. 가끔은 조용한 곳에 해먹을 걸고 달콤한 낮잠을 즐길 때도 있다. “산악인으로서 꼭 한 번씩은 모든 산의 정상을 밟지만, 그 다음부터는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으로 간다. 거기서 밥 먹고, 쉬고, 산을 느끼는 거지. 하하.”

방송인 이봉원.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 도전하는 인생은 즐겁다

이봉원은 무엇이든 몸으로 직접 부딪쳐봐야 직성이 풀린다. 호기심이 한번 발동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식이다. 최근에는 중식조리사 자격증에 이어 그 어렵다는 한식조리사 자격증까지 땄다. 요즘은 당장 써먹을 것도 아닌데 인터넷 강의를 봐가며 중국어, 영어를 독학하고 있다. 순전히 궁금해서, 나도 배워보고 싶어서다. 그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늘 똑같은 것만 하면서는 절대로 못 살 것 같다. 굴곡도 있어야 인생이지. 새로이 무언가를 해보는 걸 정말 좋아한다. 궁금해서 못 참는다”고 했다. 이런 이봉원의 도전 정신에 동료들은 엄지를 치켜세운다.

내년 2월에는 새로운 도전이 계획되어있다. 14박15일간의 에베레스트 트래킹이다. 안나푸르나보다 1000m 가량 높은데다 기간도 더 길다. 하지만 고도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번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더욱이 안나푸르나에서의 모든 순간들이 여전히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다. “히말라야에 가보니 정말 ‘억’소리가 나더라. 동시에 사람이 겸허해진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하면서. 살면서 많이 보고, 느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굵어지는 것 아니겠나.”

모든 산악인들의 로망이라는 히말라야를 찍고, 에베레스트까지 갈 예정이지만 이봉원은 아직도 목이 마른 눈치다. “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으니 냉큼 “죽기 전에 정상에 한 번 올라보고 싶다”는 속마음을 꺼내놓는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의 8828m 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트래킹이 아닌 진짜 등정을 하고 싶다. 당연히 충분한 훈련을 통해 체력, 기술을 단련한 뒤 빙벽을 타고, 크레바스를 건너는 연습까지 이뤄진 다음에야 가능하다. 모두 각오가 되어있다. 이봉원이 목소리를 높인다. “어느 봉우리든 한 번은 찍어야지.”

북한산 ㅣ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