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18.44m] 두산 김태형 감독이 보여준 패자의 존엄

입력 2017-11-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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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김태형 감독(오른쪽)은 올해 KS에선 KIA에 1승4패로 고배를 마셨다. 감독 부임 이후 처음 겪는 좌절이다. 30일 KS 5차전 직후 KIA 김기태 감독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는 김태형 감독.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언젠가부터 한국시리즈(KS)의 파이널게임이 끝나면 진 팀 덕아웃부터 찾는다. 10월 30일 잠실구장에서도 그랬다. 뜻밖에도 복도에 두산 김태형 감독이 홀로 서 있었다. 그 곁엔 같은 팀 김태룡 단장이 유일했다. 김 감독이 그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유는 온전히 승장 KIA 김기태 감독을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기자를 보자 김 감독은 눈 꼬리가 올라가는 평소 잘 짓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눈은 충혈 돼 있었다. 아무리 직업이라도 그 순간, ‘기분이 어떤지’ 차마 물을 수 없었다. 굳이 묻지 않았어도 김 감독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꽤 많은 말들 중에서 한마디가 울림으로 남는다. “흐름이 한번은 올 줄 알았는데….” 2015년 두산 감독 취임 이래 단 한번도 져본 적이 없는 그였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어야 하는, 승패의 경계에서 사는 사람의 숙명을 그렇게 오롯이 견디고 있었다.

#리더십 스타일에서 두산 김태형 감독, KIA 김기태 감독은 판이하다. 그러나 두 감독은 인간적으로 친밀하다. 정정당당한 야구를 선망하는 측면에서 둘은 공통분모를 지닌다. 승자독식인 KS에서 심리전은 극한까지 치닫는 것이 통례다. 예외적으로 2017년 KS는 달랐다. 그럴 소지가 있어도 두 감독은 참았다. KS 1차전 두산 니퍼트의 보크 논란 때, KIA 김 감독은 “망설였지만 항의하고 싶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KIA 김 감독은 체질적으로 신경전을 좀스런 짓이라 혐오한다. 두산 김 감독은 심리전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먼저 도발하지는 않는다. 두 감독의 그릇이 오직 야구로만 경쟁한 ‘클린 KS’를 합작했다.

KIA 김기태 감독-두산 김태형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2015년 KIA는 거의 가을야구에 갈 뻔했다. 그 꿈을 좌절시킨 팀이 두산이었다. 시즌 막판, 두산도 3위냐 4위냐가 걸려있는 상황인지라 필사적이었다. 잠실에서 두산이 이겼고, 환호했다. 준플레이오프 직행이 확정된 여세를 몰아 두산 김태형 감독은 부임 첫해에 KS 우승을 해냈다. 그날도 기자는 KIA 덕아웃부터 갔다. KIA 김 감독은 별 말 없이 악수만 청했다. 평소의 사근한 표정이 아니었다. 나중에 김 감독은 “오늘을 잊지 말자”는 회한을 남겼다. 세상일은 돌고 돈다.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흘러, KIA는 두산에 진 빚을 갚았다.

#두산은 KS 3차전과 5차전 사인미스가 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주변에 당부했다. ‘구체적 사항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선수를 보호하겠다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2017년 KS에서 두산이 진날 밤, 한용덕 수석코치와 강인권 배터리코치, 전형도 주루코치가 한화로 떠났다. 외국인선수와 프리에이전트 계약부터 제로베이스에서 구상한다. 두산과 김 감독은 패배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여정은 계속된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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