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 성우 양지운, 반세기 활동 마침표…“홀가분 합니다”

입력 2017-11-29 10: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017년 10월 30일’은 성우 양지운(70)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가 10년간 내레이션을 맡아온 ‘생활의 달인’에서 하차한 날이자, 49년 성우 생활에 최종 마침표를 찍은 날이다. 반세기를 베테랑 성우로 살아온 양지운은 이날 ‘생활의 달인’ 505번째 녹음을 끝으로 은퇴했다. 은퇴 후 현재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칼바람이 손끝을 스치는 11월의 어느 날, 경기도 하남에서 양지운을 만났다.

“아쉬움보다는 홀가분하네요. 편안하게 쉬고 있어요. 마음의 여유가 생겼죠. 매주 일정에 쫓겨서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으니까요. 49년 동안 정말 바쁘게 열심히 살아왔어요. 이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남은 시간은 봉사하고, 삶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보내고 싶습니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이죠.”

양지운은 수십 년 전 은퇴를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젊은 시절 그가 계획한 은퇴 시기는 ‘쉰’이었다. 여기에 20년을 연장해 일흔인 올해 은퇴한 데는 뜻밖의 이유가 있었다.

“20대부터 일하면서 ‘쉰이 되면 그만하자’고 계획을 세웠죠. 그런데 왜 20년을 연장했느냐. 1992년에 막내아들이 태어났어요. 하하. 아들이 20대가 될 때까지는 뒷바라지를 해줘야 하니까 (은퇴할 수 없었죠). 정말 열정적으로 바쁘게 일했어요. 개인생활은 없을 정도로 살았죠. 몇 년 전부터는 ‘떠날 때가 됐다’ 싶어서 아무도 모르게 프로그램을 줄여왔어요. 서서히, 하나씩 은퇴를 준비해온 거죠. 올해 연말에 마치기 위해서요.”


수년간 무지외반증(엄지발가락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기울어져 통증을 유발하는 질환)을 겪어온 양지운은 2015년 파킨슨병 초기 진단을 받았다. 투병은 그의 은퇴를 한 달 정도 앞당기게 만들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는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여러 번 턱을 괴곤 했다.

“제작진에 ‘건강 문제 때문에 수술도 해야 한다. 그만두겠다’고 하니 그 분들은 전혀 예상 못했었나 봐요. 많이 아쉬워하더라고요. ‘생활의 달인’ 마지막 녹화 때 제작진이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마련해줘서 정말 감동받았어요.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놓고 나오는데 꽃다발과 기념패를 준비했더라고요. 울컥했죠. ‘내가 잘못 살진 않았구나’ 하는 흐뭇함과 위로로 가득했어요. 행복했죠.”

세월을 거슬러 베테랑 성우 양지운의 시작점은 1969년 10월이었다. 학창시절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면서 키운 막연한 꿈을 실현한 것. 양지운은 이를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TBC 공채 5기로 입사한 그는 데뷔 초 ‘군중 소음’을 맡았다. 이름도 대사도 정해지지 않는 역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채워주는 소리 담당이었다.

“첫 녹음은 라디오 드라마였어요. 신인에게 좋은 배역을 줄 리가 없죠. 저는 ‘군중 소음’이었는데 그것도 떨려서 제대로 못했어요. 주인공의 환경이 선술집이냐 시장 바닥이냐 혹은 품위 있는 레스토랑이냐에 따라 소음이 달라지죠. 소음 부대가 잘 하지 못하면 드라마에 입체감이 없어요.”


당시 신인 양지운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는 경상도 사투리. 경남 통영 출신인 그는 사투리 때문에 “성우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이유로 퇴출 위기를 맞았다. 그때,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을 내세운 드라마 ‘광복 20년’을 만났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됐다.

“물 만난 고기였죠. 오지리널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니까 청취자들 반응도 뜨거웠어요. 방송사에서도 이후 사투리가 믹스된 드라마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정통 표준어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성 있는 연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는 걸 안 거죠. 제 입장에서는 사투리를 극복할 시간을 벌었어요.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서 남모르게 노력했어요. 정확하게 표준어를 쓰면서도 사투리라는 무기를 가지게 됐죠.”

두 번째 기회는 ‘600만 달러의 사나이’였다. 1973년부터 1978년까지 방송된 미국 외화 시리즈물로 양지운은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 공군대력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더빙 외화가 오늘날 한국 인기 드라마들 못지않게 대단한 관심을 끌던 시기였어요. 리 메이저스 목소리에 제격인 목소리를 찾다가 제가 캐스팅됐죠. 신인에게 대형 프로그램 주연을 맡겼으니 TBC도 모험을 한 거죠. 저도 기회를 잘 잡았어요. 주가가 배로 뛰는 계기가 됐죠.”

양지운은 멜 깁슨, 케빈 코스트너, 해리슨 포드, 로버트 드니로, 리암 니슨, 러셀 크로우, 마이클 더글라스 등 중후한 매력의 배우들의 목소리를 맡아왔다. 가장 연구하기 어려웠던 배우는 로버트 드니로였다고. 양지운은 배우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짧은 숨소리 하나까지 분석하고 연구했다고 털어놨다.

“개성 강한 배우들을 많이 받아서 외화 더빙을 할 때마다 고민이 컸죠. 연기 폭이 넓고 디테일하고 또 까다로워요. 우리말로 연기할 때 감정을 어떻게 살리느냐는 성우의 책임이에요. 한숨 하나에도 엄청난 감정이 전달되거든요. 배역에 캐스팅되면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저 배우가 왜 저기서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연구했죠.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했죠. 그런 노력의 시간이 제가 성우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디딤돌이자 버팀대가 됐어요.”


양지운은 실제로 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독립문’(1984)과 ‘빛과 그림자’(1985)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연기자와 성우를 병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성우에 익숙하다보니 드라마 촬영장에서의 기다리는 시간을 극복하지 못했다. 하나는 포기해야했다”고 고백했다.

양지운이 선택한 길은 ‘성우’였다. 그는 성우로서의 활동 반경을 넓히고 채우며 퍼스널리티를 강화했다. 특히 ‘체험 삶의 현장’을 통해 내레이터와 화자, 주변 인물을 오가며 일인다역 목소리 연기하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기도 했다. 첫 방송부터 마지막 방송까지 19년을 함께한 ‘체험 삶의 현장’을 떠올리며 “정말 보람 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했다.

반세기에 걸친 미디어의 격번 속에서 멈추지 않고 쉼없이 도전해온 양지운. 성우의 어제와 오늘을 보낸 그는 ‘내일’을 맞을 후배들을 위해 의미 있는 조언을 남겼다.

“성우는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소리를 내야 해요. ‘살아있는 말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디자인할 것인가’가 중요하죠. 요즘은 매체가 엄청나게 많아졌잖아요. 일터가 많아졌으니 성우의 역할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죠. 언어의 변천이 심한 세상에서 우리말 지킴이 역할도 해야죠. 아나운서와 국문학자만 노력하는 게 아니라 성우도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우가 할 일이 엄청 많아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