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사이드] ‘암살’ ‘남영동1985’ ‘1987’…대한민국 고문 잔혹사

입력 2018-01-1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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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이정재-영화 ‘남영동1985’의 이경영-영화 ‘1987’의 김윤석(왼쪽부터). 사진제공|쇼박스·씨너스엔터테인먼트·엣나인필름·CJ엔터테인먼트

노덕술∼이근안∼박처원 실제 인물 모델
친일경찰 노덕술 사단 막내였던 박처원
박종철 사건은 물론 이근안 도피에 관여


2015년 1000만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 ‘암살’은 일제강점기 친일파 제거에 나선 독립투사들과 이들을 배신하고 일제 앞잡이가 된 친일 밀정에 관한 이야기다. 이정재가 연기한 영화 속 친일 밀정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은 친일경찰의 대표격으로 불리는 노덕술이다.

2012년 영화 ‘남영동1985’는 1985년 서울 용산구 갈월동의 치안본부 대공분실, 일명 ‘남영동’에서 청년운동가 김종태가 겪은 고통을 그렸다.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을 등장시켰다. 이두한의 캐릭터가 모티브 삼은 인물은 이근안 전 경감이다.

그리고 현재 상영 중인 ‘1987’.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남영동’에서 경찰의 물고문 끝에 숨져간 순간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을 이끄는 박 치안감(김윤석)을 주요 인물로 설정했다. 역사적 사실을 그려낸 영화 속 박 치안감은 박처원 당시 치안감을 모델 삼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어떻게 축소 조작됐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 현실의 세 인물은 ‘암살’과 ‘남영동1985’ 그리고 ‘1987’을 한 줄기로 잇게 한다. 바로 고문을 통한 ‘좌경세력의 발본색원’이다.

영화 ‘남영동1985’의 한 장면. 사진제공|씨너스엔터테인먼트·엣나인필름


노덕술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고문의 고통으로 떨게 한 일제 고등계 형사였다.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단죄에서도 벗어나 다시 경찰이 되었다. 그리고 ‘빨갱이 색출’에 나서 가혹한 고문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도 유사한 고문치사 은폐 조작에도 나섰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2001년 5월 ‘한겨레21’을 통해 “노덕술은 군으로 무대를 옮겨 헌병 중령으로 변신해 1사단 헌병대장을 지냈다. 그러나 그가 창설한 이른바 노덕술 사단은 한국 대공경찰의 모태가 되었고, 그 사단의 막내가 바로 뒷날 자기 사단을 만들며 대공경찰의 대부가 된 박처원이었다”고 썼다.

박처원 전 치안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 조작한 혐의로 1996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999년 11월16일자 동아일보는 “85년 민청학련 의장이었던 김근태 씨에 대한 고문을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장 박씨가 경기도경 대공분실 소속 이근안 씨에게 수사팀에 합류토록 직접 지시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김근태 전 의장을 고문한 혐의로 고소당한 이근안 전 경감이 무려 10여년의 도피 끝에 자수해 검찰 조사를 받던 때였다. 당시 동아일보는 “경찰 대공분야 최고책임자였던 박 전 치안감의 지시로 도피 생활을 시작했으며 동료 경찰관들의 조직적인 비호를 받아왔다”면서 “박처원 사단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치안감은 이와 관련해 2000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근안 역시 1999년 11월 불법감금 및 독직가혹행위죄로 구속 기소돼 2000년 9월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형을 선고받았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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