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현장] “정부 조직적 지원배제, 진상조사 철저히”…독립영화인 기자회견 (종합)

입력 2018-02-07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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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현장] “정부 조직적 지원배제, 진상조사 철저히”…독립영화인 기자회견 (종합)

“혹시나 했던 의혹이 역시나. 사실을 알고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지난 정권과 관련해 ‘조직적인’ 독립영화 지원 배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자 독립영화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주최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강력 규탄’을 외친 것.

독립영화인과 한국독립영화협회가 7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KT광화문빌딩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 회의실에서 독립영화인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을 만났다. 이번 기자회견은 박근혜 정부와 당시 국정원,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조직적으로 자행된 독립영화 지원배제를 규탄하기 위해 열렸다.

전날 진상조사위는 박근혜 정부 시기 사회참여적 독립다큐영화들이 ‘문제영화’로 분류돼 영진위 지원사업에서 배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다이빙벨’ ‘천안함프로젝트’ ‘자가당착’ 등 특정 영화를 상영한 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 등) 또는 상영관(독립예술전용관·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사후적 지원배제 5건과 예술영화 지원배제 3건(‘산’ ‘연인들’ ‘바당감수광’)만이 밝혀진 바 있다.

진상조사위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조사 결과 독립다큐영화에 대한 배제 사건이 20여건 추가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문체부-영진위를 동원해 독립다큐들을 ‘문제영화’로 낙인찍고 중요 지원 사업에서 수차례 배제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용산 참사를 다룬 영화 ‘공동정범’을 연출한 김일란 감독은 “혹시나 했던 의혹이 역시나 하는 사실로 드러난 점을 목격하면서 참담했다. 이전에도 사회 이타적인 영화를 지원했을 때 지원 사업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독립영화들은 다 배제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규탄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용산 참사나 세월호 사건 등의 키워드를 설정하고 이 키워드가 들어간 작품을 배제해왔다. 지원해야 할 창작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하고 그들의 작품을 문제 영화로 낙인찍고 제작과 개봉을 오히려 방해하는 도구로 일삼았다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는 명백한 차별이다. 이 차별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박탈할 뿐 아니라 인권 침해고 국가 폭력의 형태다. 국민 개개인의 의식을 통제하고 개조하는 ‘국가폭력’”이라면서 “다시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하고 명확하게 진상을 규명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공동정범’을 공동 연출한 이혁상 감독은 “우리 영화가 영진위 제작 지원 서류 지원에서 탈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의 능력이 부족했나,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나’ 고민했다. 전작 ‘두개의 문’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었기 때문에 서류에서 탈락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용산 참사를 다뤄서인가’라고 의심했는데 이렇게 밝혀졌다. 지금이라고 밝혀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블랙리스트를 통한 영화인의 배제와 탄압은 영화인들의 정신적인 세계의 참사라고 생각한다.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진상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서 모든 커넥션이 밝혀지기를 바란다. 시민의 문화 향유권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정현 감독은 2015년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 면접심사 당시를 회상했다. 문감독은 “‘할매꽃2’는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기획안 구성안 가운데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에 나오는 장면이 첫 번째 신이었다. 당시 심사위원이 ‘이 영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냐’고 묻더라. 어이가 없었다. 기획안을 끝까지 읽어보셨나 싶더라. 그래서 ‘세월호 영화는 아니지만 이야기가 들어갈 수도 있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지만 내 삼촌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열심히 찍어보겠다’고 이야기했더니 한 심사위원이 웃으면서 ‘아.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죠?’라고 하더라. 어이없는 마음으로 나온 기억이 난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왜 많고 많은 이야기 가운데 세월호를 계속 물었을까 싶다. 이제 알 것 같다. 어제 발표를 보고 치욕스러움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문 감독은 영화의 일부분을 두고 ‘자기 검열’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자기 검열하게끔 만드는 폭력적인 제도와 상황에 대해 무섭기도 했다”면서 “너무 형편없는 정부였기 때문에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다. 이런 사태를 보니 정신을 차려야겠다 싶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일은 문재인 정부와 그 이후 정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와 시스템이 잘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당부했다.

김철민 감독은 “충격적이고 참담했다. 그 방식이 너무나 치졸하고 한심해서였다. ‘국가보안법, 위안부, 세월호’ 등 소통해야할 문제를 배제 키워드로 만들어서 심사에서 배제했다고 하더라. 삼류 막장 영화에나 나올 스토리여서 충격적이었다”면서 “내 영화는 영진위의 모든 지원에서 배제됐다. 공공기관에서 진행되는 상영회를 앞두고 청와대의 어떤 지시가 있었다는 문건을 봤다. 공동체 상영마저 막아서는 치졸함에 놀랐다”고 개탄을 금치 못했다.

“회의감이 들 정도로 힘겨운 시기도 있었다”고 고백한 김 감독은 “이 문제는 비단 영화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에 대한 침해다. 철저하게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영화인뿐 아니라 국민들의 문화 예술에 대한 기대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진상조사위에서 철저하게 밝혀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의 목적이 단순 ‘규탄’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그리고 피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홍형숙 감독은 “우리의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블랙리스트가 문화예술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떻게 이렇게 전 국민을 상대로 체계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느냐에 집중해야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시스템의 연결고리를 반드시 끊어내는 재발 방지책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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