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여자배구 샐러리캡은 젠더 문제 아니다

입력 2018-03-2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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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샐러리캡 규정을 두고 ‘남녀 차별리그’라는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여자배구는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빅리그가 아니다. 스포츠동아DB

‘프레임(frame)’.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틀’을 일컫는다. 프레임은 원래 정치 용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보고 싶은 현실’을 유권자가 사실임을 믿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여자배구 샐러리캡은 14억원이고 향후 2년간 동결이다. 반면 남자배구는 25억원이고, 1년에 1억씩 올린다. 게다가 여자배구는 선수 한 명이 총 연봉의 25% 이상을 받지 못하는 단서조항까지 있다.’ 한국프로배구에 ‘남녀 차별리그’ 프레임을 씌우기 딱 좋은 구도다. 여성가족부나 어떤 국회의원은 이런 선동에 편승해 ‘숟가락’을 얹고 있다.

비판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비판은 공정한 사실에 발을 디디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자배구가 샐러리캡을 안 올리는지, 못 올리는지부터 구분하는 것이 순서다.

여자프로배구에서 가장 흥행이 잘 되는 팀도 경기당 입장수입이 1000만원 안팎이다. 15경기를 하니 한 시즌 1억5000만원을 버는 셈이다. 웬만한 주전선수 한 명 몸값에도 못 미친다. A구단 마케팅 관계자는 “여자배구팀은 수입은 없고 비용만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아파도, 외면하고 싶어도, 이것이 현실이다.

이런 리그에서 여자배구 샐러리캡 동결은 남녀의 차별이 아니라 자본이 규정짓는 영역이다. 여자배구에 비해 남자배구의 시장이 작은데, ‘왜 똑같이 안 주느냐’고 공격한다면 비교의 폭력이다. KOVO(한국배구연맹)가 여자팀들의 살림살이에 간섭할 만큼 전지전능한 조직이라고 믿는다면 기만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여자배구는 빅리그가 아니다. 스몰마켓이니까 제한된 자본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냉정히 말해서 김연경을 품을 사이즈가 못되는 리그인 것이다.

논란의 ‘25%룰’에 관해서도 현직 여자팀 감독 B는 말한다. “지금 여자프로배구에 3억5000만원 이상 받을 선수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이는 실력 덕분이 아니라 선수 수급의 결함 탓”이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이미 S급 여자선수는 공식발표만 안할 뿐, 이미 옵션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여자 샐러리캡 규정의 시효는 2년이다. KOVO 이사회에서도 ‘과도기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 2년 사이, 여자프로배구의 마케팅 자생력, 국제경쟁력, 저변을 어떻게 높일지를 고민하는 것이 발전적 접근법일 터다. ‘남녀 차별 프레임’은 자극적일뿐, 한국배구에 해롭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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