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들의 뒷담화] 스포츠 감독들은 왜 잘리는가?

입력 2018-04-1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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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할릴호지치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선수의 신뢰를 잃는 순간, 선장은 ‘파리 목숨’

일본도 선수 신뢰 얻지못한 감독 경질
리더십 부족·독선·편애도 요인 작용
사우디, 왕족 갑질에 17년간 16명 ‘팽’
K리그선 철새 프런트 희생양 되기도


일본축구국가대표팀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이 8일 전격적으로 경질됐다. 2018러시아월드컵 본선을 2개월여 남겨두고 벌어진 일이다. 준비성이 철저하고 행동이 조심스럽기로 유명한 일본사회와 문화를 고려한다면, 결정의 배경에 아주 복잡한 사정과 긴급한 이유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감독은 잘리는 것이 숙명이다. 세상에 어느 감독도 영원하지 않다. 오직 우승만이 인정받는 스포츠의 특성상 부진한 성적을 내는 감독은 언젠가는 잘린다. 그래서 대부분 감독의 퇴진 때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성적부진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번 사례에서도 드러났듯 할릴호지치 감독은 선수들과의 반목, 일본축구협회와의 불화 탓에 팀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도 대회 코앞에서 퇴출됐다. 이것 말고도 감독은 여러 이유로 잘린다. 스포츠 현장을 오래 취재한 김종건·최현길·정재우 전문기자 3명이 감독의 퇴진 사유를 모아봤다.

슈틸리케 전 감독. 스포츠동아DB



● 리더십이 흔들리면 감독은 버티지 못한다!

-할릴호지치의 경질과 관련해 지난해 물러난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새삼 재론되네요. 슈틸리케는 결과적으로는 경기력과 성적 때문에 잘렸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선수 장악력에 문제가 컸습니다. ‘원 팀’을 만들 카리스마의 부재였다고 할 수 있죠. 선수단을 휘어잡지 못한 채 어정쩡한 행보를 계속하다보니, 그 사이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됐고 경기 결과도 계속 나빠졌습니다. 국내파, 해외파로 갈리는 현상은 비단 슈틸리케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중국파의 수비력까지 논란이 된 걸 보면 감독의 선수 장악력에 문제가 있었던 게 확실해 보입니다.

-일본도 감독이 원하는 축구와 선수가 하는 축구가 서로 달랐는데, 이 과정에서 할릴호지치 감독이 주전 선수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배척당한 것이 결정타였죠.

-선수와의 신뢰관계, 감독의 리더십을 말하면 떠오르는 것이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입니다. 삼성화재에서 20년간 장수했던 신 감독은 그 비결로 솔선수범과 모범적 행동을 들었죠. “감독이 성적이 나빠 잘릴 수는 있지만, 가장 비참한 감독은 선수에게 버림받은 감독이다. 이런 감독에게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고 했죠. 그만큼 선수와의 신뢰, 한마디로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니까요.

-요즘 베트남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박항서 감독도 성공의 비결로 솔선수범을 들었어요.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 솔선수범을 하자 그 선수들이 마음을 열고 감독을 따라왔다는 얘기죠.

-감독이 선수와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신뢰가 깨지는 경우는 그보다 훨씬 많죠. 그래서 감독이 잘리는 경우도 다양하죠. 신뢰가 깨지는 이유 가운데 첫 번째가 독선과 편애, 그리고 공정성의 상실 같아요. 선수들을 기용하고 선택하는 권리는 감독이 가지는데, 이 때 얼마나 공정하게 모두가 인정하는 기준으로 일을 처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게 안 되면 선수들의 반발심을 사고 감독의 말발이 서지 않는 거죠. 프로야구 초창기에 어느 팀 감독이 선수를 기용하면서 돈거래를 한다는 소문이 선수들 사이에 퍼졌는데요. 결국 팀이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사실 여부는 당사자만 알겠지만, 선수들끼리 이런 의심을 하고 라커룸에서 대책회의를 할 정도까지 됐으니까 그 감독의 운명은 뻔했던 거죠.

-어느 종목에서는 감독이 특정종교를 강요하다 선수단의 불만을 사는 바람에 문제가 됐습니다. 참다못한 선수들이 구단 사무실로 단체로 가서 감독을 교체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구단이 쉬쉬하며 처리한 적이 있었죠. 사실 종교문제는 미묘한데 아무리 좋은 뜻이라고는 하지만 선수들의 생각과 믿음의 자유까지 감독이 간섭할 권리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대한민국을 독일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았지만 부진한 경기력으로 경질된 본프레레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왜 축구는 감독 교체가 다른 종목보다 많을까?

-월드컵은 감독의 무덤입니다. 특히 중동이 심한데요. 툭하면 경질 소리가 나곤 합니다. 이는 왕족들의 ‘갑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는 2000년 이후 17년간 16명의 감독이 경질된 걸로 알려지고 있죠. 계산상으로는 1년에 한 명꼴로 잘린 겁니다. 지난해에는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행을 이끈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감독을 자르고, 에드가르도 바우사 감독을 선임했다가 또 다시 마음에 안 들자 경질했습니다. 두 달 만입니다. 이후 후안 안토니오 피치 감독을 데려왔는데, 본선이 두 달 정도 남았습니다.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 조마조마합니다.

-한국대표팀 감독의 재임기간도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월드컵이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국민들의 기대 수준이 높아진 이유도 큽니다. 그러다보니 축구협회도 참을성이 부족해진 것 같고요. 현 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역대 50번째 감독인데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사령탑을 따져보면 조광래∼최강희∼홍명보∼슈틸리케∼신태용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월드컵은 국민들이나 축구협회의 관심사만은 아닙니다. 축구협회나 대표팀을 지원하는 스폰서의 이익과도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스폰서의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죠. 엄청난 액수를 들여 대표팀을 지원하는 스폰서 입장에서는 감독의 능력이 부족하면 성적이 안 날 것이고, 그러면 기대만큼의 홍보효과를 볼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스폰서에게는 최악의 상황인 거죠. 감독 경질의 이면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감독은 곧 성적으로 말합니다. 특히 승강제가 있는 프로축구의 경우가 더 심한데요. 세계 최고의 리그라 할 수 있는 EPL도 감독의 자리 보존이 쉽지 않습니다. K리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게 단장이나 사장의 임기와 상당한 관계가 있다는 겁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깊은 책임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임기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장기 플랜은 힘든 실정입니다. 감독이 성적을 올려주면 좋겠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데, 감독이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민구단은 구단주인 지방자치단체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감독의 목숨도 달라지죠. 이번 6월 지방선거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선동열 감독과 류중일 감독의 이·취임식. 스포츠동아DB



● 감독이 조심해야 할 때는 지고 나서의 발언

-“혀를 조심해라.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무서운 흉기다”라는 말이 있죠. 말 때문에 잘린 감독도 많아요. 선동열 감독과 삼성이 그랬죠. 그 시점도 정말 뜬금없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2010년 12월 30일입니다. 모든 구단이 종무식까지 마치고 쉬고 있을 때였죠. 게다가 삼성 구단은 계약기간이 무려 4년이나 남은 감독이 용퇴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진짜 이유는 나중에 밝혀졌죠. 그 해 SK와 맞붙은 한국시리즈가 문제였습니다. 당시 삼성은 두산과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혈전을 치르고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지만, SK에는 힘 한 번 못 써보고 4전패로 무너졌어요.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선 감독이 ‘올해는 우승이 힘들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힌 겁니다. 사실 이 말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려면 플레이오프를 최대한 짧게 끝냈어야 하는데 5차전까지 치러 체력적으로 걱정스럽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공개적으로 꺼낼 말이 아니었던 것도 분명합니다. 결국 삼성그룹 수뇌부의 심기까지 불편하게 만든 발언이었다는 얘기가 나중에 전해지더라고요.

백인천 전 삼성 감독.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때로는 다혈질 성격이 화를 부른다!

-1997년 백인천 감독이 삼성을 떠날 때도 기억이 납니다.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자연스러운 사퇴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러 해프닝이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여운은 남습니다. 그 해 삼성과 백 감독은 유독 시끄러운 일을 많이 겪었거든요. 5월 4일 대구경기 때 삼성 정경배의 연타석 만루홈런 등이 발단이 돼 LG가 부정배트 의혹을 제기하면서 양팀의 사이가 무척 껄끄러워졌고, 6월에는 백 감독이 LG 조 알바레즈 코치와 경기 도중 몸싸움을 벌였지요. 이 사건 뒤 백 감독은 고혈압과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졌고요. 다행히 9월초 복귀했는데 경기 도중 귀가해버리는 황당한 일을 저질렀죠. 9월 3일 잠실 LG와의 더블헤더 때였습니다. 제1경기에서 투수가 벤치의 사인대로 안 해서 패하자, 제2경기를 앞두고 팀을 이탈한 겁니다. 삼성은 “6월 건강악화로 입원한 뒤 복귀했을 때는 백 감독이 결정했지만, 이번에는 구단이 결정할 것”이라며 경질 수순을 밟았고, 조창수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내세워 정규시즌 잔여경기와 포스트시즌을 치른 뒤 서정환 코치를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하여튼 결론은 ‘감독 목숨 파리 목숨이고 잘리는 방법은 다양하다’네요.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정리 |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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