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의 라스트 씬①] “잊지 않을게”…日 대지진 희생자를 위한 진혼곡

입력 2018-04-16 06:5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화 ‘너의 이름은.’은 서로의 몸이 바뀌는 경험을 나누는 여고생 미츠하와 소년 타키의 이야기다. 지구로 날아든 혜성이 미츠하가 사는 마을 이토모리로 날아들면서 많은 것이 바뀐다. 2016년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지난해 국내서도 367만 명을 모았다. 사진제공|미디어캐슬

■ 영화 ‘너의 이름은.’

핵을 가른 혜성이 마을을 파괴해도
서로를 향한 변치 않는 기억들
‘기적 같은 인연의 힘’ 보여준 애니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8분
별이 된 너희들을 기억할게
영화 속 그 ‘소년 소녀’처럼


먼 옛날 ‘무스비’라 불리는 땅의 수호신이 있었다. 무스비는 사람과 시간을 잇고 흐르게 하는 힘을 지녔다. 마치 매듭끈과도 같아서 “한데 모여들어 형태를 만들고 엉키고 꼬이고. 때로는 돌아오고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고”….

그래서 무스비는 곧 사람이며 시간이기도 하다. 사람과 시간은 서로를 잇고 풀어내며 또 다시 이어가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간다. 매듭을 풀고 끊는 것은 신의 영역일까. 하지만 적어도 풀고 끊어냄에 관한 의지를 나누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부단한 노력으로써도 가능할 일일 터이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사람의 기억으로 부단히, 그리고 다시 새로운 매듭이 된다.

● 오후 8시42분

여고생 미츠하는 아름답고 거대한 호수를 둘러싼 이토모리라는 마을에 살고 있다. 미츠하는 “서점도, 치과도 없고, 기차는 2시간에 한 번 오고, 일조시간도 짧은” 이토모리를 벗어나 도쿄의 ‘꽃미남’처럼 살아가고 싶어 한다.

타키는 미츠하가 꿈꾸는 번화한 도시 도쿄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평범하지만 쿨한 성격을 지닌, 미츠하가 다음 생에선 그렇게 멋진 외모를 지닌 아이로 태어나고 싶어 하는, ‘꽃미남’이다.

동갑내기인 타키와 미츠하는 혜성이 지구에 날아들기 전까지 서로의 몸을 바꾸곤 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타키는 미츠하가 되었고, 미츠하는 타키의 몸을 빌렸다. 원인을 알 수 없이, 그저 잠을 자고 나면 타키는 미츠하가, 미츠하는 타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눈을 뜨고 나면 서로를 뒤바꿨을 때 기억은 흐릿해지곤 했다.

혜성이 지구로 날아든 것은 이토모리 마을 사람들이 축제를 준비하던 10월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혜성은 1200년을 주기로 태양을 돌다 지구로 날아들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구의 하늘을 뒤덮으며 몽환적인 오로라처럼 빛을 발하는 광경을 사람들은 마치 행운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핵을 가른 혜성이 운석이 되어 마을로 떨어진 것은 오후 8시42분이었다.

영화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 사진제공|미디어캐슬


● 무스비의 기적

혜성은 거대한 낙석으로 떨어져 아름답고 고요했던 이토모리 호수를 포근하게 감싼 마을을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밤하늘과 어둑한 땅덩어리를 뒤흔드는 폭발음과 번쩍거리는 섬광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사람과 시간의 이어짐과 흐름은 한 순간에 끊어졌다.

하지만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 몸을 뒤바꿔가며 좌충우돌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았던 타키와 미츠하는 지나간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잊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 잊으면 안 되는 사람, 잊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타키였고 미츠하였기 때문이다. 잊지 않은, 잊지 않으려는 시간 안에서 오로지 함께 맺은 인연의 힘으로써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끈으로 다시 이어가며 기적처럼 또 다른 시간을 되살려냈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든, 아니면 새로운 시간을 맞아들이든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소년과 소녀는 몸을 뒤바꾸면서 서로를 기억하고 또 서로를 변하게 했기 때문이다. 타키와 미츠하는 그리고 기어이 다시 만났다.

무스비는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냈다. 신의 영역이라고 말할지언정, 적어도 그 풀고 끊어냄에 대한 의지를 타키와 미츠하는 저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사람이고, 인연이고, 시간이었다.


● 오전 8시48분

혜성이 막 마을을 삼키려 할 때 사람들은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축제는 공동체의 안녕과 다 함께 이뤄갈 행복을 꿈꾸는 마당이었을 터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늘 꿈꾸는 안녕과 행복의 공동체를 꿈꿨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어찌 막을 수도, 방비할 수도 없는 엄청난 불행이 닥쳐오더라도, 그 안에서 기어이 다시 만나고 이어갈 인연의 힘으로써 서로를 일으켜 세우려 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사람이고, 인연이고, 시간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레베카 솔닛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비롯해 1985년 멕시코시티 대지진, 2005년 뉴올리언스 홍수에 이르기까지 대재난에 처한 이들이 어떤 행동방식으로 서로를 도왔는지를 정치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통해 그 혼란스런 상황 아래서 꽃피어나는 사람들과 공동체의 “연대와 이타주의”를 역설했다. “밤하늘에 갑자기 나타나는 별들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요즘은 별빛에 비추어 길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연대와 이타주의와 즉흥성의 별자리는 우리 대부분의 마음속에 숨어 있다가 이런 순간에 나타난다”고 그는 썼다.

영화 ‘너의 이름은.’의 한 장면. 사진제공|미디어캐슬


정말 그럴 것이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니 왜 이별해야 하는지 그 근본적 원인을 알려 달라던, 대체 왜 아이들을 제대로 구해낼 수 없었는지 설명해 달라며 끼니를 굶어야 했던 부모들의 피멍 든 가슴 옆에서 보란 듯 피자를 우악스럽게 먹어대는 패륜의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컴컴한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사람들의 절규를 무책임하게 방관한 시스템과 그 운용자들의 세상이 더 이상 아니었으면 좋겠다.

4월30일에 태어난 수인이는 “우리 이제 모두 함께 따스한 / 숨결 모아 열아홉 개의 촛불을 불어요 / 마음 속 소망의 별빛이 더 환히 빛나도록”이라며 엄마와 아빠에게 보내는 시로써 사랑을 전했다. 4월2일생 지혜는 “나는 프란체스카 / 낮은 곳을 위해 기도하는 별 / 그래서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는 별”이라 기원했다. 6월10일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나의 애인, 나의 사랑”이라 부른 우진이는 “이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이 / 그리운 것은 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노라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다.

이들이 전하는 기원과 위로는 지난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 맺은 인연의 매듭을 풀어내지 않고, 서로를 기억하며 다가가 기적을 이뤄낸 것처럼. 이제, 어쩌면 별이 되었을지 모르는 아이들의 기원과 위로가 더 이상 아픔이 아닌, 새로운 기억과 인연 그래서 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수 있게 되기를.

그래야 3월9일 생일에 “기억하는 게 사랑하는 거예요 / 기억하는 게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거예요 / 그러면 나도 바람으로 다가가고 별빛으로 반짝이며 있을게요”라고 약속한 건계와 함께 수인이와 지혜와 우진이‘들’도 새로운 별빛으로 세상의 사람들을 매듭의 인연으로 이끌 것이다.

아직 별이 되기 전, 수인이와 지혜와 건계와 우진이‘들’이 ‘세월’이라는 이름의 여객선과 함께 전남 진도 인근 맹골수도의 차디찬 바다 속으로 속절없이 빠져든 시간은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8분이었다.

P.S 위 시는 경기 안산 단원고 2년생 곽수인·권지혜·선우진·이건계‘들’의 ‘생일시’를 시인 성미정·이원·이규리·도종환‘들’이 각각 “받아 적”은 시집 ‘엄마. 나야.’(문학동네)에서 발췌,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