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외야수 김경근’은 어떻게 ‘파이어볼러 김정후’로 다시 태어났나

입력 2018-04-1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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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김정후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생 스토리로 감동을 주고 있다. 2013시즌 SK에서 외야수로 데뷔한 김정후는 1군 5경기에 출장한 뒤 방출됐다. 개명을 한 뒤 투수로 포지션을 바꿨고, 올 시즌 두산에서 제2의 야구인생을 활짝 열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두산 우투수 김정후(30)가 KBO리그에 첫발을 내디딘 시기는 2013시즌이다. 당시 그의 신분은 SK 외야수였고, 이름은 김경근이었다. 경동고~단국대를 졸업하고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해 군 문제부터 해결한 뒤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했고, 10라운드 전체 87순위로 SK의 지명을 받았다. 지명 순번은 낮았지만,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장타력을 뽐내며 개막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비록 1군경기 5게임 출장(4타수 무안타)이 전부였지만, 프로 데뷔 첫해부터 소중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이후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2014시즌을 앞두고 2군 스프링캠프 도중 어깨를 크게 다쳤다. 의욕이 앞서 외야에서 다이빙캐치를 시도한 것이 화를 불렀다. 다시 그라운드에 서겠다는 각오 하나로 재활에 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워낙 충격이 컸던 탓에 1년간 방황했다. 야구를 내려놓을 생각까지 했다. “부상이 워낙 많았다. 뭔가 하려고 하면 다치더라.” 그의 목소리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SK에서 외야수 김경근으로 활동할 당시 모습.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외야수 김경근을 지우다

어렵게 마음을 다잡았다. 가장 먼저 ‘외야수 김경근’을 지웠다. 김정후로 개명을 하고 투수로 포지션을 바꿔 새롭게 출발하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공을 잡고 힘껏 던져보니 구속이 147㎞까지 나왔다. 자신감이 생겼다. SK 시절 그의 동료였던 안치용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어깨가 남다른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당장 국내에서 야구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일본 사회인야구 팀에 들어갔고, 이는 김정후가 2017년 5월 귀국해 두산의 입단테스트를 통과한 밑거름이 됐다. 야구를 놓지 않고 실전감각을 유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두산 투수 김정후’로 제2의 야구인생을 열었다. 2017시즌이 끝나고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와 마무리캠프에 참가했고, 그 자리에서 이강철 당시 2군 감독(현 1군 수석코치)으로부터 “1군에 올라가면 다시 (2군에)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잘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김정후가 1군 마운드에서 주눅 들지 않고 강속구를 던질 수 있게 해준 마법 같은 한마디였다.

10일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8-1로 승리한 두산 김정후 양의지가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7점차 세리머니의 진심과 부상 트라우마

김정후는 아직도 투수 데뷔전인 10일 대구 삼성전을 잊지 못한다. 8-1로 앞선 9회 1사 후 마운드에 올라 아웃카운트 2개를 깔끔하게 잡고 경기를 끝냈다. 벤치가 아닌 마운드 위에서 팀의 승리를 함께하는 느낌은 남다르다. 마지막 타자 이지영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세리머니까지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접전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운드에 오르는 그 순간순간이 김정후에게 무척 소중하다는 의미다. 선배 양의지에게 “액션이 크다”며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사실 첫 상대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양)의지 형이 ‘나만 보고 던지라’고 하더라. 뒤늦게 전광판을 본 뒤에야 상대가 4번타자 다린 러프라는 사실을 알았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에는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더라.”

김정후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어 일상생활을 할 때도 무척 신중하다. “문을 열 때도 공을 던지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열고, 계단을 오를 때도 혹시 공이라도 밟을 수 있으니 조심하게 된다. 매사에 더욱 조심하게 되더라. 이제는 다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두산 김정후. 스포츠동아DB



● 파이어볼러의 매력

김정후는 ‘파이어볼러’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최고구속 151㎞의 위력적인 빠른 공에 대한 자신감이 엄청나다. 17일 잠실 한화전에선 6회 마운드에 올라 15구 모두 빠른 공만 던졌다. 슬라이더와 포크볼의 완성도를 더 높여 적절하게 곁들이면 더욱 위력적인 투수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 시즌 3경기(4.2이닝)에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은 비결도 자신감 넘치는 투구다. 이닝을 마친 뒤 야수들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장면에는 큰 울림이 있다. 이는 어렵게 다시 시작하게 된 야구를 대하는 김정후의 진심이다. 그는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오랫동안 야구를 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구위가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묵직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잠실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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